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9)라오스 홀로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11. 22. 10:05

2013년 10월 31일

 

오전을 쉬고 왓 씨앙통을 다시 가기로 했다.

왓 씨앙통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고 싶기도 했지만 남은 일정을 보낼 게스트하우스를

미리 물색해 보기로 했다.

지금의 숙소는 아무래도 볼거리와 야시장, 먹거리가 몰려 있는 왕궁에서는 멀어 매일

왕복 하는것이 번거럽기도 했고, 다양한 숙소 경험을 하고픈 욕심도 있었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무는 비교적 장기간 여행객의 경우 숙소는 여러가지 분위기 전환의

의미가 있다.

한 곳에 머무는 것이 편리함도 있지만, 여행지에서 느끼고 싶은 다양한 경험,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여행지에서의 변덕'은 꽤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왓 씨앙통은 역시 아름답다.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모자이크 벽면은 반짝이고, 사원

지붕 꼭대기의 옥색 새는 황홀한 색감을 자랑한다.

법당 뒷면의 나무와 부처의 생애를 담은 대형 벽화는 이 사원의 아름다움의 극치다.

이 벽화 앞에서 반시간은 서성거렸다.

떠나기 전에 이 사원을 두어번은 더 들락거릴 것 같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빅 트리(Big tree)'에 가서 주인장에게 게스트하우스 추천을

부탁하니 뜨거운 햇볕 아래 서슴없이 나서서 안내해 준다.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카페 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그녀는 작은 체구로 당차고

성실한 인상이다. 여러차례의 여행 경험으로 봐서 현지에서 만난 (자의든 타의든)

한국인들의 몰인정과 불친절, 그리고 쌀쌀함이 이상하게도 라오스에서는 없다.

그녀가 안내한 게스트하우스는 싸기는 했지만 너무 낡아, 하루라면 몰라도 4-5일을

보내긴 좀 그렇다.

이리 저리 헤메다 발견한 남쏙(Nam sok)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 아주머니의  순박한 얼굴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고, 그녀의 조심스럽고도

희미한 미소가 라오스의 전통적인 얼굴 같아서 좋았다.

미리 들여다 본 침실은 시트가 풀을 먹여 빳빳할 정도로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고

타월은 새것 마냥 깨끗하다.

이틀후 짐을 옮기겠노라고 약속했다.

점심은 베이커리에서 빵과 케잌으로 떼우고 이 사원 저 사원에서 그림 두장을 그리고

저녁이 되자 야시장으로 향했다.

우선 야시장 한켠 골목의 이른바 '나이트 푸드 마켓', 좁은 골목 50여 미터에 먹거리

시장이 펼쳐져 있는데 말하자면 부산 국제시장의 먹자 골목과 비슷하다.

풀빵(우리의 70년대 까지 이런 풀빵이 있었다), 과일 쉐이크, 숯불에 구운 생선과 고기, 

만낍(1,400원)짜리 부페, 순대와 소세지 구이, 온갖 튀김과 야채 요리들, 심지어 채식

주의자들을 위한 베지테리언 메뉴...... 그야말로 루앙프라방의 먹거리는 여기 다 모여

있다.

숯불에 굽는 생선과 고기 타는 연기로 골목은 뿌옇고, 이 진기한 먹거리 시장에 매료된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젊은 백인 여행객들이 라오 맥주를 마시며 왁자하게 떠들고, 노부부가 조용히 앉아

생선 살을 발라내고 있다. 

특이하게도 라오스에서는 숯불이 어딜가나 있었는데, 라오스에 들어 온 이후로 음식물의

조리는 이 숯불로 하는 것 외는 본 적이 없다.

가정의 찹쌀밥 짓는것은 물론, 레스토랑과 길거리 계란 부침개 장수, 이 야시장의 생선

구이까지 전부 숯불로 조리된다. 그래서 장터에 가면 어디에나 숯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어떤것은 대나무 숯 같기도 했지만 우리의 참나무 숯 같지는 않았다.

숯불에 막 구워낸 내 손바닥보다 훨씬 큰 민물생선 한마리와 꼬챙이에 꽂아 역시 숯불에

구워낸 돼지고기를 사고, 마실 것으로는 바나나와 망고가 들어 간 쉐이크를 사서

테이블에 놓으니 아차! 너무 많다. 생선 한마리 2만 5천낍(3,600원) 돼지고기 꼬치구이

1만낍(1,400원), 쉐이크 1만낍, 해서 합계 4만 5천낍(6,500원) 이다. 한끼 식사비로는 

라오스 식으로 해도 과도하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돼지 고기를 남겨 숙소로 가지고 

왔다. 생선은 생각보다 배가 부를 정도로 살이 많았고, 돼지고기도 숯불향이 배여 아주

맛있다.

 

야시장에는 갖가지 물건들을 바닥에 펼쳐놓은 형태로 진열하는데 이 진열의 모양이

기가 막히다. 라오스인 특유의 정돈, 꾸며 진열하기 방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예뻐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몇번씩 둘러 보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다.

정말 이들의 정리, 꾸미기, 가꾸기는 알아줘야 한다.

누가 저 물건들을 사고 싶지 않겠는가.

티셔츠, 여자 바지(몸뻬 같은), 수공예품, 금속공예품, 목공예품, 보석류, 신발, 장식품 등

온갖 물건이 다 있다.

이것들을 파는 사람은 모두 여자들인데 라오스 여성들의 느낌은 각별하다.

대부분 키가 작고 몸매가 갸날픈 사람들인데 별로 살찐 사람은 없다.  특히 젊은 여성 

들이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다. 갸날프고 잘록한

허리, 긴 머리를 날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 '섹시' 어쩌고 하는 것 보다는 '소박하고

이쁜 모습'들이다. 네팔이나 태국의 여자들 보다 훨씬 아름다워서 거리가 밝아 보인다.

특히 태국의 여성들은 경계하는 듯한 눈빛과 작은 체구로 당찬 느낌을 주지만 라오스

여성들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국경을 맞대고 같은 위도상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남성들은 대개 태국 남성들의 체구와 비슷하게 몹시 작지만 피부색이 검지 않고 한국인

들과 거의 흡사해서 '키 작은 한국인' 같다.

 

게스트하우스 옆방 멀대 백인처녀는 키가 180은 넘어 구부정한데 발코니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게 헐레벌떡 달려 오더니 '할로윈 안 가?' 한다. '할로윈'? 여기서 무슨

할로윈? 아하! 그래서 아까 레스토랑 앞 테이블에 도깨비 구멍을 뚫은 호박을 전시해

두었었군.  오늘이 할로윈 어쩌고 하는 서양 귀신놀이 하는 날인가 보군.

"너나 즐겨!" 하고 말았다. 얼굴에 잔뜩 흉측하게 칠한채로 그녀는 마냥 신나하며 촐싹

거리며 다시 뛰어 나간다. 젊음은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 조그만 도시에, 사원이 서른개나 넘는 불교 국가에서 무슨 할로윈......

여행객이 넘치는 씨사왕응 로드의 상점들이 백인들에게 촛점을 맞춘 장삿속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