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로마 - 베네치아)
아침, 주인장에게 16일 다시 오마고 약속하고 짐을 꾸려 나왔다. 8시 35분발 베네치아행 고속열차.
테르미니 역에서 전광판을 보니 5번 플랫폼이다. 점심으로 먹을 빵과 생수를 사고 플랫폼에 돌아오니
7-8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플랫폼 문을 열지 않았다.
테르미니 역은 평면에 플랫폼이 있고, 열차가 들어와 있어서 빤히 보이는데다 플랫폼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7번 플랫폼만 열려있고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이 보일뿐 도무지 5번은 열리지를 않는다.
역무원도 눈에 띄지 않아 조금 기다렸으나 마찬가지다. 이제 시간은 3분밖에 남지 않아 이거 이상하다
싶어 7번 플랫폼으로 그냥 들어가 안에서 모두 개방되어 있는 5번 플랫폼으로 들어갔더니 열차가 서 있다.
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역무원이 열차 옆에 서 있길래 티켓을 보여주니 빨리 타라고 한다.
열차에 오르니 승객이 가득하다. 이미 승차를 완료한 것이다. 캐리어를 선반에 올리고 의자에 앉자 열차가
출발한다.
정직하게 5번 플랫폼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면 열차를 놓친 것이다.
플랫폼 안은 다 개방되어 있으므로 인근의 플랫폼을 열면 들어가서 목적지 열차를 타면 되는 것이다.
이런!...... 우리네 처럼 서울가요, 서울!, 부산가요 부산행 손님 타세요!를 외쳐주면 모를까 이런 식이라면
실수하기 딱 좋다.
열차는 4시간 가까이 달려 피렌체를 거쳐 베네치아로 달린다. 차창밖의 농촌 풍경은 생각보다 풍요롭다.
봄이 와서인지 밭들은 깔끔하게 갈아놓아 보기 좋고, 잘 정돈된 농촌 풍경이 아름답다.
러시아 뻬쩨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를 달리면서 보던 농촌의 피폐한 풍경과 대조된다. 그곳은 조금은 궁핍
해 보이고 스산했으며, 조금은 무질서하게 보였는데 이곳은 제대로 체계가 잡힌 모습이어서 마음이 편하다.
남의 나라에서 농촌을 볼때 풍요로워 보이면 마음이 편한것은 내가 시골에 살기 때문일까? 그 보다는
약자=농민 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열차의 행로는 지나치게 길고 많은 터널이 수시로 시야를 가려 참 불편하다.
베네치아의 종착역인 산타 루치아 역에서 한 정거장 못미쳐 메스뜨레 역에 내렸다. 베네치아 본섬에 숙소를
정하지 않고 육지쪽에 숙소를 정한 것은 우선 값이 좀 싸고, 본섬에는 낡은 건물이 많고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정보가 있어서 육지쪽에 정했다. 그렇지만 육지쪽은 관광의 중심지인 본섬과 버스로는 13분
정도, 열차로는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 매일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베네치아에도 한인 민박이 많아 미리 예약을 했는데, 메스뜨레 역에서 찾아 가기가 쉬웠다. 바우쳐에 적힌
약도와 주소대로 찾으니 걸어서 7-8분 정도 걸린다.
젊은 주인장은 밝고 경쾌한 젊은이다.
짐을 풀고 바로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산타루치아 역으로 갔다. 어서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 싶었던 까닭
이다.
산 마르코 광장은 사실 나에겐 엄청 기대가 큰 곳이다. 언젠가 TV에서 산 마르코 광장의 전경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천국 같던 광경이 언제나 가슴 한 곳에 있었던 것이다.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다.
주인장이 건네주는 우산을 받쳐들고 본섬의 정류장에서 내려 산타 루치아 역으로 향한 다리를 건너자
대운하가 나온다. 드디어 베네치아에 온 것이다.
그러나 처음 본 베네치아의 인상은 '엄청 낡았다' 라는 인상이다. 수백년전에 건설된 도시가 낡은 모습이라는
것은 당연한데 왠지 실망감 비슷한 것이 고개를 든다.
왜 나는 이 도시가 그렇게 밝고 반짝일거라고 믿고 있었을까? 그 TV 화면에서 본 산 마르코 광장의 찬란한
광경이 베네치아의 전체 모습으로 각인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시간여를 걸어 리알토 다리를 지나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길은 간혹 작은 광장이 나왔다가, 간혹은 좁은
골목길이 나왔다가 수많은 수로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는 미로와 같다. 한번은 이정표를 잘못 봐서 한참을 빙
돌아 제자리를 맴돌기도 했다.
그리하여 당도한 산 마르코 광장. 장엄하고 웅장하다. 그러나 역시 많이 낡았다. 직선으로 뻗은 엄청나게 큰
광장을 에워싼 건물들은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남았다.
산 마르코 성당의 외양은 좀 지나치게 화려하다. 벽면과 지붕등에 지나치게 많은 조각상들이 있어 번잡스럽다.
그렇지만 바다 쪽이 보이는 곳은 역시 대단한 아름다움이 있다. 두개의 탑이 솟은 바다쪽은 이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도 뭔가 신성한 분위기와 함께 빛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 두탑과 함께 있는 바다쪽은 날씨가 화창하고 햇빛이 내리면 정말 아름다울꺼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내 머릿속에 각인된 산 마르코 광장은 환한 태양의 계절인 것이 떠올랐다.
적어도 여기에 3일은 머물 예정이니 햇빛 찬란한 산 마르코를 볼 수 있을테지 자위하며 광장을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배가 출출해 피자 레스토랑에 들어가 '나폴리 피자'를 시켰더니 짠데다 별로 맛이 없어 영
실망이다. 하긴 이탈리아라고 해서 피자 맛이 다 좋으랴! 터키에서 자주 먹었던 그 맛있는 '피데'가 생각난다.
자기들 얘기로는 피자의 원조가 피데라고 했지만......
아무튼 내일을 기대하자.
베네치아의 한인 민박 '마르코 폴로'의 주인장은 역시 연변 출신의 30대 중반 젊은이다. 아주 친절하고, 손님
맞이에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안스러울 정도다.
여기서도 도미토리를 예약 했는데 역시 비수기라 6개 침상에 20대 젊은이와 나, 둘 뿐이다.
그는 포도주를 한 잔 받쳐들고 들어와 얘기를 나눴는데, 말하자면 이탈리아 한인 민박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터를 잡고 있던 연변 출신 부인과 결혼해서 민박집을 개업해 이름을 바꾼지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집은 따뜻하고 쾌적해서 전혀 불편함은 없다. 식당에서 일을 많이 해 봤다는 주인장의 음식 솜씨도 수준급이다.
그와 두어시간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같이 잘 반듯한 젊은이가 돌아왔다. 예의 바르고 잘 생긴, 호감가는
젊은이다. 그 역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직장을 다니다 군대에 가기 보름전 이 여행을 시작했다 한다.
한국의 '헬조선'에 대해 얘기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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