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안개속에서

운농 박중기 2013. 7. 28. 18:01

 

골짜기의 안개는 이 장마철 사방을 휘감고 있습니다.

그 눅눅한 기운은 우리의 폐부를 핥고 온 사방 천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 역시 안개속에 서 계십니다.

아침 5시 일어나셔서는 평상위에 망연히 앉아 계십니다. 눈동자는 촛점을 잃고 먼산을 끊임없이 바라

보십니다. 그 시선 끝에는 번뇌도, 환희의 끝무리도 아닌, 그냥 망연한 눈빛 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평상위의 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픕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앉아 계시다가 일어나 걷기 시작합니다. 먼 발치에서 살짝 따라 갑니다.

매일 걷는 산책길이 행여 방향을 잘못 들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생전 가 보시지 않은 길을 들어서서 어쩔줄 몰라 하는 기막힌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지요,

방향을 제대로 튼 것을 확인하면 이제 어머니 방으로 들어 갑니다.

화장실을 점검하고(물을 틀어놓아 모터가 밤새도록 돈 적이 많으니까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대충

청소를 합니다. 그리고는 제 시간에 돌아 오시는지 다시 한번 나갑니다.

산책에서 돌아 오셔서 또 망연히 앉아 계십니다. 식사를 기다리십니다. 아침 혈당이 내려 앉아 식사가

필요합니다.

식사가 시작됩니다.

식탁의 의자가 식탁에서 멀어도 그냥 앉으십니다. 어느땐 챙기지 않으면 밥알이며 국물이며를 그냥 당신의 치마에 뚝뚝 흘리십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자존심을 위해 턱받이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의자를 최대한 식탁 가까이 당겨 드려야 합니다.

"내게 일거리를 줘!" 하십니다.

남겨 둔 고추밭 풀뽑기를 하시라고 합니다.

뚜벅뚜벅 나가셔서 호미를 들고 땡볕의 풀밭에 주저 앉습니다.

다시 모시고 들어와선 바지를 갈아 입으시라, 모자를 쓰시라, 장갑을 끼시라.... 다시 나가십니다.

땀을 비오듯 흘리십니다. '아차! 옷을 벗겨 드리지 않았군!'

나가서 윗 옷을 벗겨 드립니다.

또 점심식사, 오후에 또 반복....

이번엔 아내가 공들여 심어놓은 방아줄기를 몽땅 뽑아 버리고 계십니다.

또 이번엔 마당의 잔디를 풀 뽑듯 뽑아내고 계십니다.

한시도 눈을 떼고 있지 못합니다.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 시간, TV가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도 잠자리에 듭니다.

TV 앞에 11번, 13번... 써 두었지만 들어가 보면 쇼핑 채널을 켜 두고는 망연히 보고 계십니다.

15번 연속극을 틀어 드리면 '나는 TV 틀면 왜 저런게 안 나와?' 하십니다.

부산의 어머님 친구께 전화 연결해 드립니다. '왜 이 사람과 전화를 자주 안 해 주는거야?'

'어제 하셨잖아요?' '무슨 소리야? 이 할망구와 전화 한지가 일년은 되었것다!'

 

'목욕 하시겠어요?'

우리의 전투는 또 시작됩니다.

세탁한 옷과 방금 벗어 놓은 옷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다 씻고 나오실때 까지 기다렸다가 입혀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땀에 절은 옷을 세탁한 옷들 사이에 차근히 개어서 넣어 놓기 일쑤니까요.

이제는 옷을 다른 방으로 몽땅 옮겨버렸습니다. 걸핏하면 보따리를 싸서는 들고 오셔서(완벽한 외출

준비를 하시고 나타나셔서!) '부산 가는 차가 몇시야?' 하시니까요.

그럴땐 눈빛이 초롱초롱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때마다 어머니가 사실은 무섭습니다.

'어머니 화장실에 휴지 있어요?'..... '몰라!'

'어머니 화장실에 비누 있어요?' .....'몰라!'

우리 어머니는 모르쇠 여사입니다.

우리는 어머니가 횡하니 아랫길을 내려 가시면 벌떡 일어나 어디로 가시는지 살펴야 합니다.

귀먹은 이웃 할머니께 가시는지.... 이사 가고 없는 새댁 집으로 가시는지... 아니면 버스 정류장에 가시는지..... 왜냐하면 걸핏하면 '나 부산 갈테야!' 하시니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이 일들을 반복하고있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우리를 완벽히 장악하고 계십니다.

 

바깥일이 궁금하여 나가볼까 생각해도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나를 찿는 사람들이 있어 나가볼까 생각해도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내가 없으면 아내 혼자 하루종일 어머님께 장악 당해 있어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 우리의 시선과

우리의 촉각은 어머니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촉각을 어머니께 몽땅 바치게 하고 나 혼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좀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의연하게(솔직히 말하자면 좀 무관심하게) 어머니를 대하라고

충고들 하십니다..... 그러면 속으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상황 겪어 봤나요?'

우리의 촉각이 너무 예민하지 않느냐고 말들 하십니다... 그러면 속으로 나는 이렇게 되뇝니다.

'이런 상황 겪어 봤나요?'  

 

우리를 염려하는 여러 분들은 '요양원'을 말씀 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환경이 치매환자에게는 최악이라는걸 잘 압니다. 이웃 없어 말 붙일 일 없고, 움직이는

사물은 자연 밖에 없어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자극이 절실한데도!), 그렇다고 자식이나 며느리가

살가운 애정 표시를 수시로 할 수 있는 넉살도 없고....

수십년을 같이 하신 이웃도 없고...

그렇지만 어머님이 우리를 아직은 알아보고 계십니다.

손님이 오시면 이상하게도 명료한 눈빛을 하십니다. 긴장을 하시는 까닭입니다.

어느땐 요양원 얘기가 나오니 얼굴이 흙빛이 되십니다. 그런 분을 차에 태워.....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님은 안개속 미로에 계십니다.

이쪽이 이승인지, 저쪽이 저승인지.....

가끔 폭발하여 혼자 고함을 내지르는 나를 어머님은 어떻게 받아 들이셨는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합니다. 안개속 미로의 모퉁이 천둥치는 소리에 놀라셔서 혼절을 하셨던건 아닐까요?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또 반복될 걸 나는 압니다.....

우리 역시 안개속 미로에 있습니다.

이 안개가 언제 걷힐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걷히겠지요.

 

우리의 안개속 미로는 생각보다 짙고 복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