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3월 7일 (고독한 '아굴라'에 대하여)
새벽녘,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미네를 깨우지 않으려고 삐걱대는 마루를 조심스레 밟고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롯지의 뒷편 자그만 쪼르텐과 타루초가 있는 곳으로 올라서니 멀리 히말라야의 연봉(連峰)이 꼭대기들만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여태 지나온 트래킹 숙박지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고요함과 심란한 우수가 느껴지는 새벽이다.
이곳 타레파티는 세 곳의 롯지 외에는(그중 한 롯지만 열었다) 다른 주택도 없어서 능선에 흩어진 이 초라한 롯지들은 마치 고요속에 버려진 외로운 외침처럼 허허로워 보인다.
왜 이런 기분일까? 왜 이곳은 이렇게 허허로울까?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동쪽을 보며 상념에 잠겨 걷고 있을 때 맞은편 폐점중인 롯지 옆에 '아굴라'가 서 있었다.
'아굴라'는 '야크&예티' 롯지에 사는 개 이름이다. 덩치가 우리네 진돗개 보다는 크고, 성견(成犬) 셰퍼드 보다는 약간 작다.
어제 야크&예티 주방에서 젊은 주인 녀석의 거친 대접을 받고 있던 그 검은 개다. 검다고 하지만 눈 주위와 목 아래, 뱃살 부분과 꼬리 아래 등은 황갈색을 띄고 있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나도 가까이 다가가 녀석을 응시한다. 눈길을 피하지도, 그렇다고 경계를 하는 것도 아닌,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표정인데, 한동안 그 표정을 응시하면서 그 눈빛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고독'이었다.
아굴라와 나는 새벽의 여명 속에서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면서 서 있었는데, 나는 갑자기 가슴속이 뜨거워지며, 줄곧 나를 응시하고 있는 아굴라의 뇌리 속을 휙 하고 훑고 지나온 듯 했다. 그 깊은 곳에 있는 우수와 고독이 그대로 내 가슴속을 싸아한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던 것이다.
마침내 내가 더 가까이 가자 아굴라는 그 슬픈 눈을 거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곁에서 벗어나더니 롯지 뒤 구릉으로 사라진다.
구릉 뒤 오솔길로 갔지만 아굴라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굴라!'하고 부르자 마침내 더 떨어진 구릉에서 상반신만 내밀고 나를 내려다 본다. 그러나 어두운 실루엣으로 보여 표정을 살필 수는 없다. 우리말로 '이리 와!' 불렀지만 구릉 위 실루엣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침내 구릉 위를 벗어나 사라진다. 이 적막한 능선에서 고독한 아굴라와의 조우는 그렇게 끝났는데 오랜 시간, 아굴라의 그 깊은 눈빛에서 본 우수와 고독을 잊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을 한다.
'야크&예티'는 최악이었다.
주방을 맡아있던 녀석은 저녁나절 거나하게 취해 주방과 게스트 룸을 오가며 한동안 떠들어대더니 횅하니 어디론가 가고 없고 지금 주방에서 일하는, 네팔리 답지 않게 지저분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총각 녀석은 원래 주방보조로서 임시로 이 롯지를 맡고 있다고 하는데 음식이 형편없다. 같이 묵은 크리스토프퍼와 나딘(우리는 '크'군과 '나'양이라고 불렀다)도 죽을 맛인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는, 하도 음식이 형편없는 것에 질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삶은 계란 4개와 스프 두 종지를 시켰는데 계란 세개는 종일 햇볕이 드는 진열장에 둔 탓에 변질되어 먹지 못했고, 스프 맛도 이상하다.
우리는 1시간 30분 걸려 타레파티에서 마긴고트(Mangengoth, 3,220m)의 롯지에 도착, 점심을 먹고 쿠툼상(Kutumsang, 2,470m)으로 향했다. 처음 한 시간쯤은 편안한 길이었으나 나머지는 그야말로 최악의 길이다. 하긴, 고도 3,510미터의 타레파티에서 3,,220미터의 마긴고트 까지는 그럴 수 밖에 없지만, 쿠툼상 까지는 750미터 급강하 하는 코스다. 우선 급경사인데다 우기에 내린 비가 길을 파헤쳐(우리의 지리산도 그렇다고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한 곳은 파여있는 골이 3미터가 넘는데다 쿠툼상 주민들의 땔감 보급로로서 이용되는 듯 하여 그야말로 먼지투성이에다 잔자갈이 깔려 있고, 앞선 사람의 발에서 먼지가 일어 도무지 주변을 살필 수 없는 괴로운 길이다.
'크'군과 '나'양은 부지런히 따라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친구들은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로, 어젯밤 롯지의 식당에서 '크'군은 나에게 제 이름을 한국어로 써 달라고 해서 자기 이름 아래 또박또박 써 주었는데, 치린에겐 네팔어로 써 달라고 한다.
두 젊은이는 우리와 동행하기로 약속하진 않았지만 페디에서 부터 줄곧 우리를 따라 다니고 숙식도 같은 곳에서 하고 있다. 아마 트래커들이 별로 없는데다, 우리는 콩글리쉬로 버티고 있지만, 치린은 영어를 잘 하니 심심치도 않고, 무엇보다도 타레파티에서 카트만두의 외곽인 순더리절 까지 루트는 갈림길이 꽤 많아 가이드나 포터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루트라 그들로서는 포터가 포함된 우리 일행이 도움이 되는 까닭인 것 같다.
어쨋던 우리는 아침 9시 5분에 출발, 쿠툼상에 오후 3시 20분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총 6시간 15분이 소요된 셈이다.
카트만두의 민박집 주인장이 권하던 대로 닭을 한 마리 잡으려고 롯지 주인과 상의하니, 한 마리에 900-1,000루삐를 줘야 하고, 닭은 목을 비틀어 주겠지만 털을 뽑고 요리는 우리더러 하라는 게다. 그리고 요리에 필요한 쌀, 양파, 마늘 값 등은 따로 계산해 달라고 했다. 재료값이야 얼마 되지 않겠지만 닭 값은 우리네와 별반 차이가 없다. 어쨋든 우리는 털 뽑고, 목 베고, 다리 자르고 어쩌고 할 자신이 없어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치린 역시 자기가 부디스트 라며 먹는 건 좋지만 요리는 꽁무니를 뺀다.
쿠툼상의 '나마스떼' 롯지는 여태까지의 롯지 중 가장 괜찮다. 하긴 괜찮다고 해야 조금 넓은 정도고 창문과 출입문이 제대로 닫히고 잠기며, 시트가 깨끗한 정도다.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샤워하러 앞마당에 나가니 '나'양이 위층에서 '샤워하러 가요?' 하기에, '그래!' 하니 '지금?' 한다. '그래, 지금!' 지가 먼저하고 싶은 눈치다. 그러나 쟤는 내 딸아이 보다 어린 녀석 아닌가. 냉큼 '레이디 퍼스트' 어쩌고는 아니다. 후후......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나니 살 것 같다. 내친김에 수염까지 밀자. '크'군이 밀고 있으니...... 녀석 하는 걸 따라하는 것 같지만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일회용 면도칼로 크군이 빌려 준 면도크림을 바른 턱을 문지르니 밀리긴 하는데 어째 쥐어뜯는 것 같다. 둘이서 면도 하는걸 보더니 치린도 내게 면도칼을 빌려 달란다. 줬더니 좋아라고 샤워장으로 뛰어 가더니, 금방 끝내고 와서는 두 다리와 두 팔을 쫙 벌리며 '스플라이즈!' 한다. 내가 미네에게 '짜식, 무슨 서플라이즈, 그게 그 얼굴이구만' 한다. 미네가 키득키득 웃는다.
네팔리들은 대체로 우리네 보다 얼굴이 가무잡잡하다. 사실 그런 관계로 그들이 자기네 딴엔 변화를 준다고 해도 우리가 '서플라이즈'하긴 어렵다. 하긴 크군과 나양이 내가 제법 긴 수염을 밀고 그들 앞에 '짠!' 하고 나타나도 별 반응이 없는 것처럼......
내일은 치소파니(Chisapani, 2,215m) 까지다. 치소파니에서 이 긴 트래킹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된다.
저녁에 우리는 롯지의 식당에 모여 앉았다. 식당에는 우리 외에 다른 트래커는 없었다. 크군과 나양이 같이 사진을 찍잔다. 우리는 '치즈'하며 찍혔다. 우리는, 모래면 트래킹이 끝나고 모처럼 샤워까지 했으니 느긋한 기분이 되어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시켰다. 그동안 고생한 치린에게 같이 푸짐하게 먹자는 취지였다.
트래커의 식사가 식탁에 나온 뒤 가이드나 포터의 식사가 준비되는 것이 이곳의 관행이지만 오늘은 치린과 같이 먹고 싶었다. 우선 밀크티를 큰 보온병으로 시켜서 마시다가, 우리가 치린을 불러 그가 들어왔으나 잔이 없었다. 내가 부엌으로 가 컵을 하나 더 달래서 가지고 와 치린에게 한잔 붓고 설탕을 넣어서 저어 주었더니, 곁에 있던 크군과 나양이 내가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둘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라고 얘길 하는데, 뒤돌아 생각해 보니 '왜 고용인에게 차를 따라 주고, 설탕까지 넣어줄까?'하고 의아해 하는 것 같다. 서구적 사고(思考)와 한국적 사고의 가벼운 마찰? 뚜렷한, 그리고 다소 냉정한 상, 하한선을 긋고 사는 사람들과 그것이 모호한 사람들과의 사소한 충돌 같다.
그들은 동양인 셋이서 나란히 앉아 같이 먹는 것을 빤히 쳐다 본다. 잠시 우리는 동물원 원숭이가 됐다. 그러나 우리는 정(情) 많은 한국인이다. 우리의 머리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것이다. 그들이 이해를 하든 말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