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8)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7. 6. 19:52

2014. 6. 8(일) -이스탄불-

 

다시 이스탄불.

술탄 아흐멧 자미(블루 모스크)는 아침 햇살에 맑게 빛나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여섯개의 미나렛이 솟아 올라 있고 둥근 돔이 여러개 조합된 건물은 아야 소피아 보다 규모는

조금 작지만 오히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아무래도 아야 소피아는 1,400년을 버텨온 건물이니 그 외양이 바래져서 비교한다는게 무리

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수많은 인파가 몰려 아야 소피아와 술탄 아흐멧 자미 사이의 넓은 공간은

사람들의 물결로 활기를 띠고 있다.

아야 소피아도 그렇지만 술탄 아흐멧 자미도 묘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뭐랄까...... 종교적

신비감에서 오는 기운과, 건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지극히 이국적인 분위기가 하늘을 찌르는

미나렛의 위용과 함께 주위를 압도하는, 그렇지만 왠지 멋진,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사람들은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술탄 아흐멧 자미를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다.

광장은 인종들의 전시장이 되어있고,  노점상들이 '마담, 단 1리라!' 라고 외치면서 화관과

머플러를 판다.

왜 머플러 파는 상인이 저렇게 많지? 하고 여겼더니 나중에야 그 까닭을 알았다.

술탄 아흐멧 자미에 들어가려면 어떤 여성이건 머리에 히잡을 둘러야 하는데 히잡 대용으로

머플러를 이용하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머플러가 없어도 입구에서 임시로 대용의 머플러를 무료로 빌려 주기 때문에 굳이

사지 않아도 상관없다.

술탄 아흐멧 자미에 들어서려 하자 문 앞에는 '복장검사'를 하는 문지기가 있다.

어깨를 다 드러낸 여성에겐 머플러로 가리게 하고, 짧은 반바지 차림은 제지를 당한다.

그곳을 통과하면 여자들은 입구에 비치된 차르를 머리에 둘러야 하고, 신발을 벗어서 비닐

주머니에 넣어 들고 들어가야 한다.

내부에 들어서자 엄청난 기둥 네 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족히 지름이 3미터는 넘어 뵈는 대리석 기둥이 높다란 천정을 떠받치고 있고, 그 기둥위엔 돔형

지붕이 얹혀있고, 그 돔형 지붕 아래는 또 다른 돔형 지붕이 지탱하고 있는, 절묘하고 희한한

구조다.

지붕과 벽에는 이슬람 특유의 아라베스크 문양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데, 창문을 빛내고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함께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야 소피아가 내부 공간의 절반 이상을 보수 공사용 거푸집으로 쌓아 놓아 제대로 전체 공간을

보기 어려운데다 어두워서 관찰이 힘든 반면, 술탄 아흐멧 자미는 조명도 적당하고 내부가 거의

완벽히 노출되어 있어서 아주 근사하다.

엄청난 대리석 기둥을 손으로 쓸며 이 건물을 지으라고 명령한 권력자에게 보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와 장인, 그리고 노역자들에게 이런 걸 보여줘 고맙다고 속삭였다.

 

술탄 아흐멧 자미의 엄청난 인파에 기가 질려 심신이 너무 피곤해져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와

귤하네 공원으로 내려왔다.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 했을때 귤하네에서 참으로 좋은 인상을 받은지라 한번 더 가보고 싶었다.

마침 귤하네 공원은 인파가 그리 많지 않았다.

키 크고 굵직한 나무들이 도열하고, 잘 손질된 잔디가 일순 지친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공원안에는 히잡을 두른 이 나라 젊은 여성 커플과 외국인 커플들이 유난히 많다.

'룩상부르 공원의 오후' 던가? 그 명화의 장면 처럼 평화롭고 상큼한, 아름다운 광경이다.

인파로 붐비는 바깥에 비해 공원 안은 평화롭고 사랑스런 공기가 넘치고 있다.

분수의 물줄기는 춤추듯 솟고 바람은 가볍고 경쾌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공원의 한쪽 벽을 이루고 있는 옛 성벽에 부딪혀 귓전을

간지럽힌다.

젊은, 수많은 커플들의 모습들을 보자 불연듯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하던 시가 생각

난다. 저런 청춘의 시절이 내게도 있었겠지? 그런데 왜  그 시절이 마치 없었던 것 처럼 도무지

기억되지 않는거지?

이미 지나간 빛과 영광은 눈앞에 환상이 되어 다시 나타나지 않는 법, 늙음을 안타까워 하진

말기를......

 

귤하네 공원을 나와 술탄 아흐멧 트램 역과 귤하네 역 사이의 엄청난 인파에 기가 질려 우리는

좁아터진 호텔방으로 돌아와 두어시간 휴식후 탁심광장으로 향했다.

카바타쉬 행 트램을 타고 종점에 가서 좀 걸으면 광장에 갈 수 있겠지 하고, 지도만 보고 어림

짐작으로 나선탓에 도무지 방향이 헷갈린다.

트램의 종착역인 카바타쉬 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야 탁심광장에 이를 수 있다고 해서

'이게 뭐야, 얼마되지도 않는 거리를 또 지하철을 타야 해? 그냥 걸어가지 뭐' 하곤 길거리의

젊은이들에게 물어 탁심광장으로 향했는데 계속 오르막 고갯길이다.

광장이라더니? 광장이라면 언덕배기 위에 있는게 아닐텐데? 하고선 거의 반시간을 오르니

마침내 언덕 끝 등성이에 광장이 나타났다. 언덕위의 광장이라......

이런 형태의 광장은 처음이라 좀 의아했다.

알고보니 카바타쉬 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이 언덕 위까지 케이블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던

것인데, 경사가 심한 언덕위의 광장까지 도달하려면 한 구역이지만 케이블이 끌어 올리는

지하철로 이 언덕배기를 올라야 하는거였다.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얼마전에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는 소식이 떠오르며 조금 긴장된다.

그러나 광장은 평온했고, 대부분을 이루는 젊은이들은 자유분방하다.

이스탄불에 와서 시위의 낌새를 느낀적은 없었지만 광장의 한 켠에는 시위진압용인 듯한

경찰 장갑차가 있긴 하다.

그러나 광장에서의 그 인파는 시작에 불과했다.

광장을 둘러본 뒤 이왕 여기까지 애써 걸어왔으니 멀긴 하지만 갈라타 탑 방향인 듯한 큰 길쪽 

으로 걸어서 내려가 갈라타 탑을 본 뒤 갈라타 다리를 지나 호텔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고

큰 길쪽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폭이 25-30미터쯤 되는 넓은 도로위의 인파를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엄청난 인파는 경사진 저 아래에서 광장쪽을 향해 움직이는 듯한 인파였는데, 우리 인생의

생전에 거리에 그렇게 엄청난 인파의 물결이 떼지어 올라오는 광경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팔의 인드라 쵸크, 어썬 바자르, 더러바르 광장, 그리고 인도의 델리나 바라나시에서 엄청난

인파의 물결을 봤지만, 그때는 한 곳에 운집해 있거나 특정한 장소에 한정된 인파였지만, 이곳

탁심광장에서 시작된 거리는 차원이 달랐다.

그 큰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2Km 가까이 내려갈 때까지 계속되는거였다.

평생 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인파의 흐름을 본 것이다.

돌아와서 가이드 북을 뒤져보니 바로 '이스틱랄 거리(Istiklal cd) 였다.

가이드 북에는 이 거리를 이렇게 표현해 두었다.

"이 길을 걷지 않고도 이스탄불의 현재를 보았다 말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랬다. 우리는 이스틱랄 거리가 끝나는 갈라타 탑 근처에 와서 '우리가 이 거리를 보지

않았다면 이스탄불의 절반 밖에 보지 못할뻔 했어!' 하고 서로 동감했다.

이 거리는 서울의 명동쯤 되는 거리인데, 단순히 현대식 쇼핑가가 있는 복잡한 거리만은 아니었다.

탁심광장에서 곧게 뻗은 직선도로로  길 양쪽으로 수많은 골목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거리에는

유럽식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현대식 상점들은 물론 클럽, 바, 레스토랑, 상점 등이

가득하다. 거리는 굉장한 활기로 넘쳐나고 수많은 골목들에서 유입되는 인파가 큰 강물을 이루듯

흘러들고 있었다.

선술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는가 하면, 유흥가, 선물가게, 커피집, 심지어는 사창가까지 구역

별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모든것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마치 강물이 일렁이듯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여느 날보다 더 복잡할 때에 우리가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극적인 이 거리의 용광로 같은

열기를 느낀건지도 모른다.

훗날 터키를 추억할때면 이 거리, 이스틱랄이 반드시 떠오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