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탈리아, 그리고 부다페스트(18)
4월 22일 (일) 베네치아
2016년 3월의 베네치아는 비가 내리고 추웠었다.
오늘 2018년 4월, 맑고 푸르다.
숙소에서 나와 19번 버스에 오르니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수다가 난리도 아니다.
장날 백전면에서 읍에 가는 버스안의 소란은 소란측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주로 70대에서 80대 까지의 노인네들인데 소란이라기 보다는 굉장한 소음이다.
이들의 말들은 굉장히 빨라서 서로 다퉈 말하기 시합을 하는것 같다. 대화를 하는게 아니라
각자 할 말을 제각기 떠들어대고 있다.
우리 읍내 식당에 가면 아줌마들이나 영감님들 처럼 각자 마구 떠들어대는 데도 다들 알아 듣고
모임이 진행되지 않던가. 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네 시골 노인들의 장터 나들이 버스안의 떠들썩함은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편이라는걸 이제 알았다.
가만히 보면 이탈리아인들은 우리네와 많이 닮았다.
자기네들 끼리 있으면 엄청 수다 삼매경에 빠지고, 다소 무례하고, 성질 급하고, 버스에 빈 자리가
나면 재빨리 엉덩이부터 들이대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인들은 조용하고 점잖지만 깍쟁이 같고 다소 오만하게 보인다. 같은 유럽인들
이라도 많이 다르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에서 잠깐 헤매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에 이르렀다.
화려한 산 마르코 성당과 광장을 에워싼 주랑, 그 광장위를 날고 있는 비둘기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산 마르코
광장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종탑(Campanile)은 산 마르코 성당앞에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바다쪽으로 난 두개의 기둥은
찬란했다.
산 마르코 성당에 들어가 금박 모자이크로 벽면과 천정을 장식한 것을 보다가 2층 뮤지움과 테라스에
올랐다.
이탈리아에 도착했을때 가장 다시 보고 싶었던 광경. 성당 테라스에서 두 기둥이 서 있는 바다쪽을
보는 것. 마치 천국의 입구를 보는것 같은 황홀한 풍경이다.
자연적이 아닌, 인공물로서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저 두 기둥위에 얹힌 사람과 사자상, 누가 저렇게, 저 위치에, 저런 모습을 형상화 했을까? 그는 천재
임에 틀림없다. 저 두 기둥이 없다면 풍광은 훨씬 평범할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 절묘하게 배치된 두
기둥 때문에(기둥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탑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광이 너무나 멋진것이 되었다.
2016년, 비오는 광장을 헤매다 성당 테라스에서 비를 맞으며 두 기둥이 서 있는 바다쪽을 바라 봤을때의
그 잊지 못할 감흥이 똑 같이 밀려왔다.
바다위에 세운 인공물이 전부인 베네치아가 정말 아름다운 것은 그 배경이 바다 뿐이라는 것이다.
숲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공물을 빛내 줄 산이 배경으로 있는 것도 아닌, 오직 바다뿐인 배경에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다는것이 더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 산 마르코 성당 2층 테라스에서 보는 아찔하게 아름다운 바다쪽 풍광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녹두색을
띤 바닷물 밖에 없다. 그런데도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종탑, 그 사이에 있는 두개의 기둥,
이 절묘하고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불가사의 할 정도다.
오랫동안 이 광경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광장으로 내려왔다.
돌아오는 길엔 산 마르코 광장에서 바포레토, 즉 해상버스를 타고 로마광장에 내려 숙소로 돌아왔다.
바포레토는 대운하를 운항하는데 선착장(정류장)이 너무 많아서 걸어가는 시간과 비슷했지만 바다쪽에서
보는 건축물들과, 마치 도로위를 오가는 차량들 처럼 끊임없이 오가는 배들(택시, 개인보트, 엠블런스,
소방선, 작은 화물선 등)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수상택시 다섯척 정도가 떼지어 가는데 한국 아줌마들이 타고서 괴성을 지르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지만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울긋불긋한 원색의 옷차림과 티셔츠 깃을 세운 아저씨들, 뭐, 그런 차림이 아니어도 같은 동족이니 눈빛,
얼굴색만 봐도 그냥 알아 차린다.
한국인들은(한국인인 내가 이렇게 타인화해서 부르는게 어색하긴 하나) 남의 나라 나들이를 꽤 많이 한
내가 볼때 좀 특이한 면이 있다.
우선 옷차림이다. 요즘들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우선 원색적인 옷을 많이 입는다. 예를 들어 빨간색,
연두색, 주황색, 노란색 등을 즐겨 입는다.
외국 나들이를 하면 옷차림이 좀 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평소엔 잘 입지 않던 색상을 고르는것 같다.
북미나 유럽인들은 주로 평소에 입던 편한 옷을 그대로 입고 오므로 카메나나 캠코드, 작은 배낭 등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사실 현지인인지 여행객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과 대비된다.
최근의 패키지 여행사에서 원색의 등산복을 입고 오는 여행객들을 보다 못해, 모집된 여행객들에게
일상에서 입던 울긋불긋하고 봉제선이 많은 등산복을 가능한 입고 오지 말도록 당부하는 공지를 했다는
말을 들은적도 있다.
두번째로 우리 동족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표정이다. 일행이 같이 있으면 큰 소리로 떠들고 명랑하지만
외국인의 눈과 마주치면 급속히 외면한다. 선량한 표정이지만 급속히 굳어 버린다.
재미있는 것은, 일행과 다른 무리의 우리네 동족을 보면 외면한다.
중국인들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구잡이 식 자기들 위주의 행태라면, 우리네 사람들은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일행들과 같이 있으면 마구 떠들고 풀어진다.
다음은 우리네 남자들의 모습들이다.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친다. 티셔츠 옷깃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고,
표정도 당당하다.
여인네들과 달리 남의 눈치도 별로 보지 않는다.
요즘엔 우리 백전면 농민들도 봄, 가을엔 외국 나들이는 필수여서 외국 관광은 예삿일이 되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우리네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는것은 터키의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를 향하는 큰 도로에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내려 오는데, 그 많은 사람중에 딱 한 사람, 한국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기억이다.
주황색 목티셔츠 등산복을 입고, 봉제선이 많은 등산복 하의를 입은 배가 불룩한 중년 남성.
요즘엔 수년전 보다 우리네 관관객들도 많이 세련 되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네 젊은이들은 외국에서 동족 어른들을 만나면 애써 피하려 한다.
좀 더 세월이 흘러야 할 것 같디.
뭐, 꼭 우리네 형편만은 아닐수도 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