여행 이야기

(13) 로마를 찾아서

운농 박중기 2016. 4. 7. 17:24

3월 13일 (시에나)


시에나의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이 고장을 둘러 볼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역시 나는 소도시 체질인가 보다. 함양읍의 1.5배쯤 되어 보이는 이 작은 도시는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풍광 좋고 깨끗한 도시로 정평이 나 있지만 , 아무래도 이곳의 농촌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

가는것은 '정말 이건 아니다 ' 싶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골의 서정을 느끼기엔 너무 이른 계절, 제대로

된 전경을 보려면 5월 정도는 되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두오모 성당을 기점으로 주변을 돌아 보기로 한다.

마침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성 프란체스코 성당 박물관 등을 묶어서 티켓을 발매 했다.

티켓에 있는데로 순차적으로 돌아보면 빠짐없이 볼 수 있겠다. 피렌체에도 두오모 성당이 있지만 시에나의

두오모가 규모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고 안팎의 장식과 아름다움에서는 훨씬 앞선다.

두오모의 파노라마 전망대에 올라 시에나 시가지를 바라 봤을때 피렌체 시가지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여태껏 풍광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피렌체 시가지도 아름다웠지만 시에나는 지붕의 색감과 벽면의 색감이 약간은 퇴색한 연갈색(잿빛이 섞인)

이어서 중앙에 보이는 캄포광장과 절묘하게 배합되면서 고색창연하면서도 은은한 색감을 연출했다.

참으로 조화로운 풍경이다.

오늘따라 심하게 부는 바람만 없다면 몇 시간이라도 내려다 보고 싶은 풍경이다. 세상에는 이런 멋진 도시의

모습도 있는 것이다. 

도시의 외곽에 끝없이 펼쳐진 구릉들은, 봄이 본격적으로 스며들고 들판에 꽃들이 피어나 생기를 발하면

토스카나 지방의 정수를 보여줄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참 황홀한 풍경이 될 것 같다.

시에나에 5월이나 10월에 다시 오고 싶다.

시에나의 특징은 시 전체가 완벽히 구시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캄포광장을 다시 찾아 점심으로 카페에서 라자냐와 새우튀김을 사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광장에 주저앉아

식사를 했다.

때마침 일단의 말을 탄 사람들이 광장 가장자리를 돌고 있다. 말을 탄 사람들은 특별한 복장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큰 말과 조랑말, 마차 등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도시 사람들로 보인다.

아마 일요일을 맞아 다 같이 말을 타고 나들이를 나온 것 같다. 

그렇지만 규모가 적지 않다. 적어도 말이 70여 마리는 될 것 같다.

덩치 큰 말들이 광장을 돌며 내는 말굽소리는 근사하다.

어른들 뒤로는 아이들이 조랑말을 탔고, 마차에는 그 보다 어린 아이들을 태웠다. 그들 생활의 일단을 전부는

모르지만 참 여유로워 보이는건 사실이다.


오후 늦게 제법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13일 동안 여행하면서 별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제법 허둥댔다.

영어 공부는 지독히 게을리 하고선 걸핏하면 가방을 싸더니 오늘 그 영어 스트레스가 된통 뒤통수를 때렸다.

내일 아시시(Assisi)로 가므로 그람시 광장(피렌체에서 왔을때 버스가 그람시 광장에 도착했었다)에 가서

아시시 행 버스표를 예약하러 갔었다.

이곳 시에나에서 아시시로 가는 버스는 오후 5시 30분 단 한 차례만 있다고 가이드북에 기재되어 있어 예약

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람시 광장에 갔지만 어디에도 아시시 행 티켓 판매소가 없다. 타바치(담배와 잡화, 버스 티켓 등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아시시 행 버스 티켓을 물으니 지하로 내려 가란다.

조그만 광장 어디에도 표지판이 없어 헤매다 근처의 젊은이들에게 물으니 아주 작은 지하 출입구를 가리킨다.

들어서니 버스회사 세군데가 있다.

아시시 행은 세나(SENA) 라는 회사에서 운행한다고 해 세나 매표소로 가니 할머니 한 분이 혼자서 표를 팔고

있고 아주 한산하여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내일 아시시 행 표를 달랬더니 19유로라 해서 계산하고 나니

할머니는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데 도무지 알아

들을수가 없다.

로컬 버스 어쩌고, 레일웨이 어쩌고 하는데 어찌나 말이 빠른지 '천천히 얘기해 주세요' 해도 따발총 처럼

튀어 나오는 할머니의 말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아니, 내일 이 티켓을 가지고 여기서 버스를 타면 되는 일인데 이 할머니는 뭣땜에 나를 불러 세워 이렇게

곤혹스럽게 하나 하는 생각뿐이다. 노인 특유의 노파심과 수다거니 하고는 대충 알아 들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버렸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세나버스 정류장을 찾아보니 보이지를 않는다. 표를 여기서 샀고, 광장은 버스 터미널,

당연히 여기서 오후 5시 30분에 타겠지 했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더구나 하루에 한번뿐인 버스 아닌가.

그래서 막 도착한 버스 기사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물으니 마초풍으로 풍채 좋은 이 양반이 '저기!' 하며

가르키는 쪽을 보니 한 귀퉁이에 손바닥만 하게 '세나 버스 정류장'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아하! 저기서 타면 되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데 왜 할머니는 기차역이 어쩌고, 로칼버스가 어쩌고 

했지?...... 영 찜찜 했지만 호쾌한 버스 기사의 단호한 손가락이 분명 여기를 가르키지 않았는가!

아이쿠 너무 깊게 생각말자, 넌 너무 깊게 생각하려는게 탈이야, 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꾸 뭔가 찜찜하다. 아시시 행이 여러차례 있다면 잘못되도 다시 타면 되지만 5시 30분 차를 놓쳐

버리면 낭패가 된다. 아시시에 숙소는 예약해 두었고(알베르고/ 여행자 작은 숙소) 여긴 다시 예약해야 하고, 

계획한 일정은 틀어지고......

다시 옷을 주워입고 그람시 광장으로 갔다. 5시 20분이다. 매일 5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라면 오늘도

제 시간에 출발할터.

그렇지만 5시30분이 되어서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5시50분쯤 세나 회사 버스가 들어 오는데 아시시 행이

아니라 밀라노 행이다. 아! 이건 뭔가 잘못됐다...... 밀라노는 북쪽이라 아시시 하고는 영 아닌데......

다시 밀라노 행 버스에 올라 기사에게 예매한 티켓을 보여주니 역시 덩치 큰 마초풍의 기사는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데...... 그제서야 옆에서 듣고 있던 젊은 커플이 나를 조용히 불러 차분히 설명을 한다.

자기네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버스 기사의 얘기는 아시시 행은 여기서 타는것이 아니고, 시에나 철도역 

근처의 세나회사 정류장에서 타야 한다는것 같다는 것이다.

차근 차근, 천천히 영어로 듣자 그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티켓은 여기서 샀지만 버스를 타는 곳은, 여기서 로칼버스를 타고 시에나 철도역으로 간 다음 그곳의 세나

회사 정류장에서 타야 한다는 사실......

두 젊은 남녀는 성의있고 친절했다.

아하! 그래서 할머니가 그토록 설명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젊은이들에게 몇번이고 고맙다고 하고서 지하로

다시 내려갔다.

나를 본 할머니는 '저 멍청한 친구 또 왔네!' 하는 눈으로 나를 본다. 역시 매표 창구는 아무도 없이 한산하다.

이번에는 내가 할머니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로컬 버스 3번이나 10번 타고-- 시에나 철도역에 내려

-- 세나 회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시에나로 간다!' 이렇게 메모하니 그제서야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오케이! 오케이! 퍼팩트! 한다. 아아! 멍청한 중늙은이와 따발총 할머니의 퍼팩트한 의사 소통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제법 스트레스가 되었다.

이탈리아어는 언감생심, 영어라도 술술 된다면 이런 스트레스는 훨씬 덜 할 것인데...... 따발총 할머니를

정중히 진정시켜 찬찬히 물었다면 애초에 이런 시간낭비와 스트레스는 없었겠지.

사실 남의 나라에 여행을 한다고 해도 의외로 영어 쓸 일이 별로 없다. 먹고, 자고, 길 묻고, 물건을 사는 것

등을 제외 하고는 별로 영어를 쓸 일이 없는 것이다.

영어가 능통해서 다른 외국 여행객과 무슨 철학과 문학을 논할 입장도 아니고, 더구나 서양인이 동양인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에 십수년 동안 여러나라를 기웃거리면서도 딱히 의사 소통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여행중 트러블이 생겼을때나, 다급한 일이 생기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생긴다면

필경은, 알고 있는 말도 생각이 잘 나지 않을테고, 복잡한 상황설명이나 내 입장에 대한 의견 피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십수년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용케도 그런 트러블이 생긴적은 없어서 무사히 넘겨 왔던

것이다. 보잘것 없는 영어 실력으로 여태껏 버텨 왔다는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배짱이 좋은건지, 쓸데없는 용기만 과한건지...... 에휴!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 로마를 찾아서  (0) 2016.04.11
(14) 로마를 찾아서  (0) 2016.04.09
(12) 로마를 찾아서  (0) 2016.04.06
(11) 로마를 찾아서  (0) 2016.04.05
(10) 로마를 찾아서  (0) 201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