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2)라오스 홀로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11. 25. 11:42

2013년 11월 4일

 

종아리가 뭉친것이 풀리지 않아 하루를 완전히 뒹구는 날로 작정했다.

그러나 타관에서 식사는 거르지 말아야 하는 법,

좀 멀긴 하지만 달라마켓 앞 카오소이 아줌마집으로 나선다. 역시 실망 시키지 않는다.

이마에 땀이 솟고 몸이 가쁜해 진다.

이국에서의 뱃속은 괜찮아, 상관없어 하면서도 가끔은 뜨거운 국물을 필요로 한다.

하긴 수십년 식생활에 물든 뱃속이 이국의 음식이 마냥 좋기만 할까......

나 처럼 이국에서 한국 음식을 찿을 필요가 거의 없는 체질도 가끔은 그렇다는 얘긴데

루앙프라방에선 카오소이가 그런 상쇄 역활을 톡톡히 한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향하다 어제 만났던 홀로 여행객인 한국 노처녀 H를 만났다. 

선량하나 세월의 흔적이 묻었고,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목도한 것 같은, 역시 그녀는

불우 청소년, 이웃, 장애인들의 전문 상담직이라 한다.

그녀와 강변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것 저것 얘길 나눴다. 말이 통하고 생각이 트인 여성

이다. 낮에는 혼자 다니는 것이 좋지만 저녁시간 혼자 식사할 때가 영 별로라고. 어제

라오스 장기 체류자 몇을 만났는데 오늘 저녁 그들과 뭉쳐 저녁 먹고 맥주도 한잔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좋지,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헤어졌다.

 

발코니에 앉아 망고(1킬로에 3,600원)와 토마토(1킬로에 900원)를 먹는다.

갑오징어 등뼈같은 망고의 씨앗이 귀찮지만 곧 익숙해져서 회 뜨듯이 양쪽을 발라

내고 그 껍질은 남긴채 알맹이만 살짝 꺼내 먹어야 하는 디테일한 작업이다.

하지만 그 수고의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 맛있다.

시장은 활기차고 풍성하다. 사람들의 얼굴은 느긋하고 별 걱정없어 보인다.

우리네 시장도 활기가 있긴 하지만(요즘은 재래시장이 많이 우울하다) 이곳에는 없는

'억척스러움'이 있다. 이곳에는 '여유'와 '느긋' 그리고 '평화스러움'이 있다.

과일이나 채소, 생선과 육류, 곡물과 땔감, 향신료와 옷가지 등도 이곳 사람들 특유의 

'진열정신'은 여전하다. 가지런히, 보기좋게, 가능한 예쁘게 진열한다. 이 사람들 특유의

성품인지 아니면 관습인지, 볼때마다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거리의 툭툭은 나른하다.

여행객들은 미니버스 투어를 떠나고 남은 여행객은 하루 3천원 짜리 자전거를 빌리

거나, 하루 8천원 정도에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다니니 한가로울 수 밖에......

그들 곁을 지나면 ' 툭툭......' 하거나, '워터풀 또는 케이브' 하며 목소리에 힘이 없다.

툭툭은 오래지 않아 카트만두의 릭샤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자동차는 약 70%가 일본 토요타 제품인데 그중 'HILUX'라는 SUV차가 상당히 많다.

우리네 SUV보다 덩치가 크고 고급스러운데 도무지 이들의 소득수준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굉장히 많은 수의 새차가 거리를 누비고 있다.

거리의 자동차는 일본차가 70%, 한국차가 25%, 미국차와 유럽차를 합해 5% 정도다.

자동차에 관해서라면 라오스는 네팔이나 인도 보다 한참 우위의 수준이다. 오토바이도

태국보다는 적고 골목길을 헤집고 다닐 정도로 많지 않다.

간혹 중국차가 눈에 띄는데, 그 외관과 내관을 보고 사실 깜짝 놀랐다. '중국제'라면

허접한 물건으로 치부하는 한국에서의 인식이 있어선지 이 차는 성능이나 내구성은

내가 알 길이 없지만 외관은 세계 어느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내장은 그 재질의

고급스러움이나 세련된 디자인이 우리네 고급 대형차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성능이나 내구성을 갖춘다면 한국과 일본은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느낄

정도다.

 

점심식사로는 아침에 조마 베이커리에서 사 온 그 유명하다는 치즈케잌 한 조각과 토마토,

망고로 해결했다. 치즈케잌 한 조각 3천2백원, 토마토와 망고를 합하면 숙소옆 전통식

라오스 고급 요리 가격 보다 비싸다.

라오스에서는 물가에 대한 개념이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시장에서 몇가지 재료를 상당히 싸다고 생각되어 몇가지 구입했다면, 그만한 재료가

들어간 음식값 보다 비싸고, 제대로 된 한끼 식사의 가격이 3-5만낍(4천5백원-7천5백원)

인데 반해 게스트하우스 1박의 가격이 5-7만낍(7천5백원-1만원)으로 식사비와 별 차이가

없다.

또, 여행사 투어의 가격은 이상하리만치 싸다. 오전 오후 전일 2군데 투어를 미니버스,

배 등을 이용해 여행객을 나르고 픽업 서비스 까지 하면서 12만낍(1만6천원) 정도다.

그에 반해 1시간 전신 맛사지비가 5만낍이다.

공산품은 제조업이 빈약한 라오스의 사정을 감안해서 비싸다고쳐도 거리에 수많은 

일본제 고급차들이 굴러 다니는 것을 보면 도무지 라오식 물가의 카오스는 이해불가 한

것이다.

이들의 소득수준으로 보면 사람들의 주머니가 전부 자동차 구입을 위해 있는것 같다.

하긴 이곳도 부자가 있을것이고, 형편이 넉넉한 이들이 있겠으나 자동차만을 보면 도무지

이 나라 소득수준이 헷갈리는 것이다.

 

어제 함께 꽝시폭포 투어에 참가했던 젊은 커플이 새삼 생각난다.

이십대 중반이나 후반으로 보이는 이 커플은 독일인이었는데 그중 여자애의 매력이 남달

랐다. 여자애는 아주 밝고, 잘 웃고, 남들에게 친절하고 결코 미인이랄수는 없지만, 아주

좋은 표정을 지니고 있었고, 상대인 남자애는 독일인 특유의(여행지에서 많이 봐왔던) 다소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커플이 자꾸 눈에 들어온 것은, 여자애는 천진하게 웃고, 계속해서 말을 걸지만

남자애는 고개만 끄덕일뿐 거의 대꾸가 없는 등, 다소 언밸런스한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여자애는 분명 부모에게서 사랑을 뜸뿍 받으면서 성장한 것이 분명하고, 남자애는 그 반대

일거라는 생각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여자애는 상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서양

애들 같지 않게 천진한 웃음을 보이지만 남자애는 지나치게 냉담해 보이는것이 나중엔

조금 밉살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폭포 아래 수영이 허용된 곳에는 큰 나무에 발판과 로프를 매달아 놓아 누구라도 올라서

뛰어내리게 해 두었는데, 여자애는 간이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서는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렸다. 아래에서는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하는데도 남자애는 시큰둥하게

바라볼 뿐이다. 보는 내가 한대 쥐어박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애의 진면목(?)을 보게 된것은 폭포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소수민족

마을을 방문했을때였다. 11명이 같은 차로 이동하다보니 다 같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는데

마침 여자애가 내 뒤를 따라올때 였다.

세살쯤 된 마을의 어린아이가 내 앞을 쪼르르 달려 왔는데 이 애가 너무 귀엽게 생겼다.

애는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내가 볼을 살짝 건드리며 웃었더니 애는

자지러지게 웃는다. 뒤를 따라오던 여자애가 감탄을 연발하기에 돌아보니 역시 그녀도

애를 보고는 어쩔줄 몰라하며, 나를 보고 '아아! 너무 귀엽죠? 그렇잖아요?' 하는 듯이

활짝 웃는다. 굉장한 매력을 지닌 웃음이다. 티끌 하나없이 맑은, 완벽한 천진과 방심과

행복한 웃음이다. 아! 나는 그 순간 이 딸아이 보다 어린 처녀에게 매료되어 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표정을 한 미소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 환한 미소는 세상의 선(善)을 옹호하고, 세상의 악을 단칼에 날릴수 있는 미소였다.

인간의 미소가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다니...... 어찌 매료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뒤따라 오던 남자애는 그런 제 여자친구를 보고도 시큰둥 하다. 도대체 저 녀석은 제 여자

친구의 진면목을 알고 있을까?

서양아이 치곤 키가 작고, 얼굴도 약간은 동양적으로 생긴데다 날씬한 체격도 아닌 여자

아이에게 이끌려 먼 아시아의 나라에 까지 함께 했다면 적어도 이 여자애의 매력은 알고

있어야 하는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 녀석은 계속 시큰둥...... 다시 한번 이 녀석을 쥐어박고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환한 미소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나는 타인에게 그런 미소를 보인적이

많을까? 아니, 있을까? 이제 부터라도 저 여자애의 미소를 배워야겠다. 적어도 남을 매료

시키진 못해도 내가 그다지 딱딱한 인간이 아니라는 성의는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미소란 이렇게 찬란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보다 40년은 덜 살아 온 어린 

여자애에게 배운다.

그 여자애의 너무나 매력적인 미소가 한동안 머릿속을 채울 것 같다.

이 나라에 와서 소중한 한가지를 새삼 배우고 있는 것이다.

거리낌 없고 밝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미소를 이제부터라도 연습하고 또 연습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