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두번째 이탈리아, 그리고 부다페스트(11)

운농 박중기 2018. 6. 4. 19:24

4월 15일 (일) 오르비에토 - 시에나


시에나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 9시쯤 숙소에 체크아웃하고 푸니쿨라를 타고 기차역 쪽으로

내려 왔다.

쓸데없이 부지런을 떨어 일찍 내려오는 통에 역사에서 1시간쯤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다 화장실을 찾으니 역시 없어서 바깥의 우체국 옆 공중화장실(돈을 받지 않는 공중화장실은

여기가 처음이다)에 들어 갔더니 2개의 화장실 중 한개는 문짝이 뜯겨 나가고 없고(어디로 갔을까?)

하나는 열고 들어 갔더니 사방 벽에다 스프레이로 어지럽게 갈겨 놓은데다 문짝 안쪽에는 온갖 유치한

그림들과 낙서가 가득하다.

이런 광경은 우리네의 20년전 쯤에나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도심의 카오스 속에서 엉덩이를 까고 앉은 심란한 기분에 얼른 일어나는 수밖에.

개수대에는 물이 나오지 않고 화장지는 물론 없다.

오르비에토 두오모 옆 공중화장실엔 돈을 받는 여인이 있었지만 화장실 안은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았었다.

한산하고 느긋하며 조용한 이 작은 도시에도 여행자를 위한 깨끗한 배려는 없다.


오르비에토에서 탄 기차가 중간 환승역인 치우시 치안시아노(Chiusi Chianciano)에 도착해서 1시간

50분을 기다리다 시에나행 열차로 갈아탔다.

아직까진 연발, 연착이 없다.

문제는 시에나에서 베로나로 가는 열차가 문제다.


골치 아픈 일은 시에나에 도착해서 일어났다.

시에나는 2016년에 한번 왔었던 곳이라 방심했던게 문제였다. 당시에는 버스로 시에나의 그람시

광장에 도착해서 몇십미터 아래의 치우사렐리 호텔에 투숙했으므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열차를 탄데다 숙소는 시에나 외곽의 아파트 형 숙소를 예약한 것이 문제였다.

미리 구글(Google)로 검색한 바에 의하면 (나는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고, WiFi가 되는 숙소에서

다음날 일정을 보고 사전에 구글로 검색 해서 수첩에 적어 두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했다) 역 맞은편

대형 수퍼마켓 앞에서 3번 버스를 타고 25분 정도 달려, 종점에서 내려 예약한 숙소 '일 보르게토'를

찾으면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 앞의 대형 수퍼마켓 앞에는 버스 정류장도 없고, 차도(車道)도 없다.

구글의 길찾기가 꽤 정확한데 이상하네 - 하고선 아무리 살펴봐도 정류장 표시가 없다.

(나중에 보니, 역 옆에서 출발하는 3번 버스가 있었지만 그것을 보지 못했다. 구글에는 길 건너 

수퍼마켓 앞에 정류장이 있다고 표시 되었다)

그런데 대형 수퍼마켓 입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표시가 수퍼마켓내부를 가리키고 있다.

수퍼마켓 뒷편은 긴 에스컬레이터로 높은 곳에 위치한 시에나 도심를 연결하므로 에스컬레이트 위의

도로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는 엄청 길었는데, 역시 중간엔 고장이 난 채로 방치되고 있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낑낑대야 했다.

세상에, 이런 무지막지하게 긴 에스컬레이트는 평생 처음이다. 족히 1킬로미터는 될것 같은, 중간

중간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가는 고역이란......

여하튼 그렇게 오른 끝에 도로가 나타났다. 비는 부슬부슬 내린다.

정류장엔 버스 번호들이 명시되어 있지만 3번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에게 묻고, 늙은이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물어도 3번은 없고, 54번 버스를 타고 가란다.

54번 버스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어느 정류장에 내려야 하는지 물었지만 영어는 못 알아듣는 

눈치고 귀찮아 하면서 신경질만 부린다.

불러주는 정류장 이름은 듣는둥 마는둥 하며 짜증을 내며 눈까지 부라린다.

정말 이 젊은 녀석의 뺨이라도 한대 후려 갈기고 싶다.

숙소가 있는 Tufi(동네 이름)라는 지역은 굉장히 넓어서 여기도 무슨 Tufi, 저기도 무슨 Tufi다.

별수없이 좀 가까이 왔다고 짐작되는 정류장에서 내려 또 묻기를 수차례, 그렇지만 가르켜 주는 

곳이 전부 다르다.

겨우 나이 든 노인에게 물어 찾은 'Via Tufi No 64' 번지의 '일 보르게토' 숙소의 젊은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좀 싸고, 그러면서도 괜찮은 숙소는 시 외곽에 있는데, 한번 와 본 곳이라  쉽게 생각, 외곽에 예약해

2시간 가량을 고생했던 것이다.


방과 거실, 부엌과 화장실이 잘 배치된 깨끗하고 가격대비 괜찮은 숙소다. 젊은 주인은 친절하고 선한 

인상을 지녔다.

감기 몸살 기운은 조금 수그러든 것 같지만 아직 완전하진 않고 코와 목을 붙들고 있다.


2016년의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 까지 이탈리아인들에게 실망하진 않았는데 이번엔 진저리가 난다.

이탈리아인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들만 잔뜩 가지고 돌아갈 듯 하다.

이들의 시스템, 이들의 심성, 이들의 행동거지가 참 힘들게 한다.

어느 후진국(이른바!)에서도 이런 꼴을 보진 않았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불량하고 취약한 도시 기반, 냉정하고 불친절한 사람들......이런게 후진국이지.

일전에 갔었던 대만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고  친절했던 사람들, 거창한 역사와

대단한 유적 등에서 비교조차 할 수없이 빈약한 대만이지만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과 극진한 배려심은 

어느 선진국 못지 않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 나라의 기반시설과  편의시설, 사람들의 대략적인 심성과 교양수준 등이 마치

거울 들여다 보듯 보게 된다. 

그 속에 사는 그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어느 도시에 잠깐 동안 머물면서도

그런것들은 자연히 눈에 들어온다.

물론 100퍼센트 단정할 수는 없고, 자잘한 사건 하나로 통째로 그 도시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감지되는 것이다.

그것은 특별한 느낌이기도 한데 어쩌면 낯선 땅에 당도한 이방인이 갖게 되는 당연한 '느낌' 인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나라건 지적수준이나 교양의 정도, 심성 등은 개인별로 다르고, 재수없이(!) 못된 녀석에게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략 이런 '수준의 평균'을 짐작하게 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의 평균'을 보면 지금까진 여태껏

다녀 본 나라중에 최하위 같다.

그들의 예술적 감각, 거리의 조형물, 가게들의 지극히 세련된 디스플레이, 바깥 창문을 장식한 근사한 

장식, 이런 것들은 최상급인데, 오히려 이러한 면들과 이들이 외부로 표출하는 행동들이 심한 부조화를

이루어서 더 이들의 행태가 이해하기 어렵고 형편없이 보인다.

'가진자의 아량과 포용'이 없음은 물론 오히려 더 오만한 민낯을 보는 불편함이 있다.

이탈리아인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도시를 옮겨 다니며 겪는 나그네의 입장에선 자연히 

쓸데없는 분석자가 된다.   


라오스에서 느낀 따뜻함, 두번째 방문때 조금은 희석되었지만 아직도 그대로 느끼고 있다.

그들이 사람을 쳐다 보는 눈빛, 조용한 몸짓, 다소 부끄러워하는 시선 등.

이탈리아에서 그런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이들은 고대때 부터 약소국들을 점령하여 속국화 했고, 지중해를

내해(內海)라고 불렀을만큼 유럽은 물론, 북 아프리카, 중동지역까지 영토를 늘려 천년이 넘게 패권자로서

주인 행세를 했으니 자손들의 머릿속엔 얼마간 그 DNA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이탈리아가 겪고 있다는 경제불황, 정치적 불안과 부정부패, 관료들의 안일과 나태 등을  

부추기는 DNA로 역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에나에 당도했다.

여기 짐을 풀고 3박4일.

2016년의 시에나는 내게 참 특별했었다.

이 고색창연한, 완벽한 중세도시가 주는 고즈녁한 역사의 에너지, 이들의 건축, 캄포광장(Piazza di Campo)

의 멋진 펼침. 성 카테리나 성당의 정결, 성 도메니코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2016년 이탈리아를 떠난후로 시에나는 내게 가장 인상적인 도시였다.

구시가지(舊市街地)와 신시가지(新市街地)가 구분 되어 있지 않고, 도시 전체가 구시가지로 완벽히 그대로

보존된 멋진 도시.

마치 중세도시 속에 타임머신을 타고 방금 내린것 같은 착각속에 빠지게 만드는 아름다운 도시로 내게 각인

되어 있었다.

이번 시에나 방문도 그때의 멋진 감흥들이 확인 되도록......

로마, 시에나, 아시시, 피렌체, 베네치아를 돌아 본 후 가장 인상 깊었던 시에나, 그래서 다시 한번 오고 싶었던

시에나 였다.

이 도시에 도착해 숙소에 이르기까지 접했던 (54번 버스 기사 녀석을 포함해) 불쾌한 기분을 이 도시에서는

다시는 느끼지 말기를......

그나저나 이 숙소의 젊은 주인의 설명을 듣자니 이 숙소에서 시에나 중심으로 오르내릴때 마다 54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형편없는 녀석을 탈때마다 마주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떨떠름 하다.

도시 중심부와 Tufi 사이를 매일 쳇바퀴 처럼 오가는 마을버스 기사라 그럴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제는 채력의 한계를 조금씩 느끼고, 여행하는 동안의 심리상태도 전과 다르게 예민해 지는것 같아 장거리, 

장기간 여행은 그만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가도 여행을 시작하면 오히려 회복되고 활기가 생겼는데 이제는 여행중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편하면 몸이 먼저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감기 몸살을 앓는다거나 우울해지곤 한다.

여행때면 항상 조용히 사람들을 관망하는 시선을 유지 했었는데, 이젠 사람들의 자잘한 불쾌감을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심리상태로 장기여행이 힘들게 된다는걸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심리상태에 빠진다는건 내겐 아직까지도 여행의 내공이 부족하다는걸 것이고, 늙으면서

허약해지는 마음과 몸이 되고 있다는것일게다.

무엇이든지 객관화 해서 사람이든 사물을 봐야 하는데 늙음이 찾아 오면서 그런것들은 없어지고 여느 늙은이들

처럼 고정화된 관념, 자기 중심의 관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런 관념들을 밀어내려 그렇게 애를 썼는데......

세월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말자.

더 성찰하고, 또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