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3)라오스 홀로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11. 14. 19:07

2013년 10월 25일

 

밤새 잠을 설쳤다.

오랜만에 늙은이의 머릿속이 부산을 떤 탓도 있을테고, 낯선곳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했을터......

하지만 경험으로 볼 때 인간의 적응력은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이었다.

밖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건기가 시작되는 10월이니 오시다가 말테지.

숙소 앞 구멍가게 아줌마에게 우산 파느냐고 물었더니 내게 요 앞집 투숙객이냐고

되묻고는 우산을 빌려준다. 저녁나절에 돌려주면 된단다.

넉넉한 인심이다. 혼자 왔느냐고 묻고는, 왜 혼자 왔냐고 재차 묻는다.

뭐 딱히 할 말이 없어 배시시 웃었더니 아줌마도 씽긋 웃는다.

 

흔히 외국인들이 머무는 메콩강변에서 반대편 쪽에 머문탓에 빠뚜사이 부터 내려

가기로 한다.

엄청 큰 시멘트 덩어리 개선문(그들은 승리의 문이라 부른다)이 웅장하다.

빠뚜사이(Patuxai)는 프랑스로 부터 독립한 기념탑으로 천장에는 비쉬누, 브라마,

인드라 같은 힌두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불교국가인 라오스에 언제 힌두의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메콩강 쪽으로 내려가니 딸랏사오(Talat Sao)라 불리는 비엔티엔에서 가장 큰

시장이 나온다. 아침시장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상설시장으로, 구 시장과 새로

단장한 현대식 시장이 같이 섞여있다. 그렇지만 별 감흥있는 볼거리는 아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 사원 왓 씨므앙(Wat Simuang)에 도착했다.

사원은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많은 이들이 공양을 하고 승려에게 축원 받으러 온

가족들이 많다.

승원내의 부처님 앞에는 인상이 온화하고 현자 같은 풍모의 늙은 승려 앞에 한 가족이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이 너무나 순하고 조용하고 또한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막 

출생한 듯한 아이를 강보에 싼채로 스님에게 내미니 스님은 아이의 손목에 실을 감고

조심스레 묶는다. 그리고는 가족 모두에게 실이 연결되게 하더니 축원을 한다.

가족들은 너무나 행복한 얼굴들이다! 

절에 가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교회에 가면 예수님께 삼배를 올리는 평소대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앉자 갑자기 울컥 눈물이 솟는다.

요즘의 괴로운 몸 상태 때문이었는지, 여정의 감상 때문인지......

이 행복한 가족들을 지켜 보면서 눈물이 솟았던 것은 내 안의 까닭모를 회한도 있었

던지 참을 수 없이 눈물이 계속됐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이렇게 오만하고 잘난채 살았습니다. 별로 내세울것 없는 인간이 머리 빳빳히 들고

 제 잘난 맛으로 살았습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닫습니다. 용서 하십시요!"

라오스에 도착한 이튿날 나는 라오스의 사원에서 행복한 가족들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나는 행복한가? 신에 대해 나는 어떤 지성으로 까탈을 부리고 있었던가?

신관(神觀)에 대한 생각과 신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환해야 할 때가 온 것을 어렴풋이

감지한다.

'더 할 수 없이 행복한 가족'들을 보면서 신관과 신앙의 전환까지를 생각하다니 내

감상이 너무 짙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급작스레 찿아 온 감상은 돌아가면 곰곰히 되짚어 봐야 할 사건이다.

왓 씨므앙에서의 그 강렬한 느낌은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왓 씨싸켓(Wat Sisaket)을 거쳐 왓 파깨우(Wat  Pha Kaew) 등 사원을 거쳐 메콩 강변의

외국인 여행자 거리 남푸로 갔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다.

네팔의 여행자 거리인 타멜 보다 좀 더 차분하고, 좀 더 깨끗하고 좀 더 세련되어 있을 

뿐이다.

태국의 카오산 로드 비슷하지만 훨씬 소박하고 조용하다.

메콩 강변으로 갔더니 이미 정취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낙후 되어있던 강변을 정비하는 프로젝트를 한국과 협력해서 했다는 큰 팻말석이  

있는데, 말이 협력이지 한국에서 시공을 해 줬다는 얘길 들었는데 역시 '한국식'이다.

강변을 온통 시멘트 블럭으로 덮어 버리는......

더 이상 볼 것이 없어 남푸의 라오스 전통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비엔티엔에는 특별한 감흥은 없다.

어차피 비엔티엔은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건축물로는 왓 빠께우가 좋았으나 나머지는 시멘트에 페인트칠 한 것에 불과해 그

크기와 스케일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다.

다만 도시 곳곳은 '전통'과 '옛 문화'의 잔재를 아직도 지니고 있어서 한국 도시의

몰개성에 비하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숙소 주인에게 부탁해 방비엥 행 미니버스를 예약했다. 아침 9시 30분에 숙소로 

픽업하러 온단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종업원과 20여분 실랑이 끝에 확인한 것이다.

나중에 영어를 하는 그 집 큰 아들이 와서 재차 확인해 주었다.

 

오늘은 잠이 잘 와야 할텐데...... 매번 여행지에서 잠 때문에 곤란을 겪은적은 별로 

없었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