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8)라오스 홀로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11. 21. 22:53

 

2013년 10월 30일

 

혼자 떠나 온 나그네가 밤늦게 돌아 다닐순 없고, 그러고 싶어도 꽤 청승스런 일

같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5시에 잠이 깨버렸다.

잠깐 뒤척이다 아침 딱밧(탁발, 아침공양) 행렬을 봐야겠다 싶어 '왓 씨앙통(Wat

Xieng Thong)으로 향했다.

왓 씨앙통은 메콩 강과 칸 강이 만나는 반도 형태를 띠고 있는 루앙프라방의 북쪽

가장자리에 있는,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원이다.

여명을 헤치고 들어선 사원은 과연 소문대로 아름다워 단번에 나를 매료시켰다.

경내에는 우아한 지붕이 낮게 깔리고, 모자이크가 조각된 불당이 섬세하게 꾸며져

있어 여태껏 본 라오스의 사원들과는 그 아름다움의 수준이 다르다.

특히 '붉은 불당(La Calpelle Rouge)'이라고 프랑스 역사학자들이 붙혀 놓은 이름인

3개의 불당과 탑은 그 규모는 작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외벽 모자이크는 라오스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표현해 놓았는데, 불공을

드리는 모습, 농사일을 하는 모습, 가축을 돌보는 모습, 낮잠을 자고 놀이를 하는

모습들이라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유리나 도자기 같은 조각의 모자이크를 붙힌 불당과 탑을 태국에서 많이 봤었는데

그곳의 모자이크는 어쩐지 '쓸데없이 화려하고', '지나치게 부(富)티'를 내려 해서 영

거북하고 거부감이 있었는데 왓 씨앙통의 모자이크는 '적당히 절제된 공간'을 두고

'그러면서도 섬세한' 조각들의 조합이라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태국의 사원과 왕궁을 치장한 모자이크는 '온갖 치장과 화장을 하고 거리에 나선,

졸부가 된 과부' 같은 천박한 모습 같다면, 왓 씨앙통의 모자이크는 기품있고 소박

하면서도 우아했다.

붉은 불당은 여명이 서서히 걷히고 아침 햇살이 경내에 깔릴때 그 아름다움은 극에

달했다.

탁발공양을 보려고 일찍 나왔던 것은 잊고, 붉은 불당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마냥

왓 씨앙통에 머물고 말았다.

 

왓 씨앙통을 나오자 딱밧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라오스를 소개하는 여러 매체에서 익히 보았던 탁발행렬은 생각보다 이색적이다.

이 새벽에 손수 지은 밥을 들고 무릎을 조아리고 앉은 사람들 곁을 주홍색 장삼을 

두른 스님들이 지나가면서 공양그릇의 뚜껑을 열면 사람들은 밥을 한 조각씩 떼어내

그 속에 넣어준다. 이 새벽마다 벌어지는 광경을 보려고 여행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행렬의 근처에 서성인다.

그런데 공양을 위해 무릎을 조아리고 앉은 사람들 중엔 외국인도 많이 있다.

저 양반들은 이 새벽에 언제 저 따끈한 밥을 지어 온 것일까?

나중에 알아낸 것이지만 여행객을 인솔한 여행사에서 일종의 투어로 '공양 체험'을

하는 것이다. 게중엔 불자도 있겠지만 서양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면

'체험'에 더 무게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체험'의 모습에서 민망한 꼴을 보고 말았다.

공양 체험 여행객들에는 단연 백인들이 많았지만 게중에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3명의 동양인이었다. 그들은 여느 여행객들과 달리 양복을 입고 있었고

구두를 신은, 여행사 투어를 하는 사람들로 보였는데 그들을 인솔한 주선자에게서

공양을 하는 요령들을 설명듣곤 했다. 이 세 사람의 공양통에는 밥이 수북히 쌓여

있었는데 무릎을 조아리고 지나는 스님들에게 조금씩 떼어 주다가 이 행사 체험이

지겨워졌는지 그 중 한사람이 갑자기 밥 덩어리를 큰 도시락 만하게 뜸뿍 떼어서는

10대로 보이는 어린 스님의 공양통에 떡하니 올려 버렸다.

이 10대로 보이는 어린 스님은 순식간에 가득차다 못해 넘쳐 버린 자신의 공양통을

보고 잠시 머뭇하더니 바로 옆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있는 소년에게 얹혀진 밥을

몽땅 들어내어 던져 줘버린다. 도시락만한 밥을 무례하게 스님에게 얹은 이 동양

인은 그만 무안해져서는 공양통을 인솔자에게 주더니 일행을 닥달해서 그 자리를

뜨고 만다.  

나중에 이들을 다른 사원의 벤치에서 만났는데 이들의 말씨를 듣자니 중국인

같았다. 대만인인지도 모르지만......

씁쓸한 광경은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나을뻔 했다.

탁발공양 마저 투어로 활용하는 상술도 문제지만 이왕 참여했다면 최소한의 예의

라도 지켰으면 어린 스님에게 그런 무안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딱한 일이다.

최근의 여행들에서 중국인의 안하무인격 행태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는데 이들의

유별난 행동들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하긴 한때 한국인들의 행태도 그에 못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의도식(?)하는 승려가 많고, 그 승려에게 공양물을 바치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게 어쩐지 모순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다.

저들이 속인들에게 공양을 받아 생활을 영위하는것 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

즉 수공품(라오스에서 흔한) 제조, 또는 농업, 농업중에서도 채소 생산, 특수작물 생산

등으로 자신들의 식생활은 자신들이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긴 이들의 탁발이 속인들에게 신앙심을 고취하는 일련의 효과를 내게 한다면, 또

이들 고유의 지켜져야 할 문화의 일단이라면 뭐 할 말이 없다. 

이번 여행을 나서며 '사회주의 국가'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비춰지는가 하는 것이

적지 않은 관심꺼리였는데 적어도 이제 까지 이곳 라오스에서 '사회주의'를 느낀것은

몇몇 건물에서 나부끼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과, 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 

선물용으로 판매하는 티셔츠에 그려진, 역시 낫과 망치 그림 밖엔 없었다.

이 나라의 운영과, 세금 체계와 토지 및 건물 소유권, 의료와 복지 체계 등을 자세히

알 수 없으니 보이는건 우리와 전혀 다를것 없는 '자본주의' 뿐이다.   

 

왕궁이 있고 사원들이 즐비하며, 밤에 야시장이 열리는 씨사왕응(Sisavangvong Road)

거리와 Sakarine Road를 들어서니 비로소 왜 많은 외국인들이 라오스 루앙프라방을

찿는지 알 것 같다. 왕궁과 많은 사원, 그 사이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 여행사, 기념품 상점, 시장, 찻집과 제과점 등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데

그 건물들이 최신의 건물들이 아니다.

거의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로 가득차 있었다.

태국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에서 느끼는 퇴폐와 방만의 분위기도 없고, 네팔의

여행자 거리인 카트만두 타멜에서 느끼는 나른한 카오스적 분위기도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주 건전(!)하고 단정한 분위기이다.

그러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골목길의 정취가 살아있고 전통이 느껴진다. 특히

라오스인들은 '꾸미기'와 '장식하기'와 '진열하기'의 달인들이다. 골목마다 꽃을 가꾸고

오밀조밀 집 가꾸기를 한 탓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편안함과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

골목길의 아름다움에 반해 내일은 하루 쉬고, 모래부터는 본격적인 라오스의 주택지

골목길을 순회해 보고자 한다.

체코 프라하의 골목길 아름다움은 귀족적이고 정교했지만 라오스 골목길의 아름다움은

무척 서민적이고 소박한 정겨움이 있다.

푸시산에 올라 시내를 조망해 보니 너무나 아름답다. 메콩 강과 칸 강이 도심의 가장

자리를 흐르고 있고, 적갈색과 주황색의 지붕들, 도심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야자나무 등

열대우림이 잘 어울린다.

독일의 휘센지방에서 보던 그 화려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전통의 색깔과

종교의 색깔과 소박한 색깔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이다.

시멘트와 콩크리트로 도배된 내 나라의 회색빛 도시가 떠올려지면서 괜한 한숨이

나온다.

 

왕궁 박물관(Royal Palace Museum)은 여행자 거리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지배 당시 라오스 왕정이 식민지 정부 시스템에 유착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식과 라오 양식이 혼합된 느낌이 있다. 1975년까지 왕궁으로 있다가 1976년 부터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왕좌가 있는 중앙홀이 가장 아름다웠는데 왓 씨앙통에서 본 붉은 법당의

모자이크가 전체 벽면을 뒤덮고 있었다. 화려하지만은 않은 기품과 우아함이 있었고,

절제된 기법들이 격조를 높히고 있다.

아마 이 왕궁이 라오스의 건축과 미술, 그리고 역사, 전통을 한꺼번에 표출하는 대표적

장소가 아닌가 싶다.

몇몇 나라들에서 비슷한 왕궁 내지 박물관을 봐 왔지만 이곳 처럼 그런 함축된 느낌을

주는 곳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의 왕궁에서 본 그 어마어마한 규모, 화려한 장식, 대단한 미술품 등은

사실상 보는 이를 압도하는 느낌이 강해 어떤 측면에선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었지만

여기는 그러한 분위기는 없다.

아무튼 드물게 보는 좋은 느낌의 '왕궁'이었다. 나 처럼 그런 권위 어쩌고, 왕족 어쩌고에 

심한 알러지 반응이 있는 인간이 보기에도 ......괜찮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