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5)라오스 홀로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11. 18. 11:06

2013년 10월 27일

 

새벽 2시까지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쉬 잠이 들지 않고 귀는 바깥의 자그마한

소음까지 자꾸만 잡아내고 있다.

새벽 3시에 왠 오토바이는 저 따위 굉음을 내며 내달리고 있을까? 이 시간에 저런 무례한 

소음을 낼 수 있는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일까?

윗층에서는 의자를 달그락거리는 소리, 무언가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소리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이 밤중에 무엇을 하길래 저런 소리를 두어시간이나 낼까?

참다못해 무언가로 천정을 두드려 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딱딱한 물건이 없다. 결국 TV

아래의 서랍을 빼내서 천정을 노리고 있다가 소리가 날때 힘껏 천정을 세번 두들겼다.

단번에 소리가 멈추더니 다시는 들리지 않는다. 다행이다. 항의성 두들김을 알아챘다는 

얘기고, 그 항의를 냉큼 받아들여 조심하기 시작했다면 영 형편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얘기다.

새벽 5시쯤에 겨우 잠이 들어 7시경에 눈을 떳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있다.

그는 천재다. 읽으면서 그것을 느끼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를

소로우는 하고 있다.

7-8년 전에 읽었다가 이번에 다시 정독하려고 가져 왔는데 탁월한 선택이다.

 

인근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들어와 잠시 망설이다 냉큼 작은 배낭을 챙겨 자전거

대여점으로 갔다. 탐 푸캄(Tham phu kham;푸캄동굴)으로 향했다.

길은 비포장, 오랫만에 타는 자전거는 어깨를 굳게 하고 마음 먹은것과는 다르다. 

돌이 굴러 다니고 가끔은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곁으로 질주하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니

땀은 솟고 엉덩이는 가감없는 충격에 얼얼하다.

동굴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블루 라군'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힌 냇가가 

나온다.

가끔 TV에서 본 것 같은 그 장소다. 뭐 대단한 경치랄것도 없는 소박한 풍경이다. 그러나

아름답다. 서양애들은 냇가의 크다란 나무위에 오르거나 나무에 매달아 놓은 로프를 잡고

물에 뛰어들곤 한다.

힘들게 오른 푸캄동굴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장관이다.

중국여행때 보았던 홍룡동굴, 뉴질랜드의 반딧불 동굴, 제주도의 동굴, 울진의 동굴 등을

봐 왔지만 그런것들과는 비교 되지 않는 기묘하고 멋진 형태들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자전거를 탄 보람이 있었다.

벨기에에서 왔다는 중늙은이 여자 셋과 호주 청년은 연신 감탄하며 셔터를 누른다.

동굴 가운데 누운 부처상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동굴의 탐사 루트는 상당히

미끄럽고 어두워 위험하다. 호주 청년과 둘이서 해드랜턴과 내 휴대폰 후래쉬로 밝히며

구경했지만 안전시설이라곤 전혀 없이 탐방객의 주의력만으로 돌아 볼 수 있게 해놓은   

'방치된 위험'이 오히려 긴장감을 유발하여 재미 있었다.

돌아 올땐 도무지 자전거가 엄두가 나질 않아 7불을 주고 툭툭을 타고 시내까지 들어왔다.

 

방비엥의 '루앙프라방 베이커리'에서 샌드위치와 라오맥주를 주문하고 앉았으니 한국인

여학생 둘이 담배를 피고 있다. 옆자리엔 한국의 중늙은이 둘이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는데

두 중늙은이가 여학생(학생인지 직장인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들에게 이것 저것

묻고 챙긴다. 여자애들은 건성 건성 대꾸하며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데 두 중늙은이는

자꾸만 말을 붙힌다.

남의 나라라는 분위기가 묘하게 '담배 피는 여자애들과, 참견하는 중늙은이의 배합'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아마 딸같은 애들이라 나름으로는 객지에서의 들뜬 배려심과 노파심, 또는 훈계를 겸하고 

싶은 것 같았는데, 내가 이렇게 얘기한다.

"이보슈! 괜시리 애들에게 관심두지 마슈! 걔들은 당신네들보다 훨씬 현실감각있고 환경

적응 하고 있고 계산껏 여행하고 있소. 당신들이 전혀 간여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 없소.

당신들이 걔들을 염려하고 배려한다고 하지만 걔들은 당신들이 관심없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귀찮아 하고 있소. 걔들은 부모 곁을 떠나 나름 자유로운 기분으로 해방감을 만끽

하고 있는데 아버지뻘인 당신들의 간섭이 딱 질색이라는걸 아시오!"

물론 그들이 들리게 얘기하진 않았다.

아마 저들은 해외여행이 처음인것 같다. 두어번만 나와보면 걔들의 영악함과 빠른 계산이

눈에 들어 오는 법.

여기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어느 주교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

  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 시키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 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세상까지도 변화 되었을는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