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그리고 서양적 사고(思考), 그리고 내 친구
〈 우리집 뒷마당 가을 풍경 〉
가끔 TV 스포츠뉴스(나는 스포츠 뉴스를 거의 보지 않지만)를 보다가 '저게 뭐야?' 하고 들여다 본즉
머리위에다 바람넣은 비닐봉지를 얹고(주변의 한무리 응원하는 이들이) 응원에 열중하는 희한한 광경이다.
저게 뭐하는 짓이람?
나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으니 부산의 야구팬들이 롯데팀을 응원할때 일제히 저런 봉지를 머리에
얹고 일체감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예의 그 '우리가 남이가!' 라는게다.
또 한번은 부산의 야구 경기장에선 상대팀이 타고 있는 버스에다 집단 테러를 가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이 기묘한 심리는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쨋던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는가 보다.
하긴 뭐 스페인의 축구 경기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고, 영국에서도 이런 일은 있었단다.
이렇게 본다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서로 자웅을 겨루는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별로 다를게 없다는
얘기다.
물론 부화뇌동, 얼치기 열정의 인간들 얘기지만......
일단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앞으로의 얘기에서 제외하자.
'야! 뭘 골치 아프게 그렇게 앞뒤 재고 있어! 그냥 우릴 봐서 그렇게 해!'
'이것 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 될 일도 안되는 법이야.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조금 뭐 캥기나 본데, 하지만 우릴 봐서 해 줘!'
'우리사이에 뭘 그래, 복잡하게 그러지마!'
대개 이런 것이 동양적 사고인 것 같다....... 반면에,
'아냐! 이 일은 맘에 들지 않아. 널 좋아하긴 하지만 이 부분 만큼은 동의할 수 없어!'
'난 이 일에서 빠질래! 왜냐면 이런 방식은 잘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네가 하는 일이 괜찮을지도
몰라. 잘 되길 빌게'
이런 식이라면 대개 서양식으로 보이고.....
그래서 서양식은 좀 인정머리 없어 보인다. 동양식은 통 넓게 보이고......
뭐 그렇지만 굳이 딱 구분해서 보다는 대략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동서양의 비등한 사고의 관습(?)이 많은 역사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동양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등등에서 문제가 많지만 서양에서는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사례가 훨씬
적은 것이 사실이다.
(집단적 사고가 꼭 동양의 것만은 아닌것은 일본의 전쟁 일으킴과 독일의 나치에서 볼 수 있긴 하지만)
왜 그럴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 해답 비슷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로마인이 가지고 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입각한 주종관계의 뚜렷한 설정이 그 근간을 이루었다는데에 동의한다.
주종관계가 뚜렸했던 시대(동양과 서양을 망라한)에 로마의 지배층은 자신들이 부리던 예하인들에게 노동과, 병무,
요즘말로 3D 업종의 봉사를 받았지만, 대신에 그들의 완벽한 보호자 역을 자임하고, 그 봉사의 무게가 크나클때는
과감히 예하인을 일정한 재산을 주면서 자유인으로 풀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그 천년이 넘는 지배의 세월속에서도 스파르타쿠스의 난이나 이스라엘 일부 백성 외에는 내부에서
큰 저항의 역사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동양의 주종관계에서는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철저한 착취만이 있었고, 현재의 인도에서 보듯
권력자는 종교 권력자들과 짜고 종교적 교리까지 적용해 일정한 계급으로 묶어놓기 까지 한다.
물론 지금의 시대에서 보면, 아니 개인적 관념에서 보면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 자체가 상당한 거부감을 주지만.....
이러한 오랜 역사를 가진 기층 민중들은 의례 지배층이 되면 '착취'가 당연했고, 그 지배층들은 더욱 공고히 자신들의
아성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하였다는 얘기다.
중국의 역사가 그러했고, 동남아 여러나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천년을 넘기는 로마의 역사 속에선 '가진자의 의무'가 분명히 존재했으나 동양에서는 '가진자의 전횡'만 난무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 까지 그대로 적용되어 소위 말하는 자본주의(민주주의로 부른다) 시대인 지금도
그대로 그 끈끈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너무 장황했나?
요즘에 들어서 우리 사회에서는 소위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또 자유적 진보 주의니 하는 희한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 그들이 진정 이 극단적인 낱말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그러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좌파'라는 낱말은 맘에 들지 않는, 또는 자기 뜻과 상반되는 상대를 불손한 준동세력으로 몰때 갖다 붙히는 말이 되어
버린지 오래고 '우파'라는 낱말은 고리타분 꼴통 보수를 말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좌가 옳은지 우가 옳은지, 진보가 산뜻한 것인지, 보수가 우중충한 것인지 도무지 알아 낼 방법이 없다.
좌파로 뵈는 이가 '연정 정부와 파병'을 외치고, 우파 같이 뵈는 인간이 '정의가 어쩌고...'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개인은 각자 출생과 성장, 교육, 사회 적응, 교우, 종교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든 과정을 거쳐 하나의 인격체가 된 것이다.
마치 SF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실험실 액체속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영양과 산소와 기억과 재능, 특성을 주입받는
인조 인간과 같이....... 그렇지만 물론 비교할 수 없는 정교함과 디테일이 가미된......
물론 이러한 '인격체'라고 불러줄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은 차치하고...
그런데 '좌파'라고 분류되는 사람중에 적지 않게(아니, 많은!) 반민주적, 독단적, 교조적, 만사 투쟁적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대체로 명석하고, 날카로운 지성도 갖췄으며, 총명한 이성으로 얼굴을 빛내며 선의로 사람의 정의를 말하며
또한 대체로 그렇게 살고 있지만, 여러 사람의 집단적 관계, 또는 조직화가 되면 그들의 개성에서 이러한 야누스적인
기질이 제어되지 못하고 불쑥 튀어 나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예민한 지성이 첨예화 되는 과정에서 생긴 '자의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자존심과는 좀 다른것 같다.
'동지'라는건 어떤 일을 도모할때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그 동지가 또 하나의 인격체 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이 보인다.
자신의 첨예한 자의식 때문에 '자신이 주체'라는 의식이 너무 강하여 또 하나의, 또는 여럿의 주체가 있다는 것을 잊는
것 같다.
이에 비해 소위 '우파'라고 불리는 보수주의자는 이러한 인간 개체에 대한 존중에 있어서는 좌파보다 훨신 낫다.
그들은 대체로 탐욕적이고, 명예 지향적이고 평등주의를 빈정대는 적자생존주의 신봉자들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의
집단적 관계, 또는 조직화가 되면 상당히 여유를 부리며 서로를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후배 관계를 명확히 하고 연령을 중시하여 서로 예우를 깍듯이 하는등.....
그들은 상하관계를 명확히 구분지어 당초부터 갈등의 소지를 줄이는 반면에, 좌파는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하는데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므로 '명확한 관계설정'을 소홀히(!)하여 갈등의 소지를 항상 그들의 뒤통수에 달고 있는 것이다.
우파들의 세계에서 힘들지 않게 '형님! 아우님' 소리가 흔한 걸 보면 그것은 더욱 명확하다.
동양적 사고, 서양적 사고에 대한 갑작스런 명제가 떠오른것은, 뚜렷한 좌파라고 여긴, 참으로 좋아하는 친구와 어느날
'서로가 다른 인격체라는것을 인정하길 섭섭해' 하는 약간은 힘든 상황에 처해 그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차속에서 불연듯
떠오른 것이다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를 사랑할수록 '우리가 또하나의 서로 다른 인격체' 라는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 또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믿는다.
유식한채 하자면, 칼릴 지브란이란 이는,
'같은 곳을 바라보되, 같은 잔을 마시지는 말아라' 라고 했잖은가.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친구와 늙어감을 같이하고 싶다.
서양적 사고의 기질을 지닌 나와, 인정하긴 싫겠지만 동양적 사고의 기질을 지닌 그 친구는 사실은 동서양 어쩌고 하는
쓰잘떼기 없는 표현 따윈 불필요한 '비슷한 인간'임을 서로 알고 있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 열정의 깊이, 세상을 바라보는 2도 정도의 각도, 인생관에서 10도 정도의 각도, 내 나라, 내 주변인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조금 다를뿐인 것이다.
또, 내가 약간은 염세주의적 기질이 있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정확히 말하자면 염한(厭韓)적 기질!)
그 친구는 세상에, 인간에게 희망을 거는, 그래서 세상은 개조될 수 있다는, 나로서는 존경스런 관념을 지니고 있다.
친구는 나를 이해할 것이다.
그는 사실은 대단히 낭만적이고, 온화한 예민함을 갖춘 지성적 신사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