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5)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09:44

2월 19일  (술이 가득 찬 위장 속)

 

며칠 동안 하루 7-8시간의 카트만두 걷기에 지쳐 오늘은 박타푸르로 가기 전에 카트만두 외곽의 보우더나트(Boudhanath)만 다녀오기로 했다. 택시로 100루삐(1,500원), 입장료는 한 명 100루삐, 네팔 최대의 스투파라고 하며, 중국에 의해 티베트가 무력 합병된 후에는 전 세계에서 티베트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지만 이곳 카트만두의 수많은 뛰어난 유적들에 비해서는 건축적, 조형적 아름다움은 내가 보기엔...... 뭐, 별로다. 147면의 거의 원형에 가까운 스투파를 빙 둘러싸고 상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염주, 참배용 초, 불상, 스카프, 일상용품, 심지어 등산용품까지......

 스투파 주변에는 망명 티베트인들이 정착해 티베트 주택, 곰파(승원), 카펫 공장 등이 들어서 있다. 듣기 보다는 오체투지를 하는 이는 딱 한 사람뿐이다. 순례객은 단연 티베탄들이 많다. 티베탄들은 우리의 얼굴과 너무도 같아서 그들의 용모만을 놓고 본다면 함양읍내(咸陽邑內) 농촌 노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특유의 유순함과 약간의 우수(優愁), 그리고 웃을 땐 살짝 어린애처럼 변하는 얼굴에서 우리네 얼굴에 있는 약간의 뻔뻔함과 냉소적 표정만 제거 한다면 바로 그 얼굴이다.

 그러나 이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것은 주변의 많은 승려들 얼굴이다. 주홍색과 붉은 장삼을 두른 승려들에게는 그런 유순함과 우수가 보이진 않는다. 다만 안주하는 자의 느긋함과 다소 철부지인 듯한 인상들이다.

 참배객은 경전이 적힌 종이를 바닥에 펴서,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쌀 알, 꽃잎 등을 그 위에 가지런히 놓고 작은 종을 딸랑이며 연신 스투파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얼굴에 땟국물이 흐르는 여인이 어린애를 안고 다가온다.

 '애기가 배가 고프다. 벌써 몇일째 못 먹였다. 저기 저 상점에서 우유를 사 달라' 이러면서 집요하게 따라온다. 난감하다. 민박집 주인장은 되도록 그들에게 적선을 안 하는게 좋다고 했었다. 끝없는 의존심만 키우고, 주변에서 주시하고 있는 걸인들에게(이곳 보우더나트엔 걸인들이 유달리 많다) 지갑을 여는 순간을 포착 당한다면 꽤 당황스러울 거라며...... 그러나 여인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가방을 열고 10루삐 지폐라도 꺼내면 사방에서 시선들이 달려 들 듯 하다. 열 살 미만의 사내 꼬마들이스투파 주변 외국인들의 동향을 일일이 챙기고 있다. 이걸 어쩐다...... 외면하고 말았다.

 "돈 없어......"

 여인은 속으로 뭐라고 할까?

 '돈 없다고? 웃기는 녀석! 차라리 안 줘 라고 하지. 네 녀석은 비행기 타고 날아오면서 돈 한 푼 안 갖고 왔어? 빌어먹을 자식!' 이러는 것 같아 뒤통수가 영 벌떼를 달고 다니는 듯 하다.

 음...... 괴롭군!

 

 이곳 사람들은 끝없이 무언가를 태운다. 스투파에 가면 버터 램프에 불을 붙여 태우고, 다리 밑을 내려다보면 쓰레기를 태우며, 사원에서는 향을 피운다. 퍼슈퍼티나트(Pashupatinath)에서는 장작불 위에서 시체를 태우고, 쉬염부나트 인근의 간이 화장장(火葬場)에서도 시체를 태운다.

 온갖 종류의 연기가 카트만두를 뒤덮고 있다. 스투파의 두 눈은 이 모든 연기를 쏘아보고 있다. 이 사방을 쏘아보고 있는 눈은 왠지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다. 하긴 기분 좋은 '쏘아보는' 눈이 어디 있겠는가. 짙은 눈썹에 푸른 눈은 동양인의 눈도 아니고 서양인의 눈도 아니다. 다만 종교를 통해 이 세상을 관장하고 싶은,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그 눈의 색(色)을 결정한 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가능한 한 위압과, 신비, 통찰, 신경과적 최면 등 고도의 계산이 적용된 눈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음...... 내가 너무 과민한가?

 스투파 북쪽의 사원에는 3m쯤 되는 큰 마니차 두개가 좁은 공간 안에서 돌고 있다. 네팔 전역의 마니차는 대체 몇 개나 될까?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너무 지쳐 택시를 탔다. 되도록 택시요금은 깍지 않기로 했다. 대개의 경우 택시기사는 남의 차를 운행하고 차주(車主)에게 일정한 금액을 입금(우리로 말하면 사납금)하면 기름값 제하고 겨우 가족 입에 풀칠 할 정도라고 하니 마냥 깍으려고 덤비는 건 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

 다만 이들의 돌격적(!) 운전은 우리에게 간담 서늘한 스릴을 안겨 주는데, 달리는 동안엔 아예 정면을 보지 말고 측면 창밖의 거리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 수명연장에 좋을 듯하다.

 카트만두에서 운행되고 있는 택시의 99%는 우리가 경차라고 부르는 크기인데 주로 일본의 마츠다, 우리나라의 티코, 모닝, 아토스, 마티즈와 인도의 타타 등이다.

 우선 70-80%의 카트만두 택시는 일단 손님을 태우면 갑자기 '무대뽀'가 된다. 주도로나 간선도로 등에 중앙선이 그어진 곳이 거의 없으므로 이 무대뽀 택시는 좌, 우측 차선을 넘나들며 곡예운전을 하는데, 정말 신통 방통 하게도 잘 피해 다닌다. 차선 하나가 갑자기 없어지고 일방통행 길이 되는가 싶다가, 갑자기 양측 통행이 이뤄지다가, 또 일방통행 식으로 바뀌다가...... 좌우간 이 간담 서늘한 질주는 목적지에 이를 때 까지 현란하게 구사된다.

 이러니 어찌 정면을 계속 주시할 간 큰 승객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긴, 우리가 묵는 민박집 주인장의 운전솜씨 또한 이 카트만두의 택시기사를 뺨칠 수준이었으니...... 여기서는 핸들을 잡으면 '무대뽀'로 진화 하는가 보다.

 자신을 해병대 출신이라고 밝히는 민박집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큰 사고는 생각 보다 없고, 가벼운  접촉사고는 잦은 편인데, 사람이 치어 죽을 경우, 보험금으로 약 US 500불 이면 해결 된다고 하며, 약간의 접촉사고는 95% 정도가 자기 차는 자기가 수리하는 선으로 합의 되는데, 정비소에 차를 입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입고해서 수리를 맡긴다면 새 차일 경우에 한해서라고 하는데 카트만두에 굴러다니는 차들을 한번 만이라도 볼 기회가 있다면 가벼운 접촉사고의 수리를 과연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기분이 들것이다.

 또, 이들의 소위 '경적 울리기'에 관한 것인데, 카트만두에 굴러다니는 차들의 성능은 차치하고 경적(크락숀)의 성능만은 완벽해야 할듯하다.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는데, 민박집 주인장의 말을 빌리면, 네팔의 차들에 장착된 경적은 다른 차나 사람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만을 알리기 위해'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들은 백미러나 룸미러로 상대 차나 오토바이, 릭샤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 아니고, 상대의 경적을 듣고 존재를 알아차리기 때문에 '경적 울리기'는 필수라는 것이다. 자그마한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고, 앞지르고, 지그재그 운전은 상식이기 때문에 옆 차가 경적을 울려 '어이, 나 여기 있어!' 하지 않으면 견뎌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차에 백미러가 달려 있지 않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니 승객이 되어 택시에 앉아, 이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그러면서도 쉴 새 없는, 모골이 송연한 곤혹을 참아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를 외쳐대면 잠시 10초 정도는 움칫한다. 그러나 10초 후면 여전한 지그재그가 재개되어 그 아수라장의 무질서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카트만두의 택시 타기는, 해리슨 포드의 '레이더스'의 첫 장면인 '큰 바위 굴러 내리는 동굴에서 쫓겨 뛰기'가 된다.

 좀처럼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면 절대로 정면을 보지 않고 측면만 바라보며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이래서 카트만두의 숱한 트럭 뒤에는 '경적을 울려 줘!' 하는 문구가 씌어 있는 것이 부지기수다.

 

 여행이란 참으로 심란한 것이어서 오늘은 보우더나트 외에는 다른 곳은 가지 말고 온전히 남은 시간은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든지, 빈둥거린다든지, 어슬렁거리기만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왠지 낭비해서는 안 될 이국(異國)의 시간을 쓸모없이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아  슬그머니 일어나 150루삐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거리로 나갔다. 150루삐, 2,300원쯤 되나?

 어슬렁어슬렁, 기웃기웃 하다가 문득 오전의 기억이 떠올라 쬐끄만, 그야말로 쬐끄만 가게에서 드롭프스를 샀다. 주변에서 외국인을 본 애들이 손을 내밀 경우 동그랗게 한 알씩 들어 있는 것을 꺼내 주기 위해서다.

 조그만 얼굴에 가무잡잡한 처녀는 급작스런 이국인(異國人)의 출현에 조금은 주춤할 거라고 지레 생각했지만 웬걸, 별 무반응.

 드롭프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것 줘"

 "40루삐 줘"

 지극히 사무적이다. 반 평 정도의 가게에 웅크린 그녀는 공항에서 비자피 받고 영수증 떼 주던 아줌마보다 더 사무적이다. 거리에서 빈둥거리는 하릴없는 자들 속에 있는 반 평 남짓의 가게는 그녀를 오만하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드롭프스와 거스름돈을 받아 들고 물러서는 나에게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보내며 네팔리 특유의 유순한 얼굴을 보였다.

 다시 거리를 배회. 이곳 특유의 튀김집(튀김이라고 해야 우리네 튀김처럼 재료가 다양한 게 아니고, 밀가루 반죽을 해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튀겨낸)을 기웃거리다가 가게 앞에서 밀가루 빵을 굽는 꼬마 녀석에게 '찌아 파니?'하고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여기선 우리와 반대로 고개를 젓는 것이 긍정의 표시, 끄덕임이 부정의 표시다) 얼마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안의 주인을 가리킨다. 이 녀석은, 자기는 밀가루 빵을 굽는 일 만을 할 뿐이지 이 가게의 금전관계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치 않겠다는 표시를 나에게 하고 싶은 듯 하다.

 땟국물이 흐르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50대의 주인이 나를 흘끗 쳐다본다.

 손톱 밑의 때가 새까만 손으로 돈을 세고 있었는데 아마 내가 그의 셈에 방해가 된 듯 하다.

퉁명스럽게 시선을 내리깐다.

 "왜 왔냐?"

 "찌아 판다며, 한잔 얼마냐?"

 "한잔에 식스 루삐."

 "한 잔 줘."

 그는 땟국이 흐르는 나무판자 의자에 앉아 큰 소리로 꼬마 녀석에게 뭐라고 떠들어댄다.

 '어이! 이 얼굴 흰 녀석에게 찌아 한잔 갖다 줘라! 그런데 쩨쩨하게 찌아 한잔밖에 시키지 않다니 치사한 녀석!' 이러는 것 같다. 좀 쩨쩨했나?......왜 이렇게 짐작하느냐면 '이 녀석에게 찌아 한잔!' 하는 말 치곤 적어도 서너 음절이 긴 것 같으니...... 그렇지만 튀겨지는 큰 솥과 기름을 보니 도저히 튀김을 먹을 용기가 생기지 않는걸 어쩌랴!

 잠시 후 찌아가 한잔 나왔는데 어럽쇼, 맛있네? 느긋하게 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보니 판자로 막아놓은 주방 벽에서 물이 졸졸 내려오고, 그 밑에는 역시 땟국의 물통이 놓여있다. 예의 호기심이 발동, 이 시스템(!)을 찬찬히 살펴보니 판자 뒤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이 있고, 그 물통에는 벽에 붙은 정수기(!)로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고...... 말하자면 지하에서 퍼 올린 물을 저장하며 카트만두의 시궁창과 빗물, 기타 등등이 배여든 지하수를 정수하는 시스템인 게다.

 그런데 그 오묘한 물로 끓인 찌아, 음...... 맛있군!

 문득 '죄와 벌'의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가 선술집에서 술에 취한 채 라스꼴리니코프에게 말을 걸어 신세타령을 하고, 딸내미 자랑과 마누라 험담을 늘어놓던 선술집이 생각난다. 이곳은 그런 마르멜라도프가 딱 좋아 할만한 공간이다. 방해받은 라스꼴리니코프는 속이 울렁거리는 혐오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끼지만 주의 깊게 그의 한탄을 들어 주는데, 지금 내가 라스꼴리니코프가 되어 있다. 나를 향해 한탄하는 이가 없는데도......

 

 카트만두는 가끔씩 우리에게 모멸감을 상기 시켜 주는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카트만두는 너무 활기차다. 땟국이 흐르지만 왜 이렇게 활기가 있을까? 마치 마르멜라도프의 술이 가득 찬 위장 속 같다.

 

《보우드나트 Boudhanath》 카트만두 시내 네팔 최대의 스투파(불탑)로 예부터 티베트 불교도의 주요 순례지. 구조 자체가 만다라 형태를 띠고 있다.

 

《퍼슈퍼티나트 Pashupatinath》 카트만두 시내의 버그머띠 강변에 자리 잡은 네팔 최대의 힌두사원. 왕족부터 서민까지의 화장장이 있어 항상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연기가 피어 오른다. 순례자가 많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