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만나 점심 먹으러, 혹은 차 마시러 가는 이웃 늙은이 세 명이 오늘은 지리산 초입 마을 '산내'에
갔습니다.
그 중 Y선생은 전립선 암 환자입니다.
의사의 얘기를 저와 같이 가서 들었는데, 그는 이제 약 1 - 2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답니다.
이미 뼈에 전이되어 이제 짧으면 1년 정도후 고통이 시작될거라 합니다.
또 한 사람 B선생은 며칠 전 콧속이 문제가 생겨 계속 코피를 흘리는 통에 병원에 가니, 콧속의 혈관이
이상하게 뭉쳐 딱지가 아물고 터지기를 반복하여 크게 걱정했지만, 대구의 병원에 가서 가벼운 수술로
이제 괜찮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수일 동안 마음 고생을 한데다, 수술받는 과정이 티비에서 본 것처럼 거창해서 심히 쫄아
입술이 터지고 눈이 쾡하니 되어, 마치 수 년을 병상에 누워 있었던 사람처럼 보입니다.
Y선생은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런 그에게 지지를 보냈고요.
수술, 방사선, 신약 치료 등이 있다고 의사는 말했습니다.
그 방법들로 제대로 호전될 확율은 20% 내외라는 말을 곁들이면서 그랬습니다.
그는 표면적으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의연하게 보이고요.
좋아하는 모자 패션을 더욱 더 즐기면서 말입니다.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79세 입니다.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여기신걸까요. 그래서 크게 낙담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로 하신 것 같습니다.
만일 그가 60대 라면 얘기가 달라질까요? '아직 멀었는데 벌써? 이건 좀 억울 하잖아!' 할까요?
거의 모두가 120년 정도 산다고 한다면 그땐 무척 억울해 하실테니 역시 '거의 모두의' 수명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들 그 정도 살잖아! 너만 더 살기를 바라는거야?' 이러면 곧 납득이 되니까요.
'납득'이 중요합니다. 60대에 죽음이 찾아오면 '납득'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의 의연함을 높히 삽니다.
그러기 쉽지 않을테니까요.
'납득' 했다 해서 다들 의연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렇지만 어느날 먼 발치에서 바라 본 그의 뒷모습이, 평소 유난히 꼿꼿했던 등과 허리가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을때 제 마음속에선 빗장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알 수없는 울컥함이 차 올랐지요.
요 밑에 사는 73세의 영감님 P씨는 어느날,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책을 읽다만 것을
무심코 보더니만 '뭐 이런 책을 읽고 있어!' 합디다.
그는 항상, 적어도 100년은 살 것처럼 얘기하십니다. 엄청난 식욕과, 재물욕이 충만한 양반입니다.
정말 그의 자신감 처럼 100년은 거뜬할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갑작스런 중병이 온다면(그 양반에게 대단히 불손스러운 얘기여서 미안 하지만) 그의 반응이
어떨까요?
60대 후반의 B선생은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건강 염려증 환자'입니다.
약간이라도 이상 증세가 오면 '야! 이거 전에 티비에서 얘기하던 그 병 아냐?' 이러고 끙끙 댑니다.
의사들이 출연하는 티비를 너무 많이 봅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지 영양사가 아닌데, 태연히 '뭐를 먹으면 어디에 좋고, 뭐를 먹으면 어디에 해롭다'고
공연히 얘기하는것을 믿지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 했지만 제 말은 귓등으로 흘립니다.
이 두 양반과 저는 오늘도 뭉쳐 국수를 먹으러 갔습니다.
산내의 젊은 새댁이 만들어 내온 국수는 맛났습니다.
우리는 오랫만에 웃고 떠들고, 농을 하면서 즐겁게 놀다 돌아왔습니다.
이 두 양반이 어느때 내 옆에서 사라질 날이 오겠지요.
얼마간의 세월을 보낸후 나도 그들을 따를거고요.
'희랍인 조르바'를 펴낸 니콜스 카잔스키의 묘비명이 떠오릅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뜨거운 여름 한 철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독한 더위도 몇일 있으면 서서히 꼬리를 접고 사라질거라는걸 우리는 알지요.
그래서 견딜수 있는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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