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2월 17일 (세토 머친드러나트 여!)
새벽녘에 잠이 깼다. 5시, 여정의 설렘 때문일까?
카트만두의 아침거리는 예전의 그것과 똑 같았다! 어쩌면 이리도...... 하긴 뭐 달라질 게 있겠는가. 시간의 흐름이 1년 4개월 전에서 멈췄다가 다시 이곳에서 막 태엽이 움직여 시작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언젠가 헤매던 옛 거리를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그 자리에 뚝 떨어진 것 같은 낭패감이 잠시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피난행렬 같은 오토바이의 무리들, 조그만 물방게 같은 고물차들의 부산함, 공해 때문에 마스크를 한 경찰의 나른한 눈빛까지 어찌 이리 꼭 같은가!
우리는 민박집을 나와 걸어서 왕궁 앞을 지나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투어리스트 지역이며 호텔과 레스토랑은 물론 여행사, 환전소, 기념품 가게, 서점, 인터넷 카페, 슈퍼마켓등이 밀집된 타멜(Thamel)의 지도 판매점(타멜에서 유일하게 정찰제가 적용되는 것이 이 지도 판매점이다)에서 우리가 트래킹 할 랑탕(코사인 쿤다& 헬럼부 지역) 지도를 구입했다.
그곳을 빠져 나와 카트만두 시내 서쪽 2Km 근교에 있는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13세기까지 카트만두 분지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성지라는 쉬염부나트(Swayambhunath)를 향했다.
우리는 까마득하고 급한 경사 계단을 올라 스투파(불탑)가 있는 정상까지 올랐는데 스투파의 사각 면에 그려진 커다란 붓다의 눈이 카트만두를 요염하게(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내려다 보고 있다. 발아래, 호수 밑바닥 같은 카트만두 시내는 뿌연 연기로 도시 전체가 뒤덮여 있다. 매연이다.
스투파는 온갖 군상들의 손때에 찌든 커다란 조형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쉬염부나트를 가이드 책자엔 '녹색 언덕위에 핀 크다란 연꽃 한 송이'라고 되어 있지만 내 눈에는 고단한 종교적 한숨의 산물 같이만 보인다. 왜 카트만두에만 오면 종교가 싫어지는 걸까?
스투파에 오르는 기나긴 계단에는 행인의 음식을 노리는 원숭이들, 수척한 개들, 피둥피둥 미운 승려들, 돌을 쪼아 붓다의 행적을 파는 예술가(!)들의 헐벗은 몰골, 걸인들...... 붓다는 이런 온갖 군상들을 예전 어느 때부터 지금까지 그저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신앙심은 하나의 습관일 뿐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문수보살은 작은 섬 위에 대일여래에게 바치는 스투파를 세웠고, 나중에 고우텀 싯다르타로 환생한 대일여래를 만물의 창조자로 칭송했다고 하나 그 대일여래는 지금껏 카트만두의 절박한 생(生)과, 가난과, 찌든 삶을 노려보고만 있다...... 심지어 이들의 종교가 이들을 빌어먹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고, 의식마저 마비시켜 일체의 저항심을 무력화해 놓은 것 같아 사회주의적 성향의 나그네 심보를 긁어대고 있다.
인간의 행동준거를 '종교'에 맡긴 유대인, '철학'에 맡긴 그리스인, '법률'에 맡긴 로마인 이었다고 한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빗대자면, 여기는 '종교에 빠져 허우적대는 네팔인'일 성 싶다.
쉬염부나트를 빙 돌아 마니차가 수없이 둘러쳐진 산허리를 내려서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승려가 말을 건다.
"어디서 왔냐?"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
"나는 노오스 코리아에 다녀왔다. 그곳 경주에 불국사가 있더라."
"아니, 노오스 코리아가 아니고 사우스 코리아에 불국사가 있다."
"그러냐? 사우스 코리아!"
니네 나라의 사우스면 어떻고 노오스면 어떠냐는 투다. 하긴 저 친구에게 남과 북이 뭔 의미가 있으랴.
아마도 내게 말을 건 쪽은 다른 친구에게 필경 자신의 박식함과 여행담을 뽐내고 싶었던 것 같다.
걸어서 민박집으로 가기로 하고 대충 방향을 어림잡아 내려오니 어라? 바자르가 나온다. 인드라 쪼크(Indra Chowk)다. 1년 4개월 전의 흥분이 몰려온다. 릭샤가 나팔을 울리며 인파를 헤집고 다니고, 중세(中世)의 빽빽한 목조건물들에는 저마다 카펫과 옷, 구리그릇 등이 매달려 있고, 좌판에는 양배추와 부로콜리, 암염(巖鹽)과 향신료가 즐비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팔고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댄다. 아카스 버이러브 사원(Akash Bhairav Mandir)이 있는 사거리에 이르자 인파는 극에 이른다.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 좌판을 펴고 있는 사람, 머리와 손에 물건을 들고 '사세요!'를 외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래! 이곳이 인간이 사는 곳이다. 그들은 붓다처럼 깨달음은 없을지 몰라도 사는 법은 안다.
언젠가 나는 카트만두를 두고 '인간사의 온갖 소용돌이를 용광로 속에 녹여 그것을 부글부글 끓여내서는 이 세상의 근원이 되는 모든 것을 다시 뱉어내는 듯한 도시'라고 누군가에게 말 한 적이 있다. 그대로였다.
세토 머친드러나트 사원(Seto Machhendranath Mandir)이 나왔다!
자비로운 비를 내려 주는 신을 모시는 사원이자 매우 아름다운 사원이라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만, 나에게는 '아름다운 사원'이라기보다는 '지옥의 입구' 같은 곳이다. 지난 1년 4개월 동안 나를 꿈속에서 괴롭혔던 그 극적인 사원이기 때문이다.
마치 지옥의 광장 한 귀퉁이에 불쑥 솟아난 끔찍한 재난 같은 이곳, 왜 나는 이 사원만 떠올리면 지은 죄를 감추고자 전전긍긍하는 공포가 밀려올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나는 몇 번이고 이 사원을 들르곤 했던 것이다.
수많은 비둘기들의 배설물로부터 보호하느라 사방에 둘러놓은 쇠창살로 이 사원은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부각된다.
지붕과 탑들에는 마치 지옥에서 분출된 용암 부스러기 같은 비둘기 배설물이 덕지덕지 쌓여 있고, 사원을 숨 조이듯 둘러싼 가옥들은 이 살벌한 건물을 마치 지옥 문지기들처럼 에워싸고 있다.
몰라, 예전엔 자비로운 풍경이었으나 인간과 비둘기가 지옥문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어쨌든 나를 꿈속에서, 현실에서 끝없이 손짓하던, 그렇지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함을 안기던 사원은 그렇게 서 있었다.
내 생애에서 이 사원은 뇌리에 뚜렷이 각인되어 남아 있을 것 같고, 여전히 꿈속에서 그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불쑥불쑥 내밀곤 할 것 같다.
아마 트래킹을 끝내고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오면 틀림없이 이곳을 다시 찾을게다.
어썬 쪼크의 한 켠 안나푸르나 사원을 뒤로 하고 민박집으로 되돌아 왔다.
첫날부터 카트만두는 나를 철학자로 만들고 있다.
《인드라 쪼크 》 카트만두의 외국인 거리이자 쇼핑의 중심지인 타멜에서 더러바러 광장 쪽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네팔에서 가장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라는 사거리(어썬 쪼크와 연결되어 있는 재래시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