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탈리아, 그리고 부다페스트(16)
4월 20일 (금) 베로나
모처럼 늦잠을 잤다. 왠지 베로나에 들어 오니 마음도 편하고 컨디션도 괜찮다.
어제 구입한, 성당 4곳을 묶어 파는 티켓에 명시된 성당은 다 들렀지만 산 체노 마조레 성당
(Basilica di San Zeno Maggiore)은 들르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그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유럽에서 성당이란, 아니 이탈리아에서 성당이란 대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 작은 마을
할 것 없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한참을 돌아 다니다 쉴 곳을 찾아 성당에 들를 정도로 성당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성당이란게 다 비슷하다고 해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도 있지만 나의 경우, 성당이
나타나면 거의 다 들어가 본다.
아마, 처음으로 유럽에 갔을때 체코의 프라하에 있는 비투스 성당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성당이 중세시대에 지어졌지만 게중엔 그보다 오래전의 것도 있다.
내 생각엔 성당은 그 도시, 그 마을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종교는 물론
문화와 예술의 집약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도시의 독특한 문화가 녹아있고, 그 도시의 예술이 녹아 있는것이 성당이기 때문이다.
성당을 지을때는 그 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설계자, 예술가가 총 동원되므로 어떤 구조물이나
건축물보다 대체로 훌륭하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메모를 해서 갖고 갔지만 입구를 잘못 찾아 한참을 우회해서 성당의 입구로
들어서니 그 앞에는 꽤 넓은 광장이 자리하고 있고 고색창연한 성당이 우뚝 서 있다.
베로나에 와서 느낀거지만 이곳의 성당들은 순회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젊은이들은 '줄리엣의 집'(사실 줄리엣의 집이 어디 있는가, 셰익스피어가 만든 인물인데)을 보러
몰려 들었지만 베로나의 진가는 4개의 성당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언급한 성당들도 특이하고 좋았지만 마지막 성당 순회가 될 산 체노 마조레 역시 볼 만하다.
무척 오래된, 1,100년대 초기에 지은 것이지만 외양은 비교적 온전했고 내부에 들어서니 천년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벽화는 거의 떨어져 나갔고, 문턱의 대리석은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움푹 패여있다.이런 세월의
흔적이 나는 좋다.
특히 한 켠에 부속된 수도원의 중정이 나오는데 그 기둥들의 배열이 정말 근사하다.
그 옛날 장인들은 건물을 지을때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신앙심이 생길까, 또는 신비함이나 경이
로운 풍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이 수도원 중정의 기둥들은 그런 의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곳을 나와 베로나의 북쪽, 강이 굽이치는 방향으로 걸었는데, 강물 색깔은 로마의 테베 강물처럼
녹두죽 흐르는것 같은 색깔이지만 주변 풍광은 굉장히 아름답다. 잘 정돈된 강변, 안락한 벤치들,
적당한 조명, 정말 근사하다.
아파트 주인 할머니가 Key를 주면서 이것 저것 설명하던중 지도에서 굽이치는 이쪽을 가리키며
'나이스 뷰!'를 외치더니 과연 그녀가 엄지를 들만 했다.
강변을 따라 쭉 걸었더니 베키오 성이 보여서 들어 갔다. 내부는 종교화가 전시된 박물관이 있었는데
입장료가 아까울 정도로 별 감흥이 없다.
람베르티 탑(Torre dei Lamberti)에서 내려다 본 베로나 전경 역시 굉장히 아름답다.
시에나의 지붕색은 갈색과 올리브색이 섞인 색이라면, 베로나는 그 보다는 밝고 붉은 색이 약간 가미
된 듯한 색깔이다. 이런 통일된 색깔은 언제봐도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획일화를 싫어하는 요즘의 취향으로는 곤란한 시도지만 당시엔 도시들이 거의 황제나 교황 등 권력자
들의 의지대로 만들어진 계획도시 였으니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지붕색깔의 통일은 도시 미관이나 미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정말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꼭 유럽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도의 블루시티라 불리우는 조드푸르, 모로코의 블루시티 샤프 샤우엔
등도 뭐 특별한 건축적 아름다움 보다는 단지 벽에다 파란색 칠을 통일되게 칠해 놓아서 멀리서
볼때 아름답게 보였고, 이것이 이런저런 소문을 타며 세계 각지에서 '블루 시티' 어쩌고 해서 유명해진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미관은 이 통일된 색상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지만 요즘의 시대에 가능
할까?
밤의 베로나는 정말 근사했다.
산 체노 마조레 성당 근처의 강변 길에서 부터 강줄기가 심하게 굽이치는 길을 걸어 다리를 건너 다시
브라 광장(Piazza Bra)과 원형극장 아레나(Anfiteatro Arena)까지의 걷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밤에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베로나에 대한 추억 중 꼭 기억 되어야 할 중요한 한가지를 잃을뻔 했다.
강줄기가 굽이치는 피에트라(Pietra) 다리 근처에 이르자 하늘에 초승달이 선명하다.
밤 8시가 넘었는데도 하늘은 완전히어두워지지 않고 푸르스름한 빛을 남기고 있다.
강변은 그리 화려하지도, 그리 은밀하지도 않았지만 차분하고도 격조있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줄리엣의 집에서 북적이지 말고 이 강변을 산책한다면 훨씬 줄리엣의 청순한 향기를
맡을수 있을텐데, 강변엔 이상하게도 젊은이들은 별로 없다.
베로나를 떠올리면, 4개의 성당, 그리고 이 아름다운 강변이 생각날 것 같다.
젊은날의 청춘들이 베로나에 온다면 줄리엣의 집도, 그녀의 무덤이라고 하는 곳도, 브라 광장이나 아레나
보다도 이 강변을 밤에 찾을 일이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충만한 기분을 느꼈다.
내일은 베네치아 행.
재작년 3월, 비가 4일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중에 그곳 베네치아에 있었다.
정말 하루종일 비가 왔었다. 소나기는 없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하루종일 계속 되었다.
게다가 기온도 낮아서 하루종일 목을 감고 다니며 추위에 시달렸다.
바다는 잿빛이었고 그곳 체류 4일 동안 햇빛이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도시는 너무도 화려 했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 부턴 소나기 한차례 외에는 맑음이라고 되어 있으니 기대해 본다.
햇빛이 듬뿍 내리쬐고, 따뜻하며 밝은 베네치아는 어떤지, 산 마르코 성당 2층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는
어떤 색깔인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