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 금요일 (뻬쩨르부르그)
아침식사를 든든히 먹고 카잔성당으로 향했다. 넵스키 대로변에 있는 카잔성당은 성당의 느낌 보다는
당당한 개선문 같은 이미지의 누런 색 건물이다.
세월의 때가 묻어 성당 전체가 약간은 흉물스럽게 불에 거슬린것 같은 모습이다.
한쪽엔 그 때를 벗겨내느라 가림막이 거대하게 둘러쳐져 있고, 일꾼들의 일손이 보인다.
성당의 주변은 이 당당한 건물과는 부조화스럽게 아무런 치장이나 조성물이 없고, 정면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분수가 있을뿐 왠지 썰렁한 느낌마져 든다.
내부는 바깥 보다는 괜찮다. 기적을 이룬다는 성모의 이콘상엔 많은 이들이 각자의 기적을 바라며 기도하거나
입맞춤을 하고 있다.
마침 이층의 성가대가 거대한 성당 내부를 흔들며 성가를 부르고 있어, 그 특유의 숙연함이 성당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카잔 성당을 나와 센나야 광장으로 향했다.
지도를 보고, 물어 물어 찾아간 광장은 이제 '건초광장'이라는 이름의 옛 지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지하철 역사 마당들로 이용되고 있었고, 몇 개의 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점령하고 있다.
이곳에서 라스꼴리니코프의 '대지의 키스'를 상상하긴 힘들다.
그는 소냐의 간청과 부탁, 그리고 설득으로 이 센나야 광장에서 무릎 꿇고 대지에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그 순간까지 그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다만 소냐의 간청을 마지못해 들어주러
갔을 뿐이다.
그렇지만 대지에 입을 맞추는 순간 그의 이론과 상념상의 합리성은 패배하였고, 그는 비범인(非凡人)에서
범인(凡人)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전쟁 영웅과 황제에서 한낮 유배지의 죄수로 전락했듯이...... 그러나 라스꼴리니코프는
나폴레옹 처럼 영웅도, 황제도 된 적은 없다. 다만 그의 머릿속에서 끝없는 죄와 벌의 상념만이 오락가락
했을 뿐인 것이다.
그는 스비드리가일로프 처럼 완전한 악인도 아니고, 루진 처럼 비열한 인간도 아니고, 다만 그냥 평범한
범인(凡人)에 불과한 신세로 전락했을 뿐이었다.
40여년 동안 내 머릿속의 '센나야 광장'은 그렇게 무심한 담배꽁초의 지저분한 거리 모퉁이에 불과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외투를 입은채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창백한 얼굴을 한 라스꼴리니코프는 그곳에 없었다.
만일 이런 장소가 우리네 방식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광장을 그렇듯하게 치장하고, 라스꼴리니코프가 땅에 키스하는 청동상이라도 만들어 두고, 소냐를 그
인근에 세워 두지 않았을까?
숙소에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는 '호텔스 닷컴'을 통해 예약해 놓은 호텔 '해피 푸쉬킨'은 찾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네바 강과 시내를 관통하는 지류를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러 선착장을 찾았다. 마침 곧 출발한다는 말을 믿고
티켓을 끊은 뒤 밤 8시 45분에 출발한다는 배를 기다렸으나 10분이 지나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직원에게
물었더니 10분만 더 기다리란다. 10분이 지나도 배가 오지 않아 또 물었더니 좀 더 기다리란다.
아하! 이 친구들은 손님이 적어 운항하면 적자라는 얘기다. 아무 말없이 창구에 가서 티켓을 내밀었더니 바로
환불을 해 준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는 얘기다.
좀 더 위로 올라가자 마침내 출발하는 배가 있다. 1시간 15분 코스란다. 두터운 옷으로 무장하고서 에르미타쥐,
성 이삭 성당 등이 보이는 수로 길을 1시간 넘게 유람했다. 많이 춥지는 않았지만 웅크리고 있어서인지 몸이
뻐근하다.
유람선은 네바 강을 미끄러지듯 흘러 강가의 건물에 조명을 비춰두어 화려해진 야경속을 물방게 처럼 헤집고
다녔다.
선착장 근처에 자리한 성 이삭 성당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난 크기다. 내일 이곳을 보러
오겠지만 벌써부터 이 성당의 규모에 완전히 압도된다.
신은 자신의 성전이 이렇게 크게 지어진 것을 보고 흡족했을까?
예수는 저 큰 성전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기를 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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