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오스 홀로 여행
2013년 10월 23일
모험이 걸린 여행길...... 그것만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환갑을 넘긴 중늙은이가 또 다른 세상을 보고야 말겠다고 나서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끝없이 확인
하고 싶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욕심은 아닐까?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나는 걷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죽음의 신이 휘두르는 거대한 낫이 생의 밧줄을 끊어 버릴때, 최후로 출발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베르나르의 이 말을 괜히 신봉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골을 떠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내린 도시의 익숙한 거리는 일말의 향수가 거품처럼 일다가
사라짐을 포착해야만 했다. 아직도 다 털어내지 못한 도시에 대한 향수, 슬픈 일이다.
이 도시에서 하룻밤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한다.
자! 내일부터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라오스라는, 언젠간 꼭 가 보고야 말리라던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몇일전 라오스의 국내선 여객기가 메콩강에 추락해 40여명이 몰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재작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여행 출발 이틀전에 일어났던 대지진 처럼......
액땜인가? 경고인가?...... 무슨, 세상사 흔한 일 일 뿐이다.
2013년 10월 24일
베트남 항공 수속 창구 앞은 인산인해다.
참! 이 나라가 베트남의 사돈국가인걸 잊었다.
탑승권을 발급하던 여직원이 라오스로 가느냐고 재차 묻는다.
"희소 국가에 가시는데 비자 발급은 하셨나요?"
라오스가 희소 국가인가? 부산에서 라오스로 가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다. 비자 발급? 라오스는
15일 동안 비자가 면제되는 무비자 협정국이다. 이 여직원이 모를 정도면 나는 꽤 희소한 김해공항
승객인 것 같다.
휴대폰 로밍센터에 갔을때도 로밍을 안내하는 작은 책자에 라오스는 아예 표기조차 되어 있지 않아
직원이 여백에 통화와 문자발송 요금을 수기로 적어 주었다.
4시간여의 비행. 역시 비행기에서 주는 화이트 와인은 맛있다. 우리 동네 와인 파티에서도 맛보지
못한 맛이다. 매번 하늘을 날때마다 제공되는 와인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맛이 좋았던 것은 왜일까?
어떤땐 넉잔을 마셨던 적도 있었다.
베트남의 하노이에 환승을 위해 내리니 나 같은 환승 승객은 거의 없다. 말레시아와 캄보디아 환승
승객이 대부분이고 라오스 행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하노이 공항의 안내표지가 지극히 부실하여 환승 지역을 놓치고 군복 같은 제복을 입은 직원은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데다 화장실은 지저분하다. 이 나라는 처음이지만 첫인상은 별로다.
환승 지역에서 5시간 가까이 대기해야 하는데 시엠립으로 가는 일단의 한국 중년 남자들이 요란하다.
유별난 한국인들의(보통 50-60대) 큰 목소리는 어느나라를 가도 들어야만 한다. 그중 한 사람을
조용히 불러 주의를 주면 어떨까 했지만....... 자신없다. 무례하기까지 하면 방법이 없으니까......
왜 저럴까? 왜 저렇게 큰소리를 낼까? 저들의 특징적인 심리 이면에는 어떤것이 있을까? 알아 낼
방법이 없다. 하긴 뭐 내가 알아서 어떡하랴.
되도록 그들과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점으로 둘러쌓인 이 사회주의 국가의 공항에서 자본주의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한 시간여의 비행끝에 비엔티엔(위앙짠)에 도착했다. 베트남 항공 티켓이지만 실제 탑승은 라오
항공이다. 작은 비행기지만 좌석은 오히려 편하고 약간 넓기까지 하다.
비엔티엔의 날씨는 적당한 기온, 적당한 습도로 아주 좋다. 건기가 시작되어 우리의 초가을 같은
날씨다.
공항에는 시내 어디라도 태워주는 일정요금의 택시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 이름을 대니 택시는 어두운 시내를 향한다.
남의 나라에 처음 도착해서 배낭을 두개나 메고서 밤늦게 숙소를 찿느라 헤맬수는 없어 미리 인터넷
으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중심부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다. 시내 중심부는 아무래도 복잡하고,
외국인 밀집지역은 여러 정보를 얻는데는 유리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대개는 밤늦게 까지 소란한
편이라 중심부에서 떨어진 숙소를 결정했었다.
비행기가 착륙할때 내려다 본 비엔티엔은 대체로 어두웠다.
택시로 시내에 들어서니 주도로나 간선도로 전부 어둡다. 마치 카투만두의 짜르칼 딜리 버자르와
흡사하다.
밤늦게 도착한 숙소는 엉뚱하게도 수영장이 딸려있다. 숙소의 규모나 숙박비에 비해 다소 생뚱맞은
수영장이다. 게스트하우스에 수영장이라......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짐을 풀고 숙소밖 도로에 나서니 가난이 이 나라를 덮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몇이 모여있는 학생들에게 인근의 국수집을 물어 야채와 고기 완자가 들어간 국물국수('퍼'라 한다)
한 그릇을 비우고 어두운 거리를 잠깐 거닐었다. 왠지 실망스러운 기분이다...... 만회가 될까?
다행히 숙소의 방은 조용하다.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은 영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조용한
방을 달라'고 해도 손을 휘저으며 모르겠단다. 그러면 대체 '아고다'에 숙소 피알은 누가 했다는
얘긴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