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막히고 쌔가 만바리 빠진날

운농 박중기 2013. 7. 30. 11:21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다고 오이 따고 가지 따고,

참외도 몇 개 따고...

 

예초기 꺼내서 (누군 고장 났다고 하더만) 네 날 짜리 갈아 끼우고

잔디밭 제초작업을 시작하니 땀은 비오듯, 속옷은 금방 쥐어짠 손수건 처럼 엉덩짝에 찰싹 붙고.

사타구니의 축 늘어진 별 볼일 없는 물건은 빗속의 가지 같이 이리저리.... 

자 이쯤이면 되것제... 하고 예초기를 던지고 나서

벌써 두달째 벼르던 산물 뚫기를 시작.

산물이란, 뒷마당에 물이 항시 졸졸 흐르도록 해 놓은 우리의 필살기 물건.

  

100미터 가량 깔아놓은 지름 5센티짜리 시커먼 관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더니

둑을 쌓아 막아 놓고 그 자리에 박아 놓은 파이프는 말짱하니 이상이 없어 뵈는데?

아래로 내려와 중간 연결부분을 열어보니 물은 콸콸.... 그럼 이것이 중간 어딘가에 막혔다는 소린디....

내 키만큼 큰 풀과 잡동사니 가지가 얽혀있는 파이프 묻은 위치를 더듬고 더듬어 이리 찔리고 저리 쥐어 박히며 내려가니

도대체 막힌 부분을 알 수가 있어야제.....

다시 몇 차례를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열 댓번...

물의 종착점으로 부터 50미터 지점쯤이 하 수상한거라.....!

그곳은 전에 깨져서 테이프로 몇 번을 칭칭 감아놓아 이상이 없을거라 여겼는데, 아니 아니, 이게 수상한거라!

테이프를 칼로 찢고 속을 들여다 보니... 아아! 이 환장할 노릇이!

잡초(아니! 엄연히 지 이름이 있것제!)의 뿌리 한가닥, 그 1미리도 안되는 실낱같은 것이 테이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떡하니 파이프 속에다 지 뿌리를 한없이 증식 시켜놓은거라!

이러니 뿌리가 파이프 속을 콱 메우고 있어 물길을 막고 있었던거라.....

 

50미터 쯤의 파이프를 전부 들어내는데, 칡뿌리는 감고 있지, 딴에는 약간씩 묻어 두었던 곳이 굳어 잘 일어나지 않지....

쌔가 빠지게 고전하고서야 겨우 50미터를 걷어 내서는

길에 끌고 가 쭉 벋쳐 놓고는

예의 그 뿌리 증식 부분(!)을 줄톱으로 자르니 오오! 1미리도 안되는 뿌리하나가 파이프 안으로 들어가서는

5센티 파이프를 꽉 메우도록 뿌리로 채우고 있는 이 기막힌!........

 

지난 봄은 유달리 가물었는데, 이 녀석은 바로 지 옆을 지나는 파이프의 0.1미리도 안되는 틈새를 발견하고는

지 신체의 일부를 그 속으로 박아 넣는 대역사를 시작한게지....

파이프 안의 막힌 부분은 25센티미터 정도였는데 마치 와인병의 병따개를 틀어막은 것처럼 되어있는거라.

 

자. 이제는 이 파이프를 교체하는 작업이 남았는데 어떻게 한다?

50여 미터의 파이프는 이미 땜방을 한 곳이 일곱 군데나 되니 이번 기회에 교체하기로....

청상 50미터쯤의 파이프를 사서는 연창씨에게 부탁하는 수 밖에... 화물차가 있어야 하니께.

 

오늘의 쌔가 만바리 빠진 얘기.

그렇지만 그 잡초(잡초라 하기엔 너무나 경이로운)의 놀라운 생존법은

맨날 빌빌거리는 내게 엄청난 경외감을 줬다는것......

허리 쭉 펴고, 고개 빳빳히 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는것.

 

10시간여의 작업을 끝내고 들어와 자판을 두들기고 있으니 벌써 졸음이.....

모두들 평안하시길!  잡초처럼 1미리의 틈을 뚫고 분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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