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안개속에서

운농 박중기 2013. 7. 28. 17:58

 

임낙경 목사는 어떤 글에서 '치매는 선물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야 라는 생각으로 읽었더니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삶을 지속하다 나이가 들어 죽음이라는 명제가 가까워 오면 누구나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고, 그 두려움과 공포는 

노년의 삶을 누추하게 만들어, 때에 따라서는 누항의 개 처럼 자신이 초라해지는 비참을 맛보는 것이 일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

하다,

그렇지만, 그즈음 치매에 걸려 만사를 먼 과거의 것만을 기억하고 있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무슨 역활을

하겠는가, 저승과 이승을 오가다가 두려움이나 공포없이 죽을 수 있으니 치매야 말로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렇지만 치매라는 선물이 자신에게는 득이 될지 모르나 부양하는 자식에겐 커다란 짐이 되는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자식이 당연히 짊어져야 할 도리이다, 왜냐면 그 부모가 자신의 똥을 최소한 3년은 치워주며 길렀지 않은가!

그러니 부모 똥 3년은 치워줌이 인간사 의리상 뭐 당연한 것 아니냐.....'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럴듯 합니다.

그렇지만 이 그럴듯 한 임목사의 논리가 그리 똑 부러지게 공감으로 와 닿진 않습니다.

그 분은 부모의 치매를 겪어 봤을까요?

그 분은 강원도에서 장애우들을 다수 돌보며 시골교회를 꾸려 간다고 했으니 당연히 '혈육이 아닌 치매환자'는 보살피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혈육인 치매 환자'와 그렇지 않은 '치매환자'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혈육인 치매환자는 자식에게 전혀 다른 고통을, 스트레스를 안깁니다.

'아니! 그렇게 께끗하던 분이 왜 이러시지? 방을 훔치던 걸레로 왜 입 주변을 딱으시지?'

'장마철 방에 벌레가 들어가니 문을 꼭 닫으라고 그렇게도 수백번 당부해도 왜 문을 반쯤만 닫으시지?'

'수도꼭지를 조금이라도 열어두면 모터가 밤새도록 동작하니 수백번 당부해도 왜 반쯤 열어 두시지?'

'그렇게도 깔끔하던 분이 왜 화장실 청소용 수세미로 밥그릇 설거지를 하시지?'

'그렇게도 활동적이던 분이 왜 하루종일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 계시지?'

'그렇게도 총명 하시던 분이 점심때 무얼 드셨는지 기억을 못하시지?' 

'그렇게도 기억력이 좋으시던 분이 왜 아침마다 오늘 성당 가는 날이 아니냐고 물으시지?'

'손자를 그렇게도 아끼는 분이 오랫만에 찿아 온 손녀에게 '네 애는 어쩌고 너 혼자 왔냐?고 미혼인 손녀를 기막히게 하시지?'

'그렇게도........'

혈육인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렇게도....'를 자꾸 되뇝니다.

현재 상태의 당신 상태를 냉정히 인정하지 못하고 안타까움에 빠집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이분은 치매환자야! 객관적으로 사고(思考)해! 그렇게도 당하면서 객관적이지 못하다니 바보 아냐!' 하고 외칩니다. 매일....

그렇지만 ..... 헤어나기 힘듭니다..... 60년 동안 내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 항상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달라진 어머니를, 시어머니를 인정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혈육이 아닌 '치매환자'라면 이러지 않을겁니다. 고통과 스트레스 보다는 의무감과 봉사의 개념에 충실하여 오히려 삶에 윤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환자의 '현재'만 보이지 과거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지인들은 오전에 모이는 모임, 오후에 모이는 모임을 통보 합니다.

오전이라면 우리는 움직이는데 제약이 많습니다.

오후에는 시간이 문제입니다.

오후 3시 모임이면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면 3시 모임 참석을 위해선 2시나 2시 반쯤 출발해야 하는데 그 시간은 점심식사를 끝내고 조금 있다가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머니를 무려 7-8시간 방치해야 합니다. 왜냐면 모임이 적어도 밤 9시쯤 또는 10시쯤 끝날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저녁시간이나 저녁식사후 시간이 좋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방치시간(!)이 짧아져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습니다.

바깥이 어두우면 밖을 나서지 않으시는 어머니를 조금은 안심 할 수 있으니까요.

 

안개가 짙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걷힐 안개란 걸 압니다.

걷힐때 까지 최선을 다해야지요. 우리 보잘것 없는 인내심을  끌어올려서 말입니다.

그나마 조금은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우리안의 통찰력을 발휘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