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3월 8일 (비틀즈, 그리고 스페셜 메뉴)
쿠툼상의 아침, 상쾌하다. 롯지도 꽤 쾌적하고, 어제 샤워를 오랜만에 한 탓도 있을게다.
새벽 3시쯤에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깼었다. 롯지 옆 마을길로 스무 명쯤의 사람들이 헤드 랜턴과 손전등으로 길을 밝히며 바삐 걸었다. 무기를 손에 든 것 같진 않은데...... 마오이스트 들인가? 그들이 아니면 누가 이 시간에 떼를 지어 저런단 말인가? 한동안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롯지 주인에게 물으니 스투파에 참배를 다녀오는 동네 사람들이란다. 왜 그 시간에?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로 봐서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모를 일이다. 그러나 주인장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사실상의 정황은 분명히 다른 것 같다. 그 결기 어린 표정들과 꽉 다문 입들은 막 어떤 결의를 마치고 나서는 사람들의 결연한 표정이 분명했다. 이제 왕정이 끝날 날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왕정이라니...... 이 시대에 무슨.......
아침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이 나라의 화장실과 샤워실에 관해 말하자면,
화장실은 그야말로 100% 수세식이다. 롯지든 민가(民家)든 그들의 화장실은 우리네 농촌 화장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안전(!)하다. 아직까지도 많이 개량되지 않은 우리 농촌은 어떤가. 농촌에 살고 있는 내가 잘 알고 있는바, 우리네 농촌의 화장실은 불결과 공포 그 자체다. 도시의 아낙들이 농촌에 살기 싫어하는 이유 넘버원이며(우리 농촌의 화장실이 모두 다 그런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도시 아이들의 농촌체험 때 공포대상 넘버원이다.
요즘은 그나마 많이 개량 되었지만 아직도 어림없는 형편임은 부인 할 수 없다. 우리의 강산을 여행 중에 사찰을 많이 찾게 되는데 사찰의 화장실은 어떤가? 사찰의 규모가 클수록 비례해서 공포도 커진다. 깊이가 아득한 아래 구덩이하며, 그 아래의 심란한 광경까지, 어지간히 볼일 급한 사람 말고는 들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님들은 하루에 한 두번 그곳에서 공포 극복훈련들을 하는지...... 하긴 생태적 화장실을 지향해서 분뇨를 삭혀 거름으로 쓰는 용도라면 감수해야 될 측면도 있지만......
그런데 네팔의 화장실은 다르다. 우선 화장실에 들어가면 우리네 수세식 화장실 같이 작은 구멍이 있는 변기가 있고, 변기가 아닐 경우 플라스틱이나 돌로 만든 교묘한 구멍이 있다. 그리고 물통과 작은 그릇, 혹은 큰 컵이 있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롯지엔 이것 외에 휴지통이 추가로 있다. 이들은 화장지를 쓰지 않고, 볼일을 본 후 앞에 놓인 물통의 물을 떠서 왼손으로 씻고, 그 손을 또 씻고, 그런 식이다. 말하자면 수동 비데다. 외국인은 화장지를 쓰고, 그 앞의 휴지통에 버리고......
네팔의 화장실은 어딜 가든 우리네 농촌 화장실이나 시골 시외버스 터미널, 혹은 뒷골목 식당 화장실의 불결과 공포는 없다. 단언 컨데. 물론 생태적 환경을 논하는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무식한 자식, 물을 쓰는 화장실 문화는 환경보존에 역행하는 거야!' 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어디까지나 나는 뭐, 청결과 안전(!)에 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또, 샤워실에 관해 말하자면,
안나푸르나 지역의 경우, 대개의 롯지에 태양열 시스템에 의한 샤워실이 있는데, 한 군데의 롯지에 사람이 많이 몰릴 경우 '먼저 하는 사람이 장땡'이다. 다섯 명 정도 샤워하면 더운물이 바닥나므로. 그런데 랑탕과 헬럼부 지역 쪽은 샤워시설을 갖춘 곳이 몇 안 된다. 또 갖추고 있다 해도 가동이 안 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샤워실이 몹시 그리우면 롯지 중 솔라 전지판이 가장 넓고 많은 곳을 찾아야 한다.(하긴 고장이면!)
묘한 것은 화장실이 넓고, 샤워실은 좁다는 것. 우리네 상식으로 하자면 그 반대여야 하는데 말이다. 이러니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볼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그렇잖아도 잠금장치가 부실한 곳이 태반이므로 왈칵 열려서 민망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문을 두드려 존재를 알려야 하는데, 이게 뭐 앉은 채 손이 문에 닿아야 말이지......
한편 샤워실은 좁아서 물줄기가 위에서 쏟아지면 문이며, 문턱이고 할 것 없이 다 젖어 버린다. 더구나 안에 옷을 걸어 둘 만한 못이나 줄 따위가 없어 옷을 벗어 들고 엉거주춤하기 일쑤다.
또 수도꼭지가 바닥에서 거의 1미터정도 높게 설치되어 있으므로(모두 그렇다! 카트만두의 꽤 부유한 집안의 수도꼭지 역시 그렇다!) 아침에 세수라도 할라치면 양말 신은 발이 다 젖어야 한다. 이쯤하자......
쿠툼상을 아침 8시 55분에 출발하여 치플링(Chipling, 2,170m)에 오후 1시 20분에 도착, 거의 4시간 반이 걸렸다.
치플링에 롯지와 음식점이 있었지만 좀 큰 동네에서 맛있게(!) 먹자고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왔으나 롯지 4개가 전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내려왔다. 그러나 마찬가지.
한 롯지에 들렀더니 이웃 마을에 가 있는 롯지 주인을 불러 주겠단다. 맞은편의 족히 500미터가 넘는 마을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이곳의 지형은 거의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맞은편 마을은 모두 마주한 경사면에 있으므로 상당히 먼 거리라 해도 시야에 훤히 잡히고 소리전달이 잘 되는 까닭이다.
이 소리를 들은 이웃이 롯지 주인에게 알려, 그는 10분 정도 만에 이쪽으로 와서는 즉시 문을 따고 식사준비를 시작한다. 여기서만 가능한 일이다.
주방을 열자 짠! 하고 쟁반이며, 그릇이며, 컵 등 주방기구가 빤짝 빛을 발하며 보물창고처럼 나타난다. 뒷켠에 가더니 장작을 한아름 가져다가 익숙한 솜씨로 불을 지핀다.
배가 고픈 우리는(우리 둘, 치린, 나양과 크군) 주방장의 처분을 기다리며 앉아 땀에 젖은 겉옷을 말린다.
쿠툼상에서 여기까지는 슬슬 소풍가는 길 같다. '바리'(또는 '킷트')라 부르는 계단식 밭이 계속 이어지는 농가마을들이 보이는 코스다. 가난한 우리 산골 농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카트만두가 가까운 이곳 사람들은 유달리 라디오를 끼고 산다. 안테나를 요리조리 돌리고, 선을 잇고, 그 예의 인도나 네팔 가수 노래를 듣는다. 우리에겐 전부 똑 같은 곡이다. 바리 또는 킷트라 불리는 계단식 밭은 이 치플링에서 가히 예술적이다. 마치 예술가들이 온갖 기교를 부린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저 밭에 곡식이 한참 자랄 5월에서 10월 사이엔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해진다.
우리네 경상도 남해(南海) 어느 곳에 있는 '다랭이 마을'을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곳이 소개 되고부터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그 동네 이장이 TV에 출현해서 동네자랑을 하는 것을 최근에 봤었는데, 이 치플링, 아니 전체 히말라야 산동네의 거대한 '바리'를 봤다면...... 어쨋든 우리는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팔의 치플링에 있는 것이다. 다랭이 마을은 한국에서는 명소가 되었으니 우리는 입을 닫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뭐, 우리가 그 다랭이 마을을 이곳과 비교해 평가절하 해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 아닌가. 흠, 맞아!
우리가 치플링에서 한참 늦은 점심식사를 끝내고 파티번장(Patibhanjyang, 1,770m)을 거쳐 치소파니(Chisapani, 2,215m)에 도착 한 것은 오후 5시 30분, 쿠툼상을 오전 8시 55분에 출발했으니 점심시간을 포함, 8시간 35분이 걸렸다. 점심시간이 다른 곳보다 30분 정도 더 소요되었다고 해도 8시간이 걸린 셈이다.
치플링에서 파티번장까지는 특별할 것은 없는 코스였다. 농가가 띄엄띄엄 있고, '바리'가 계속되는......
파티번장에서 치소파니는 기나긴 군사용 비포장 차도(車道)를 걸어야 하나, 우리는 산을 곧장 넘는 코스를 택해, 가파른 산길(산길이라지만 여름철 폭우 때 물길이 깊이 팬 길)을 힘겹게 걸어야 했다. 나양은 무릎이 아파 내리막길을 걷는데 힘들어했고, 치린이 한국의 관절통 붙임약을 줘서 붙이고 걸었다. 더구나 쿠툼상에서 파티번장까지는 계속 내리막이었다가 파티번장에서 치소파니 까지는 다시 계속되는 오르막이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치소파니 입구에서는 군인들이 검문을 하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고는 '굿모닝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냐? 굿나잇은?' 우리가 말해 준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히 주무세요.'를 열 번은 넘게 복창한다. 하릴없는 산 능선의 군인들 농을 이리저리 받다가 동네로 들어서니 군인들이 꽤 있다. 그러고 보니 군부대가 동네 입구에 있고, 산마루에 기관총을 걸어둔 큰 규모의 초소가 여러 개 있다.
동네를 들어서는 어귀의 가게에는 당구대도 있고, 커다란 전라(全裸)의 서양 여자모델(?) 브로마이드가 두 장 떡 하니 붙어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킥킥거리며 웃었다. 특히 크군은 당황한듯이 어색해 했는데, 그것이 우리를 더 웃게 했다. 생각보다 서양의 이 젊은이는 순진했고, 일순 얼굴마저 발개지는 것이었다. 그런 크군이 난처하고 무안했는지 나양은 우리에게 독일어로 쓸데없는 말을 수다스럽게 떠들었는데,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마구 웃었지만, 더욱 어색해 하는 크군에게 미안해서 웃음을 그치고 롯지로 서둘러 들어갔다.
우리는 샤워를 끝내고 식당으로 내려왔다.(Lakpa Dorji 롯지)
여기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마을의 규모가 크지 않는데도 왠지 카트만두의 인근에 온 것 같다. 심지어는 식당의 선반 위 스테레오에서 서양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식탁보는 붉고 노란 꽃이 화려하게 새겨진 천이다. 나양에게 이런 것은 '차이니즈 스타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양은 낮에, 나에게 편지를 보내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무릎이 아파 고생하고 있고, 그녀의 배낭이 너무 무거워 보여 가벼운 내 배낭과 바꿔 매자고 했더니 바꾸는 걸 사양했지만 그게 고마웠던 모양이다.
이곳 식당은 '스페셜 메뉴'도 있으며 '디저트'(!)도 있고, 알 수 없는 무슨 '푸드'도 있다. 아마 군부대가 있고, 트래커들의 마지막 기착지여서 그런가 보다.
음악은 '비틀즈'다! 민가 10여 곳의 군부대가 포진한 산꼭대기에서 우리는 비틀즈의 '이메이진(imagine)'을 듣고 있다. 역시 비틀즈는 전천후야.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생각해 보면 쉽죠.
그러면 지옥도 없고 우리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지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죠.
그러면 죽고 죽일 일도 없고 종교 역시 없어요.
평화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봐요.
아하! 당신은 날 몽상가라고 말하는 군요......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그러면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형제 같은 사랑만 있을 테죠.
아하! 당신은 날 몽상가라고 말하는 군요......'
이 언밸런스한 산꼭대기 마을에서도 존 레논의 노래는 근사하게 어울린다. 그 참......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이런 노래라니...... 평소 이 노래를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욱......
식당에서 우리는 두 그릇의 툭빠(Thukpa, 야채, 고기를 넣은 스프에 면을 삶아 넣은 국수)를, 크군과 나양은 '헬럼부 스페셜'이라는 이 식당의 자부심(!)이 담긴 요리를 시켰는데, 아마 그들은 트래킹의 마지막 기착지인 이곳에서 그 동안의 부실한 음식으로 인한 위장을 달래고픈 심산인 것 같다.
툭빠는 한 그릇에 150루삐, 헬럼부 스페셜은 1인분에 300루삐, 2인분에 600루삐니 이 고장에선 그야말로 '스페셜한' 가격의 요리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우리는 그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우리의 툭빠는 조그만 사발에 한 그릇씩, 그리고 부족하면 더 먹으라고 한 그릇을 덤으로 주는 것으로 그쳤는데, 크군과 나양의 '스페셜'은 우선 밥이 세 접시(2인분인데 왜 세 접시인지는 모른다), 스프링 롤이 한 접시, 감자 삶은 것 한 접시, 감자튀김 한 접시, 토마토 등이 있는 채소 두 접시, 바나나와 사과를 껍질째 썬 과일 두 접시, 테베탄 브레드(밀가루 부침) 한 접시, 이렇게 나온 것이다.
게다가 주인이자 주방장은 매상이 오른 것에 신이 나서 우리를 인도해 온 치린에게 달밧을 아주 '스페셜'로 가져 왔는데, 이번 트래킹 중 어느 롯지에서도 보지 못한 다양한 반찬이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주방장이(그는 배가 많이 나왔는데 네팔인 치곤 아주 드문 경우다) 서너 번 나와서는 치린에게 무언가 말을 걸곤 한다. 아마 매상을 올려준 공헌자 치린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 같다.
'헬럼부 스페셜'이라는 것은, 이곳 헬럼부 지역만의 특별한 요리가 아니고, '특별한 가짓수의 요리'인 것이다. 헬럼부의 '특별'은 질(質) 보다는 양(量)의 '특별'인 것이다.
어쨋든 크군과 나양은 이 많은 요리(?)의 처치를 위해 치린은 물론, 우리까지 동원하고 있는데 좀처럼 다 처분될 것 같지 않다.
미네는 원님 덕에 나팔 분다며 채소 한 접시를 거들고 있다. 이래서 우리의 동행은 푸짐한 식탁위에서 한바탕 웃고 떠들고 하면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크군은 '다 먹을 자신 있다'며 '노 프러블럼' 하더니 거의 한 시간째 헤매고 있다.
막 잠자리에 들었을 때 노크소리에 문을 여니 치린과 나양이 섰다. '왜?' '밤에 총소리가 들려도 놀라지 마라. 군대의 야간 사격훈련이니까.' 참, 외국의 어느 여관방에서 자면서 별걸 다 신경 써야 하는군. 그건 그렇고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듣고 내게 얘기해주는 걸까? 아하, 네팔인 답지 않게 '스페셜'하게 배가 나온 주인이 얘기해준 게지. 그러고 보니 오늘, 15일 만에 처음 자동차를 봤고, 처음 배 나온 네팔인을 본 것이다. 그는 배만 나온 게 아니라 얼굴도 살이 쪄서 엄청 뚱뚱한데, 비만의 네팔인을 본다는 것은 지리산에서 반달곰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희귀한 경험을 한 것이 된다. 아무렴, 여행이란 희귀한 경험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정말.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내가 네팔의 기후 중 참으로 좋아한 것은 바람이 거칠게 불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사납게 부는 비바람이나, 변덕을 부리는 봄바람 따위를 싫어하는 나는 네팔의 잔잔한 바람, 부담없는 산들바람이 정말 좋았다. 더구나 산행을 시작하면 보통 2천에서 4, 5천 미터를 오르내리는데 그런 고지대에서도 사나운 바람, 아니 제법 바람다운 바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산행의 마지막 기착지 치소파니에는 제법 바람이 심하다.
내일은 카트만두의 순더리절(Sundarijal, 1,460m)까지 4시간여의 산행이다. 시브쁘리(Shivapuri, 국립공원)산을 지나쳐 가는 산행 마지막 여정이다. 아쉽다. 여행을 시작하면 집에 돌아갈 목표를 세우고, 집에 돌아가면 여행할 목표를 세운다던 카트만두 민박집 류사장의 말이 그럴 듯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