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두번째 이탈리아, 그리고 부다페스트(12)

운농 박중기 2018. 6. 4. 21:41

4월 16일 (월) 시에나


밤새 푹 자고 일어 났지만 몸은 여전히 무겁다.

여행중 몸이 좋지 않을땐 사실 모든게 귀찮게 느껴지고 감흥마져 무뎌진다.

이상한 몸상태가 기분마져 우울하게 만든다.


다시 찾은 캄포광장(Piazza di Campo)은 여전했다.

조개 형태로 펼쳐진 아홉개의 구획표시가 광장을 가로질러 뻗어있고, 탑은 광장을 굽어 보고 있다.

이탈리아의 광장 중에서 가장 광장답고 우아하고 형태가 특이하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앉거나 누워서 따뜻한 햇살를 받고 있다.

나 역시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햇살을 받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어느 광장 보다도 평화로운 기운이

넘치는 공간이다.

이렇게 한참 햇살을 받고 누워 있으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에나를 떠올리면 항상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소이며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따뜻한 이미지가

내게 각인된 곳이다.

캄포광장의 사진을 여러장 찍어와 펜화에 수채를 입혀 몇 번이고 그리려 시도했지만 왠지 잘 되지

않아 포기하곤 했다.

아마도 이 광장에 대한 나의 특별한 애착 때문에 그림이 조금이라도 이미지에 부합되지 않으면

종이를 찢어버린 탓일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꼭 이 광장을 펜화로 그려 볼 생각이다.

성 도메니코(San Domeneco)성당 역시 여전했다.

좀 특별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항상 떠오른 곳이었다.

일반적인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와는 좀 다른, 그리 오래된 작품이 아닌 최근작일지도 모르는 청색

계통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곳이다.

내부에 별 장식이 없고 간결해서 오히려 경건한 기운이 충만한 그런 성당이다.

성 카테리나(San Caterina) 성당은 여전히 그 작은 규모가 오히려 정감이 갔다.

입구의 문에 조각되어 있는 철(鐵)조각상이 인상적이며 마당의 우물이 특이한, 정갈한 성당이다.

두오모(duomo)는 오르비에토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한층 더 정교하고 웅장하다.


2016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중세의 거리 시에나를 걷다가 몸이 극도로 피곤해지며 힘이 빠져 숙소로

들어와 버렸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이 말을 요즘은 곱씹어보고 있다.

내 속에 잠재하고 있는 끊임없는 방랑벽, 그것을 채우지 못하면 불편해지고 의미를 찾지 못하는, 좀

지나친 병이 분명히 내게 있다.

이 끊임없는 발랑벽은 사실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통제 하기가 어렵다.

그 방랑의 시간동안 비로소 나를 찾고, 새로운 것에 대한 충족감을 느끼며 내 주변의 것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야를 얻곤 했다.

그 장소가 어디든 중요하지 않았고,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을 떠나면 채워졌다.

그 원인을 가만히 유추해 보면 어딘가를 떠나 있을때만이 나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 자신이 보였다'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 희미하지 않고 명확히 보이고, 나 자신의 사고의 체계나

그 사고의 속도가 빠르게 아루어지며, 모든것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는것 같은(착각인지도 모른다)

것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참 어리석고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감성을 받아 들이는 막이 너무도 예민해서 걸핏하면 감동하고, 걸핏하면 상대에게 공감하고, 길거리

악사의 음악에 과도하게 감동하는 이 심약한 감성은 네게 너무나 큰 약점이기도 하거니와 또 주변의

상황을 예리하게 관통하게 되는 기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상태가 지속되고 예민함이 극도에 이르면 주변의 작은 불편함과 부조리함 등이 아주

크게 부각되어 몸 상태마져 형편없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것들을 어렴풋 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제 감성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의 가장 뼈아픈 

약점이다.

말하자면 이 나이 먹도록 자신에 대한 내공이 어이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방랑이 지나치게 잦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런 약점이 모두 몸상태에 전이되고 있었던것 같다.

과유불급, 성찰이 절실하다.

소로우는 '방랑하지 않고 침착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음미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아가며 내공을 

쌓지 않았던가.

주변의 소소한 변화, 계절, 호수의 빛깔, 노을과 오두막에 방문하는 작은 짐승의 움직임까지 발견하며

살지 않았는가.

스코트 니어링은 끊임없이 노동하며 주변을 가꾸고 자급자족을 위해 수입을 창출하며 강연도 이어가지

않았는가.

그들은 주변의 것에 애정을 갖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애정을 쌓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하고 있는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제 나라에선 글을 잘 쓰지 못하고 멀리 그리스의 섬에서 생활하며 글을 쓰는게

이해되고, 내게도 그런 DNA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번을 계기로 내 전반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돌아가면 내 방식을 새로이 정립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