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탈리아, 그리고 부다페스트(23)
4월 27일 (금) 부다페스트
3주 넘게 뗘돌다 보니 여독이 쌓이는 느낌이라 오늘은 온천도 체험할 겸, 피로도 풀 겸 '세체니'
온천으로 향했다.
지하철 2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세체니 온천으로 가는 길은 1호선 지하철이 특히 인상적
이다.
1호선은 유럽에서 최초로 운행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내가 알고 있기는
영국의 런던이 유럽에서 가장 먼저라고 들었지만) 그것을 믿고 싶을만큼 역사(驛舍)가 작고,
천정도 낮다.
무엇보다도 지하철 챠량이 노란색으로 아주 깜찍하니 예쁘다.
우리네 세련된 차량이나, 러시아의 투박한 외양, 이탈리아의 무덤덤한 외양들과는 전혀 다른 예쁜
모습이다. 자동차에 비교하자면, 세단이나 SUV, 또는 헤치백 스타일의 외양 등이 아닌' MINI' 같은
외양을 하고 있어서 고풍스러우면서도 마치 장난감 처럼 귀엽다. 그래서 친근감이 간다.
역사의 벽은 타일로 되어 있고, 역명은 무늬 타일에 적혀있다.
아마 전에는 안내를 하는 역무원이 배치되어 있었던지 나무로 제작된 부스도 근사하게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오리엔트 특급'이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한 기분좋은 지하철이다. 좀 시끄럽긴하지만......
세체니 온천은 굉장했다.
여태껏 다녀 본 온천중에 가장 규모가 컸고, 온천 시설도 이채롭다.
우선, 들어서면 탈의실이 1인당 1개씩 있어서 나무상자 같은 탈의실에 들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벗은 옷은 열쇠가 있는 상자에 넣고 입장한다.
샤워를 하고 욕장으로 들어서면 규모가 각기 다른 여러개의 욕장이 나타난다. 수온이 각기 다른 온탕과
냉탕이 도무지 몇개인지 모르게 나타난다.
그러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스팀 사우나실이 나타나고, 위로 올라 옆 문으로 나가면 엄청나게 큰 규모의
야외 온천장과 수영장이 나온다.
남녀 혼탕으로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혼재해 있는 풍경이 좀 생경하기는 하나 뭐 금방 익숙해진다.
엄청난 엉덩이, 동양인의 서너배는 됨직한 가슴을 떡 하니 내밀며 다니는 백인 아줌마들이 수백명, 아니
전체를 보자면 수천명도 될 것 같다.
페스트 지역 시민공원 안에 있는 이 온천은 2000년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물론 건물은 근대에 와서 지어
졌겠지만 부다페스트의 온천은 로마시대 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온천도 온천이지만 수많은 사람 구경, 고풍스런 온천 시설 구경이다.
오페라를 별로 좋아 하지도 않고, 실제 오페라 공연을 본 적도 없지만 이 나라의 국립 오페라 극장의
수준이 높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예약하려고 온천에서 몇 정거장 지나 있는 국립 오페라 극장
(역 이름이 '오페라'이다)에 들렀지만 내일과 모레 티켓이 동나고 없다.
아침에 사 둔 마차시 성당의 클래식 콘스트를 저녁에 가야 하므로 이제 남은 내일과 모레 티켓이 없다니
오페라는 포기해야겠다.
저녁 7시에 공연하는 'Duna String'오케스트라는 마차시(Matthias)성당에서 연주했다.
버스를 타고 성당으로 가서 입장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쥘 마스네(Jules Massenet)의' 타이스의 명상곡'(Thais Meditation)은 평소에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반가웠고, 상생(Saint-Saens)의 '백조'(Swan)외에는 생소한 곡들이 연주되었다.
아름다운 성당과 음률의 조화가 멋스럽게 울렸지만 실내악 수준이라 장중한 맛은 없는게 많이 아쉽다.
부다페스트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마음 같아선 여기에서만 한달쯤 머물러도 좋겠다.
도시 여행이라는게 여행자의 소소한 경험, 스치는 현지인들의 표정, 길거리의 잡다한 풍경, 도시 기반
시설의 정도, 교통의 편의, 물가의 적정선, 이런 것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편하게 할지, 아니면 불안스럽고
불편해서 찝찝한 마음으로 헤맬지를 결정한다.
이런 점에서 패케지 관광객이라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만 나 같은 여행객들에겐 그런 점들이 중요
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대상이 된 두 도시, 로마와 부다페스트는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로마는 고대 유적들과 역사의 흔적들이 넘쳐나는 도시라서 '볼거리'에 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 하지만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형편 없어서 엄청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를 힘들게 하고
쉽게 지치게 만든다.
행정력의 부재(不在)를 의심하게 되고, 어이없는 인프라의 불비(不備)나 오류에 짜증스럽게 되어 여행
자체가 피곤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인도나 네팔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나라에서는 애초에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기대치가
없으므로 실망하는 경우나 낙담하지는 않고 다만 좀 어이없어 하다가 만다.
그렇지만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그 모양이면 그런 형편없는 인프라의 부재에 대해 화가 나고
비판적이 되는것 같다.
여하튼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인도나 네팔에 비교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으니까......
그런데 부다페스트는 로마와 정말 비교되는 도시다.
수도인 부다페스트만 다녀서 이 나라 전체라고 할순 없지만 로마와는 질적으로 너무 다르다.
행정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사람들의 면면도 로마 시민들 하고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젠틀하다.
같은 유럽내 국가들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
짐작 하건데 정치인들, 공무원들의 수준과 의식구조 탓이 아닐까? 우리네의 경우, 수많은 갈등요인들이
사회 전반에 널려 있고, 일상적으로 사건 사고가 빈발하며,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 같은 동족 끼리의 해결
하지 못한 난제들이 어느 국가보다 많지만 행정력과 사회 기반시설, 인프라는 잘 되어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 사회를 정의할때 거대 담론이나 갈등 유발요인, 교육수준 등 보다는 겉으로 들어난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와 정도, 기초적인 기반시설의 짜임새들이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더 눈에 보이는 것
이고 느끼는 것이 되어, 현재 몸담고 있는 공간이 심적으로 편안한, 또는 불편함으로 인지되는 것일게다.
또, 경제적 요인도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해도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라는 부탄의 경우는 이러한 경제적인 요인과는
별 상관이 없는것이니, 딱히 이런 논의꺼리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네는 어떤 평가를 다른 나라 여행자들로 부터 받을까?
어떤것도 배제하고 사회 인프라만 따진다면 상당한 수준으로 인정 받을 것 같다.
공항에서의 편리함과 신속함, 교통망의 편리와 정확함, 그런대로 잘 정비되어 있는 숙박업소의 예약 시스템과
일정한 수준, 자잘한 도로의 이정표나 표시판들, 우스운 얘기지만 어느 곳이나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화장실,
외국인에게 친절한 사람들....... 나열하고 보니 한국은 여행 선진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