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5)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7. 1. 21:55

2014. 6. 5(목) -사프란볼루-

 

아침 식사를 위한 숙소의 지하층 식당에서 터키인 여행자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제 부터 작은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부모와 같이 온 사람들인데, 그중 한 여자아이가

유달리 아내를 따른다. 다섯, 또는 여섯살쯤 됐을까?

어제 아내가 애들에게 살갑게 군 탓인지 식사를 하면서도 제 가족들의 식탁을 떠나 아내

곁으로 와서는 떠나질 않는다.

어느 나라건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예쁘다.

그들이 체크 아웃하고 떠나면서 아이는 무척이나 아쉬운지 아내 곁을 맴돌며 배운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를 반복한다.

어제는 아내의 손을 잡고 제 가족들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방을 구경 시켜 주기도 했다.

 

우리는 2층 방이었는데, 윗층의 혼자 온 일본인이 잠을 자지 않고 삐걱대는 통에 새벽 3시

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새벽까지 무엇 때문에 방안을 서성거렸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오래된 목구조의 전통가옥이라 윗층에서 걷기만 해도 소리가 꽤 크게 들려 상당히 거슬린다.

아침에 주인에게 얘기 했더니 당장 방을 바꿔 주겠다고 한다.

이 집 주인은 굉장히 친절하고, 몸이 빠르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닌 드물게 보는 호인이다.

우리처럼 나흘씩 머무는 경우 매일 청소나 이부자리를 갈아 줄 필요가 없지만, 말끔히 청소

하고 이부자리까지 새로 깔아놓은 방을 선뜻 바꿔주었다. 그것도 천정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3층으로.

이 양반은 우리가 처음 이 숙소에 와서 짐을 풀때 방으로 수박을 썰어 와 권했었다.

모레 이스탄불 행 버스 티켓을 사러 크란쿄이의 오토가르에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자기의

스쿠터를 가리키며 자기가 사 올테니 걱정 말라고 하더니 저녁에는 티켓을 내밀었다.

티켓에 적힌 요금만 받으며......

장삿꾼 같지 않은,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유쾌한 사람이라, 여태껏 터키의 숙소에서 좀체

느껴보기 못한 진심어린 환대를 받고 있는 기분이다.

 

이스탄불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우리가 이스탄불을 떠난 직후 부터

인 것 같다. 그것 때문에 한국에서 몇몇이 메세지를 보내오곤 했지만 우리가 직접 목격하거나

불편을 겪은 일은 없으므로 별로 게의치 않았다.

그것보다는 한국의 외교통상부에서 문자 메세지가 10번은 넘게 왔는데, '아카바 만 일대 여행

객은 긴급 대피'하라는 내용인데 요즘의 외교통상부는 그럭저럭 제 역활을 하고 있는가 보다

하고 느끼게 만들지만, 자국민에 대한 보호에 별로 성의를 보이지 않는 그들의 지난날 때문에

아직까진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라오스에서도, 여권을 잃은 한국 여행객이 대사관의 도움이 시원치 않아 현지 한국인이 경영

하는 레스토랑 주인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호텔의 TV에서는 시위 장면이 나오고 있지만 터키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으니......

뭐, 외국인에게 피해를 줄 만큼은 아니겠지...... 네팔의 정부군과 마오이스트군의 대립이

첨예할 때 두차례나 히말라야를 갔었지만, 군인들이 거리에 깔리고 꽤 살벌한 시국이었지만

외국인에 대한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았었다.

 

마을엔 비가 내리고 있다.

마을 전체의 길엔 돌이 깔려 있어서 번들거리는 골목길이 비가 오니 정취가 있어 좋다.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하다.

가만히 드러누워 잠을 청하기에 더없이 좋은 마을이다.

새로 옮긴 3층 방은 2층 방 보다 훨씬 크고, 벽장을 열면 화장실이, 또 다른 벽장을 열면 

샤워실이 나타나는 등 마치 모형집 같다.

오스만 시대에 왜 이들은 방안의 벽장에 작은 화장실과 목욕실을 만들어 두었을까?

화장실과 샤워실을 쓰려면 작은 목재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하고 좁아서 불편하긴 하지만

무척 재미있다. 옛 터키인의 체구가 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동거실을 보면 넓직하고

큰 소파가 길다랗게 늘어서 있는것을 보면 그렇게 작은 체구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고색창연한 집에 기거하는 맛이 이색적이고 흥미롭다.

 

몸살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저녁식사후 하맘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비누거품 때밀이와 맛사지는 하지 않겠노라고 하고 욕실에 들어서니 아침나절

과는 달리 왁자지껄하다.

돔형 지붕이 우리네 목욕탕 지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고 넓은지라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반사되어 굉장히 시끄럽다.

더구나 여기는 작은 마을, 하나뿐인 하맘이라 전부 이웃이다.

저녁나절이라 그런지 전부 젊은이들 일색이다.

들어서는 사람마다 전부 "어이, 친구!" 어쩌고 하면서 들어서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는 녀석,

저희끼리 물을 끼얹고 장난치는 녀석들로 도무지 조용한 휴식의 욕장 분위기가 아니다.

더구나 욕장으로 들어서는 녀석들 마다 통나무 이중문을 '꽝!'하고 닫아, 그 소리가 큰 욕장

안에 울려 요란하다.

처음엔 통나무 문이 저절로 닫히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들어서는  녀석들 마다

일부러 문을 호기있게 닫는거였다. 심지어 꼬마 녀석들 까지 어른들을 따라 하는 통에

소란은 배가된다.

하나같이 털북숭이인데다, 배는 어마어마하게 불룩해 이들 곁의 내가  비정상일 지경이다.

이들이 하는 행동들을 지켜보면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남자들의 과장된 호기가

눈에 뻔히 보인다.

욕장 안에는 외국인이라곤 나 밖에 없어 주눅 들어 땀만 좀 빼다가 일찍 나올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