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낯설지 않은 타이베이
2017년 12월 15일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숙소 papersun 의 조식은 심플하지만 맛이 괜찮고 상차림이 깔끔하다.
콩국과 옥수수 스프, 간단한 샌드위치, 작게 썬 과일, 부담스럽지 않아야 할 조식으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3일을 예약하고 왔지만 남은 날짜 모두를 연장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나머지 날짜들은 좀 움직이기 좋은 곳으로 다시 정하려는 생각이었지만, 지하철 역이 가까워서
다른 노선과 연계가 쉬운것을 확인한 터라 오늘 하루를 더 다녀보고나서 연장할지 결정할
생각이다.
스린 역에서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국립고궁박물원 행 버스를 타고 15분쯤 달려 도착했다.
주황색 기와의 거대한 건물의 외관이 시선을 압도한다.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라고 하지만, 규모가 그렇다는건지 소장품의 양이나 질이 그렇다는건지
잘 모르겠다.
가방을 보관함에 맡기고 본관에 들어서자 넓직한 계단이 나타나며 전시품 관람이 시작되었는데
3개층을 다 관람하고 내려오니 오후 3시, 오전 10시경부터 시작했으니 5시간 정도다.
빼놓지 않고 다 봤지만 생각보다 관람시간이 길지 않다.
유물의 양이 엄청나서 수장고에 있는 유물까지 다 보려면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하지만 약 3개월
마다 바뀐다는 유물을 다 볼순 없으니, 간혹 여기 올때마다 유물이 바뀐다는 얘기다.
물론 사람들이 선호하는 유물은 상시로 전시하겠지만.
사실 전시품을 다 보고나서 좀 실망했다.
이곳 고궁박물원의 전시품을 보는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기대치 였지만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 섬으로 장개석이 피신할때 유물을 옮겼다는 얘길 들었는데, 무게가 나가는
유물은 제외 했는지 거의 모든 유물이 작다. 조그마한 장신구나 도자기, 두루마리 회화나 문서 등
이다.
수장고에 있는 유물이 어마어마 하다지만 전시된 유물은 거의 모두 소박하고 어떤것들은 초라하기
까지 하다. 너무 기대가 컸던걸까?
러시아 에레미타주 박물관에 비하면 10분의 1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양도 그렇고 질도
그렇게 보인다.
전시실들은 중국 본토 단체 관광객들로 인해 무질서하고 소란한데다 이들 특유의 안하무인식 행동
으로 자꾸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여태껏 꽤 많은 각국의 박물관을 봤지만 이렇게 무질서한
관람 태도는 처음이다.
본토 중국인들은 작은 섬나라 타이완이 자기네 부속물로 보이는지 특유의 안하무인 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
이들의 가이드들은 전시물 앞에서 진을 치고 비켜주지 않는데다 다른 관람객의 눈치도 전혀 보지
않아 관람에 지장을 주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박물관은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
터키 안탈랴의 박물관 유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 스린 역 옆에 하면정(荷麵亭)이라는 음식점 앞의 칠판에 쓰인 글씨가 눈에 띈다.
한자로 되어 있는데 대략 이런 글이다.
'지금 준비중, 오늘 저녁은 65명만 받음, 5시 10분 부터 시작함'
저런 문구를 걸어둔걸 보면 꽤 음식솜씨에 자신 있는 집 같아 숙소에 들어가 씻고 나와 저녁 먹으러
그 집으로 갔다.
과연 사람들이 가득했고, 종업원이 한국인이라는걸 확인하고는 한창 바쁜 주인장에게 무어라 얘길
하니 주인장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온다.
메뉴를 가져와 영어로 설명을 해 주고 주문을 받고는 일본산 맥주 세 종류를 가져와 고르라 한다.
돈육면(豚肉麵)인데 일본식 라멘이다.
맥주를 곁들여 먹고 가게를 나서며 주인에게 엄지를 세워 보이고 나왔다.
과연 라멘은 그의 장사 수완처럼 맛있었다.
주인장이 일본인인지 대만인인지 잘 모르겠다.
대만인이라면 정말 예의 그 본토 중국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