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3)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4:49

 

3월 11일  (포카라)

 

새벽에 일어나 어지러운 짐을 꾸려 비믈라(민박집 주방담당 네팔리 처녀)가 차려준 홍합죽을 한 술 뜨고 타멜 입구의 포카라(Pokhara)행 투어리스트 버스인 '그린라인'에 몸을 실었다.

 웬 홍합죽이냐고? 네팔은 국토 전체가 다른 나라에 둘러싸이고 바다가 없다. 민박집 주인장의 후배가 우리네 전라도의 싱싱한 건조 홍합을 10Kg이나 보내주어 그걸로 우리에게 홍합죽을 끓여낸 것이다.

 어쨋든 이 바다 없는 나라의 수도에서 홍합죽을 맛있게 먹고(바다 없는 나라라서 더 맛이 있는 것 같다) 이곳 포카라로 온 것이다.

 포카라는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져 있는 네팔 제2의 도시다. 해발 800-900미터로 고도가 카트만두보다 훨씬 낮다. 요컨데 네팔의 휴양도시이자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며, 설산과 호수가 아름답고, 과거에는 북쪽의 티베트와 남쪽의 인도 사이에서 교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도시라 한다.

 아열대 기후의 특색을 충분히 발휘해, 꽃이 많고 물이 깨끗하며, 카트만두와는 딴판으로 공기가 맑고 깨끗한 도시다.

 

 1년 4개월 만에 포카라로 가는 길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산천이야 뭐 달라진 게 있으랴만 정부군의 짓거리가 말이다.

 마오이스트의 테러에 대비 한답시고 설치한 장애물은 도로 한복판에 돌과 바위, 드럼통, 철조망으로 설치되어, 그 구간만큼은 차가 직선으로 달리지 못하고 그것들을 피해서 천천히 운행하도록 해 놓은 것이다. 카트만두에서 샤브로벤시로 갈 때와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졌다. 우리가 탄 '그린라인' 버스는 거의 외국인이 타고 있었으므로 세우거나 직접적인 검문은 하지 않았지만 그 외의 모든 차에 대해서는 전부 세워서 승객을 다 내리게 한 뒤 차안을 조사한 다음 다시 승객을 태워 운행하게 하는, 그야말로 전시(戰時)와 같은 검문을 하는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아침 7시 30분에 카트만두의 타멜 입구를 출발하여 포카라에 오후 3시 10분에 도착했으니 7시간 40분이 걸린 것이다. 뭐 평소보다 그리 늦은 건 아니고, 지난번 방문 때보다도 늦은 건 아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 2시간 반이면 될 거리를 그렇게 걸린 것이다. 도로의 직선화가 전혀 되어있지 않고 평균 속도는 20-50Km 정도에, 정부군은 계속 장애물로 훼방을 하는데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도 전혀 급한 것이 없고, 점심시간에는 무슨 리조트에 하차시켜 점심을 30분 동안 먹고, 그 외에 두 번의 차(茶) 마시기 겸 용변보기 시간을 주는 등으로 해서 그렇게 걸린 것이다.

 점심제공은 차비에 포함되어 있고, 출발전에 생수도 한 병씩 주는 자상함(!)을 발휘했다.

 

 포카라의 외국인 밀집지역인 레이크 사이드(Lake Side)의 페와 호수(Phewa Tal) 옆에 있는 이 나라 국왕의 별장(Royal Palace)에는 최근 국왕이 와 있는 관계로 도로에는 곳곳에 철조망이 설치되고, 장애물을 둘러놓아 버스는 번번이 지그재그, 기우뚱, 급 브레이크 등등이다.

 찌질한 국왕 같으니...... 시국이 이 따윈데도 휴양을 하겠다고 여기 와 있다니......

 

 포카라의 풍경은 여전했다. 다만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버스에서 내리자 게스트 하우스, 호텔 등의 호객꾼들이 내리는 승객을 에워싸고 난리를 피우자, 우리 둘은 마치 갈 길이 이미 정해진 사람들처럼 무심하고 단호한 표정을 하고, 카고 백을 짐칸에서 찾아 한쪽으로 비켜났다.

 가이드북에서 골라 미리 점찍어 놓은 게스트 하우스의 피켓을 든 남자가 마침 눈에 띈다. 그가 든 피켓에는 일어와 한글이 적혀 있었는데(어서 오시라! 일본인과 한국인이 많이 찾는 우리 게스트 하우스 어쩌고...... 하는) 옳다구나 싶어 '당신 집에 가겠다.' 표시하니 그는 잽싸게 택시를 불러 우리를 태우고는 운전기사에게 자기네들 말로 뭐라고 하자 택시는 빗길을 내달리기 시작한다.

 아참! 흥정을 하지 않았지.

 "거기까지 얼마?"

 "150루삐."

 "아닌데?" 너무 비싸게 부른다.

 "걱정마라. 네가 내는게 아니고 게스트 하우스 측에서 내게 줄 거다. 여긴 그렇게 한다."

 "오, 그러냐? 그렇담 뭐......"

 이래서 우리는 일체의 시비도 없이 당초 점찍었던 곳으로 직행했다.

 

 포카라의 거리는 예전과 좀 달라졌다. 우선 외국인이 많이 줄었다. 2004년 10월에도 이곳에선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하며 장사가 어렵다고 엄살을 부렸는데 그때 보다 더 줄어든 것 같다.

 이곳의 정정(政情)이 불안하자 북미와 유럽인 들이 대폭 줄어든 탓인데 사실 그들은, 특히 미국인들은 조금만 불안해도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고 한다. 9.11 테러를 겪어 겁이 많아진 건지, 원래 겁이 많은 종족이라 그런지 하여튼 무지하게 준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특별히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야 뭐, 산전수전 다 겪은 민족 아닌가. 숱한 외세의 침략에 진저리가 났었고, 남의 나라의 식민지도 됐었고, 동족끼리 싸워 보기도 했으며, 군사 쿠데타, 학생 의거, 군사 독재, 민주 항쟁 운동 등으로 단단히 단련된 사람들 아닌가.

 총 들고 거리에 선 경찰과 군인들을 워낙 많이 겪어본 터라 뭐, 좀처럼 겁먹지 않는 면역력이 있잖은가. 이게 자랑인가?...... 흠!

 어쨋든 그래선지 게스트 하우스 숙박비도 많이 내린 것 같다. 우리네 여관 정도는 200-400루삐(3,000-6,000원), 작은 호텔 500루삐, 괜찮은 호텔은 900루삐 정도다. 

 자! 내일부터 이 포카라를 살펴보기로 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