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3)라오스 홀로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11. 27. 09:53

2013년 11월 5일

 

새벽, 여명이 오기 전에 잠이 깨버렸다.

어디선가 작은 종을 타종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더니 갑자기 개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몇 마리 되지 않은듯 싶었는데 점점 그 세력이 더해져 합창처럼 

들리다가 점차 사그러든다. 무슨 일 일까?

시계를 보니 아직 사원의 타북시간이 되진 않았다.

루앙프라방의 새벽은 사원의 북치는 소리로 시작된다, 그 북소리는 참 듣기 좋다.

두두두두....둥둥...... 결코 큰 소리는 아니고, 마치 먼 북소리처럼  아스라하게 들리다가

점점 가까워지는 그런 북소리다.

정각 6시면 시작되는 북소리는 서른개가 넘는 사원들에서 일제히 시작되므로 어느 집

에서든 들리게 되어 있다.

잠자리에서 깨어나 북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더구나 이국의 아침을 맞는 나그네의 귓전엔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소리다.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새벽이면 울리는 그 요란한 종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곳 힌두사원에선 일제히 타종을 시작할때마다 살짝 짜증이 났었다. 쇠종을 한 두개가

아닌 수십개의 작은 종을 일제히 때리므로 그 소리는 지독한 소음에 가까워 이부자리

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그렇지만 루앙프라방의 북소리는 귀를 기울이고 이불속에서 듣게 된다.

 

어제 저녁엔 H가 제안한대로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던 터라 '빅 트리' 카페로 갔었다.

7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길을 잃었나 했더니, 나는 메콩 강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H는 옥내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장기 체류자 몇과 온다던 H는 60대 초반 작은 키에 마른  한국 아줌마와 같이 나타났다.

셋이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나와 동갑인 S는 교사출신으로 이제는 퇴직하고 홀로 여행을 다닌지 20년쯤 되었다고

하는데, 재직시에는 틈틈히, 퇴직후에는 수시로 여행을 한다고 했다.

자신감이 넘치지만 좀 시니컬한 면이 있고 상당한 달변이다.

여행 얘기, 한국 얘기, 집안 얘기등을 나누었는데 여성들 특유의 길어지는 말 때문에

별로 끼어들 여지가 없어 거의 그녀 얘기를 들어 주었다.

그녀는 아주 특이하게 '단정적 자기확신형'이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흉을

보자면, '그건 틀림없이 이거야!' 라든지, '그건 별거 아니고 이게 정답이야!' 식으로,

같이 대화를 나누는 상대를 좀 머쓱하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

대체로 남의 경험이나 가치관을 쉽게 부정해 버리고 자신의 확신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투라 같이 대화를 나누기 힘겨운 상대였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좀 곤란한 기분을 가지게 되어 입을 닫고 있었기 망정이지 그녀와 가벼운

토론을 하거나 견해를 나눴다면 난처한 기분을 느낄뻔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녀와 H가 얘기 나누는 것을 듣고 있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네 사회엔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요즘 부쩍 많이 회자되고 있는 '선거 부정'이나 '관권 개입', 또는 '좌우 논리'등에서

이런 류의 '자기 확신'이 넘쳐나서는 상대를 '종북 주의자'라고 하거나 '보수 꼴통'

이라고 하는 등 사나운 말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네 사회 아닌가. 상대의 논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논리의 정당성을 상대에게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그건 아냐!' 하는

사나움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이웃간엔 절대(!) 정치 얘기를 하면

안된다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한다. 정치 얘기를 했다 하면 싸우기 십상이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오랫동안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자신의 논리는 나름대로 세워두고선 그에 상반되는 논리가 다가오면 상대의

논리가 타당하든 경청의 여지가 있든지는 차치하고 자신의 논리 방어를 위해서만

대화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토론'이 아닌 것이다.

 

거의 20년을 여행하며, 우리네 체제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삶을

경험 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과 계급과, 삶의 형태를 경험 했을터인데 왜 저렇게 '자기 

확신'이 강할까?

나의 경우는 그런 여행의 경험이 쌓일수록 '자기 확신'이 점점 없어지는데......

우리 사회와 다른 나라들을 많이 경험하고 여러 현상을 목도하고, 나라마다 보여지는

여러 형태의 계급을 보고나면 어떤 '주의(主義)' 라든지 '체제' 라든지, '사회 형태' 나

'종교의 역활' 등등의 진실이 한가지로 축약되는 결론이 없다는 것을 느낄수 밖에 

없었는데......

나의 우유부단한, 부족한 내공 때문일까......

아무튼 '자기확신'이 강한 S가 대화를 주도해 갔고 마침내 그녀의 남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녀의 남편은 대구의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온 '머리 좋은 수재'로서 교장 선생 출신

인데 이른바 '못 하나 칠 줄 모르는 남자이며, 자기 손으로 라면 하나 끓일 줄 모르는

남자'라는 것이다.

여행을 같이 동행한 적이 있는데, 여행중 해결해야 하는 모든 문제들이 그녀 자신만의

몫이 되어 남편은 그저 성가신 존재로,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 비행기가 불편하다,

덥다, 춥다 등등으로 이제는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S의 표정으로 보자면 그런 남편을 비난해야 함에도 은근히 자랑하는 쪽이다. 말하자면

'샌님 출신의 귀하신 몸이라 아랫것들이나 하는 일은 일체 하지 않는' 그런 귀족이다,

뭐 그런 얘기다.

사실 이런 비슷한 표현의 얘기를 몇몇 여성으로 부터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오호, 그래요? 벽에 못 하나 못 치신다고요?' 하니 그녀는 남편이 '문과 출신'이라 

그렇단다. 문과고, 이과든 제 손으로 못질도 못하는 인간이란게 진짜 있기는 한걸까?

못질을 못하고 라면을 못 끓이는게 아니라 그 따위 일은 하기 싫고, 또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제 손으로 제 입에 들어 갈 라면 하나 못 끓인다면

아예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인간이라는 얘긴데 이게 말이 되는건가?

하긴 실제로(!) '못질도 못하고 집안의 전구도 못 갈아 끼우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은 있다.

대체로 그런 인간은 경멸의 대상이지 자랑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못질 하나도 못하는 인간'...... 그게 어디 사람인가? 사람 구실 못하는 등신이지.

 

어찌보면 그녀는 귀하신 몸인 남편과 그녀의 표현대로 '아들에게 자신의 살을 떼어줘도

아깝지 않다'는 시어머니의 등살에 몸서리가 난 나머지 자신의 치유를 위해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오르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토록 남편의 '무능'을 자랑해선 안되는데......

우리 셋은 그렇게 메콩 강변에서 오랜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H는 귀국을 위해 내일 비엔티엔으로 떠나고, S는 아직 일정이 일주일이나 남았다고

했다. 체류중에 그녀와는 되도록 만나지 않기를 ......

몇일전, 이제는 스시집을 운영하는 직장후배 녀석이 전화해선 '형님, 나도 방비엥에 가서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주인에게 갈비찜하는 법을 전수해 주고 왔는데요' 하길래 '야!

한국 사람 보기 싫어 한국 땅을 떠났는데 한국 사람 하는 집엘 왜 가냐!' 고 농으로 대꾸한  

적이 있었다. 여러 차례의 여행에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업소에서 그리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던 까닭에 되도록 피하고 있긴 하지만 어디 한인들이라고 다 그러랴.

하지만 현지인들에게서 게름칙한 대접을 받을 경우 의사 소통의 곤란으로 디테일한

불쾌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한인의 경우는 고스란히 좋지 않은 기분을 느껴야 하니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여행객 끼리의 불쾌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루앙프라방에 머물다 돌아 온 사람들의 글을 보면 한결같이 이곳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소박한 사람들에 대한 감상과 골목길에서 부딪히는 일상들의 추억을 그리는 글이 많았다.

루앙프라방은 과연 그러하다.

특별히 따스한 눈길로 바라 보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우리네 사회가 잃어 버린, 그렇지만 불과 얼마전까진 지니고 있던 소박과 여유와 느긋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비엥에서 보듯 그런것에 대한 파괴의 징후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옛 소박하고 정겨운 추억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돌아 가려고는 하지 않는다.

가끔은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왜일까? 문명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그것이 본성

이라면 정말 좋겠지만)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것이라는건 잘 알면서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비행기로 5시간을 넘게 날아 왔지만 스마트폰으로 단숨에 메세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고

사진을 공유하는 세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조류는 영원히 멈추지 않고 계속 될 것이고, 인간은 점점 '되도록 움직이지 않고', '굳이

말하지 않고', '굳이 듣지 않고' 를 계속하다 결국엔 '굳이 생각하지 않고' 까지 도달할

것이다. 마침내 유토피아의 완성! 인간이라는 고지능의 동물이 갈 길인 것이다.

루앙프라방은 '그래선 안돼! 너희는 그따위 유토피아는 만들지는 마!' 하는 메세지를 준다.

카트만두가 그랬고, 포카라가 그랬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30년쯤 후에 루앙프라방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밥벌이를 위해 전통가옥들을 보존하고 왓 씨앙통을 보수하여 태국의 왕궁과 비슷한 꼴을

만들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사람들의 표정과 웃음과 수줍은 미소는 그대로 존재할까?

새벽의 탁발공양 행사는 더 화려하게 재연될 것이고, 시장통은 깔끔하게 정비될 것이며

노점상은 세련된 수레위에서 영업을 할 것이다. 메콩 강변은 정비되고 배들은 소음없는

쾌속선으로 대체되고 길거리의 툭툭은 분명 사라질 것이다.

어휴! 이건 별로 낙천적이지 못한 상상이다.

 

내일 이곳을 떠나기 위해 배낭을 꾸릴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을 자주 찿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걸 알고 있다.

 

돌이켜 보면 '완벽한 홀로 여행'은 불가능 했다. 혼자 떠나는 길이라 '홀로 여행'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레스토랑, 제과점, 게스트하우스 어딜가도 와이파이라는 인터넷 거미줄이 빼곡히 얽혀

있어 스마트폰으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가족과 메일을 주고 받고, 떠나온 곳의 주요

뉴스를 들여다 보고...... 전혀 혼자 있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홀로 여행'은 실패한 것이다.

다음 기회가 온다면 휴대폰은 던져 두고 와야 한다. 온전한 '혼자 있기'를 위해서......

그렇지만 한심한 내공을 지닌 인간이 외로움에 지쳐 심신이 난처한 지경이 되지 않기

위해선 그것은 또 필요하기도 했다. 결국 나 역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별 수 없는 것이다.

 

한동안 루앙프라방 향수병에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리워할 곳이 있다는건 행복한 것이다.

먼 북소리가 들리듯 이곳이 그리워 지면 다시 이곳을 찿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