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8)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8. 16:16

2011년 3월 22일 (오클랜드 2일째)

 

불편하기 그지없는 YMCA에서 겨우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차를 반납하러 우리는 렌트카 회사가 있는 비치로드로 향했다.

기름을 가득 채워 돌려줘야 하므로 주유소를 들러 기름을 채우고 APEX 의 데스크에 키를 반납하니 여직원이 나와서 차를 대충

훑어보고, 기름을 채웠는지 확인하곤 뒤 범퍼의 약간 찌그러진 부분을 가리킨다.

"내가 한 것 아냐! 너희가 점검한 것을 확인 해 봐" 하고 서류를 내미니 슥 훑어보고는 'OK !' 한다.

처음 차를 받을때 차의 전면과 후면, 측면이 그려진 서류에 작은 흠집이 난 부분을 미리 체크해 둔 서류를 서로가 한 부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3분만에 차를 반납하고 우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어제 전화로 약속한 김원장님을 만나러 갔다.

김원장님은 8년전 뉴질랜드로 이민 온 분으로 한국에서는 병원을 운영한 의사다.

우리사회 대표적인 기득권 세력이라 할 만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희귀하게도(!) 순수성과 정의감, 균형잡힌 지성, 끝없는

호기심에 기인한 모험심, 타인에 대한 조건없는 배려, 조국 통일에 대한 확실한 철학, 넘치는 열정 등을 갖추고 계신 60대 중반의

신사이시다. 부인 역시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지니면서도 남에 대한 배려를 무한정 지니고 계신 큰 나무

같은 분이다. 두분 다 우리네 사회에선 보기 드문 특이한(!) 분들임에 틀림없다. 

그분들은 뉴질랜드에서  유리온실 농사를 지으셨는데, 집안사정으로 잠시 한국에 나와 병원을 개업하고 계시다가 다시 정리하고

뉴질랜드에 정착해 북섬의 타우랑가에 주택을 구입해 두고 몇일간 오클랜드에서 공부중인 아들의 좁은 숙소에서 이삿짐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중이었다.

 

김원장님은 부인과 같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시고선 코르만델 반도 쪽으로 드라이브를 제안하셨다.

마침 우리 역시 아쉽게도 코르만델 쪽은 둘러보지 못했으므로 반색을 했다.

김원장님의 승용차를 타고 25번 국도에 올라 템즈를 거쳐 코로만델 반도를 한바퀴 돌아 휘티앙아 쪽으로 해서 다시 템즈 쪽으로  오기로 했으나  코로만델 반도를 도는 해안도로가 너무나 좁고 노면도 좋지않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휘티앙아 쪽의 경치를

보여주지 못해 못내 아쉬워 하는 김원장님을 만류해 우리는 다시 템즈로 되돌아 왔다.

코르만델 반도는 말하자면 '개발이 거의 안 된' 순수한 자연 그대로였다. 해변은 눈부시고 청아했다.

도무지 사람에게 경계심을 보이지 않는 갈매기들이 간식을 먹고 있는 우리 곁에서 해변쪽을 향해 무리지어 앉아있는 광경은

'평화' 그것이었다. 

'우리네 같으면 여기 이 해변에 횟집 천지겠지요?'

김원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묻는다.

'횟집 뿐이겠어요? 모텔도 수백개가 넘을테고, 음식점, 카페...... 이 좋은 장소를 그냥 두겠어요 어디'

그렇지만 여긴 뉴질랜드다. 우리 남한 땅의 2.7배에다 인구는 우리의 1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나라인 것이다.

우리네 정부에서는 생산인구가 줄어든다며 인구감소를 염려해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친절한(!) 걱정까지 한다.

그렇지만 여기는 주유소, 수퍼, 관광지 등등 서비스 업종의 대부분을 노인들이 맡아 하고 있다. 뉴질랜드 전역을 다녔지만

그런 서비스 업종에 젊은이가 종사하는 것을 본 곳은 오클랜드 뿐이었다. 생산인구가 줄어 든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팔팔해서

힘을 주체할 수 없는 노인들을 활용할 생각은 별로 하는 것 같지 않다.

 

우리는 김원장님의 지인인 템즈의 교민 댁에 들러 점심 대접을 받았다.

템즈에서 문구점을 큰 규모로 하는 분이었는데(우리네의 문구점과는 개념이 좀 다른, 매장이 50평은 더 됨직한 큰 규모의) 이민

14년차의 50대 초반 호남형 사업가였다.

이 양반은 다소곳이 있어도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활달한 양반인데, 그가 요트를 타고 나가 잡아 온 도미를 쪄서는 한국식

반찬과 국, 김치를 같이 내놓았다. 오랫만에 맞는 한국식 정찬이었다.

낚시로 잡은 도미 등 생선을 보관하는 전용 냉동고가 필요할 정도로 한번 바다에 나가면 길이 60센티 이상의 고기를 수십마리씩

잡는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생선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다 수산업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어족자원은 많은데 방치되는

편이라 우리네 교민처럼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낚시로도 얼마든지 공급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 그 양반이 별도로 싸주는 크다란 생선을 겨우 사양하고 차를 돌려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오클랜드에 살아 본 경험이 없는 김원장님이 길을 잃어 고생을 했지만 무사히 숙소인 YMCA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사 하시기 전에 요긴하게 쓰일거라는 생각에 우리가 참으로 요긴하게 쓰던 2인용 전기밥솥을 두분께 인계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좋은 사람들은 언제나 기분을 충만하게 한다. 인간이란 항시 '인간'에게 상처받고, '인간'에게 사랑받고, '인간'에게서 위안을

받는 것이라는걸 새삼 절감한다.

 

내일은 이 나라를 떠나는 날이다.

우리는 와인 두잔씩을 마셨지만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