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3)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6. 29. 23:43

2014. 6. 3(화) 카파도키아 - 앙카라 - 사프란볼루

 

앙카라 행 버스는 8시 45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오토가르로 갔다.

오늘은 이동을 위해 온종일 장거리 버스를 타야 한다.

괴레메 마을의 작은 오토가르엔 몇몇 여행객이 대기중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태껏 버스 여행을 하면서 한번도 동승한 외국인 여행객을 보진 못했다.

항상 버스안의 외국인은 우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버스 회사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니 이미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기다리라고 한다.

거의 9시가 되어서야 세르비스를 타고 네브쉐히르로 간 다음, 앙카라 행으로 갈아타는 줄

알았는데, 네브쉐히르의 주유소에 당도하더니 기다리고 있는 앙카라 행 버스로 갈아

타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갈아타는 승객이 적을때는 정류소 등을 무시하고 자기네들 끼리 연락을

해서 아무 곳에서나 손님을 갈아 태우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터키의 버스에서는 공공연한 것이라고 듣긴 했다.

그런데 갈아탄 버스회사는 터키 최대의 버스회사라고 하는 '카밀코흐' 였는데 조금 가다가

국도 길가의 간판도 없는 허름한 타이어 가게에 세우더니 타이어 교체 작업을 한다.

타이어는 트레드가 이미 다 닳아서 안에 있던 철심이 삐어져 나온 상태였는데, 아마도

뒷쪽에 두개씩 끼워져 있는 타이어로 안전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파묵칼레' 라고 하는 버스회사와 함께 터키 최대의 회사 버스가 허름한 간이

타이어 가게에서 타이어 교체작업을 한다는게 영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 같아서 이들의

시스템이 참 낯설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의 여러 시스템의 엉성한 구석이 많긴 하다.

버스 터미널은 우리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지만, 버스가

드나들때 마다 요금(주차료인지 관리료인지는 모르겠다)을 주고 받기 위해 입구에서

정차를 해야하고, 승객의 티켓은 버스를 갈아 탈때는 물론 이동 중에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재차 표를 확인하는 등 자질구레한 시스템의 엉성함과 더불어, 이 광활한 나라의

도로에서 경찰을 본 적이 없고, 속도제한 표시는 공사 구간에만 있다.

여행객이나 외국인을 위한 표지판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영업점의 선전을 위한 표시판은

아주 잘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이 관광 대국에 '관광청' 따윈 없는 것 같다.

이런 시스템의 엉성함을 보면 한국의 교통체계는 정말 최고의 수준인 것 같다.

공항의 편리함과 신속함, 열차의 첨단화, 버스의 편리성과 정확함 등은 여태껏 다녀 본

어느 나라보다 훌륭한 편이다.

우리네 버스의 경우 직행 버스와 로컬 버스, 고속버스 등은 출발과 도착시간의 정확함,

배차시간의 정확함, 심지어 시골 로컬 버스의 경우에도 승객이 있건 없건 정확하게 출발

하는 신뢰성 등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훌륭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신뢰성이 정치나 경제 등 사회전반의 수준으로 정착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앙카라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버스는 타이어를 교체 하느라고 30분 정도를 소모했지만 도착시간을 지키기 위해

서둘지도 않았고, 1시간을 연착했다.

엄청나게 큰 앙카라의 오토가르에서 대합실에 아내를 앉혀 두고 매표소로 가서 사프란

볼루 행 버스를 찿으니 '메트로' 버스가 3시 30분에 있다.

티켓을 사고 매점에서 빵과 아이란(요거트에 물을 탄 음료)을 사서 대기하다가 사프란볼루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3시간을 달려 캬라북에 도착했는데, 캬라북 입구에는 큰 공장이 밀집해 있는데, 

누렇고 시커먼 연기가 엄청나게 품어져 나오고 있다. 공장들은 처참하고 끔찍한 광경이었고,

굉장한 공해 배출 공장들 같아서 왜 이런 공장들이 도시의 입구에 있는지 의아하다.

60년대 우리네 사상공단 보다도 끔찍한 공장의 전경은 마치 영화 배트맨의 도시 '고담시'

같은 분위기다.

캬라북은 꽤 큰 도시였고 버스는 조금후에 사프란볼루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사프란볼루의 작은 마을 차르쉬.

차르쉬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크란쿄이라는 작은 마을을 거쳐야 한다.

사프란볼루 오토가르에서 세르비스를 타고 크란쿄이에서 내려 차르쉬 마을 행 돌무쉬를

또 다시 타서야 마침내 우리는 차르쉬 마을에 도착했다.

 

사프란볼루의 옛 마을 차르쉬는 단번에 마음을 사로 잡는다.

고즈녁한 마을의 풍경과 물씬 풍기는 옛 정취가 집에 온 듯 포근하다.

터키 전역을 떠돌다 마지막 기착지로 정해 몸과 마음을 추스려 이스탄불로 돌아 가려한

우리의 애초 계획이 잘 짜여진 것 같아 기분 좋다.

숙소는 '코나흐'라고  통칭되는 터키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을 호텔로 개조한 집으로

정했다.

어제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사프란볼루의 숙소 중에 괜찮아 보이는 곳을 점찍어 뒀다가 오늘

직접 찿아가 내부와 방들을 둘러보고 흥정하여 결정한 것이다. 

'셀빌리 코쉬크 호텔(Selvili Kosk Hatel)' '코쉬크'는 Kosk라고 표기되지 않고 'o' 위에 점이

2개, 's'밑에 점이 하나, 이렇게 터키식 영어다. 그래서 코스크 라고 하지 않고 코쉬크라고

발음한다. 코쉬크는 '큰 집' 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 호텔에 이런 부연 설명을 곁들이는건 이 호텔의 주인이 특별한 사람이어서다.

(이 양반에 대해선 나중에 부연하겠다)

다소 낡고 어둡지만 3층에 있는 공동 거실은 오스만 시대의 세도가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담소를 나눴을법한 넓고 멋진 공간이다.

그들은 이 멋진 거실에서 무슨 얘기들을 나눴을까?

오래된 라디오와 소파, 가구들, 무엇인가를 보관했던 보물상자 같은 커다란 상자, 그들을

훈훈하게 했던 무쇠 난로 등이 그대로 있는 흥미있는 공간이다.

복도에는 이 집의 옛 조상들인 듯한 사람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어 이 집의 유수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내일부터 이 흥미로운 마을을 자세히 탐방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