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수) 시에나 - 베로나
로마 도착 이후 줄곧 괴롭히던 감기 몸살 기운이 서서히 물러났다.
시에나의 '일 보르게토' 숙소는 난방도 가동되고 방에 냉기가 없어 회복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소 긴장감을 가지고 아침을 맞은것은 오늘은 시에나 역을 출발하여 베로나 까지 네번 열차를
타고 세번 환승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로마 도착한 날 테르미니 역의 전광판에 수십분씩 연착하는 열차 시간표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 정도로 열차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면 불과 10여분의 환승시간에 갈아 타는것이 도무지 가능
할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트랜 이탈리아'와 '레일 유럽'을 통해 열차표를 예매했을때, 시에나에서 베로나 구간을
검색하면 시간대별로 출발 정보가 나오는데 직행은 없고 모두 환승구간으로만 나오고, 환승시간도
모두 10여분으로 나오는 통에 어쩔수가 없었다.
가능한 여유로운 환승시간을 체크 했지만 이 구간은 전부 그랬다.
숙소를 나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으나 도무지 오지 않는다. 시간표에는 각 시간의 8분과
38분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시간표는 지켜지지 않는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시에나 역으로 향했다.
정류장의 조그만 종이에 인쇄된 깨알 같은 시간표는 그냥 시간표일뿐 애당초 지킬 노력 따윈 하지
않는다는걸 잘 알고 있다.
시에나 역 구내매점에서 오렌지 쥬스와 피자 한 조각으로 점심을 떼우고 1시 50분 열차를 탔다.
다행히 첫번째 환승역인 엠폴리(empoli)까지 2분만 연착해서 10분만에 플랫폼을 확인하고 갈아탔고,
그 다음, 그다음 역도 순조롭게 갈아타서 오후 늦게 베로나의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 역에 도착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먼 구간이므로 차질이 생기면 숙소 예약도 어긋나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아 은근히 걱정했던터였다.
베로나 역은 산뜻한 현대식 건물이었고, 역사 앞은 큰 광장처럼 넓다. 역사 앞에는 각지로 출발하는
버스들이 연이어 들락거린다.
여기는 도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미리 검색한대로 버스를 타고 주소를 찾아 숙소 앞에 쉽게 당도 했지만 아파트 입구에 손바닥만 하게
'Maison la Torre' 라는 숙소명과 전화번호만 있고 10개의 초인종 벨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어제 주인에게 메일을 보내 예상 도착시간을 보냈지만 기다리지 않고, 도착하면 전화를 하라는 얘기다.
할수없이 개를 데리고 산책중인 사람에게 부탁해 전화 했더니 10분만 기다리란다.
그러나 10분이 아니라 30분이 지나자 클라리체(이 집 주인 이름은 체크인 시간을 약속하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알고 있었다)가 조그만 차를 몰고 나타났다.
좀 화가 나기도 해서 얹잖은 얼굴을 했지만 이 클라리체는 할머니다. 마냥 인상을 쓰고 있을수만은
없잖은가.
3층에 올라 문을 여니 아파트 앞 길에서 우두커니 기다린 스트레스가 날아가게 집이 근사하다.
완벽하고 깔끔한 주방과 거실, 침실, 화장실, 나무랄데가 없다.
부킹닷컴(Booking.com)에서 2015년 Award에서 9.5점을 받았다는 팻말이 거실 벽에 있었는데 그럴만
하다고 수긍했다.
식탁 위에는 여러가지 과일을 담은 바구니가 준비되어 있다. '웰컴 과일'이란다.
클라리체 할머니는 한바탕 수다스럽게 부엌 설명, 화장실 설명, 베로나 명소 설명을 늘어 놓더니 떠날때
열쇠를 탁자위에 놔두고 문을 닫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짐을 풀고 인근의 초대형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잔뜩 사들고 오면서 오늘 하루의 긴장이 사그러졌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누울 곳 확보하고 먹을거 구해 집에 돌아오면 행복한 것이다.
그곳이 한국이든 이탈리아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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