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1) 발리, 그리고 우붓

운농 박중기 2017. 11. 10. 13:47

2017. 10. 22 (우붓)


이 나라의 음식은 ('이 나라' 라기보다 우붓의) 내겐 상당히 불만스럽다.

왠만해선 남의 나라에서 음식으로 곤란을 겪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태국 여행때와 이곳이 가장

힘든 경우가 될 것 같다. 

태국의 음식은 그 맛이 소문이 자자해서 우리네 땅에까지 밀고 들어와서 '태국 음식 전문점'까지

생겨 제법 고급 음식 대접을 받고 있지만 적어도 그곳에서(카오산 로드, 치앙마이, 빠이 등) 도무지

잘 적응되지 않아 애를 먹고는 나중엔 빵집과 쥬스가게만 들락거린 기억이 있다.

가끔 서양식 음식이나 레스토랑에서 괜찮은 음식을 먹은 적도 없진 않지만.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일반적으로 흔한 곳은 입에 맞지 않았다.

이곳이 그렇다.

로컬 가게가 절반쯤 되는듯 하고, 피자나 파스타, 타코 등등이 있지만 인도네시아 음식은 하나같이

소꿉장난 하듯 쬐그만 접시에 나오는 통에 별로 시각적으로 먹음직스럽지가 않다.

게다가 닭고기는 기름을 완전히 뺏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 퍼석거려 도무지 맛이 없고, 소스 역시

색상부터 칙칙해서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음식점에서 열흘 가까이 여러 가게에서 먹었지만 단 한군데도 먹을만한 집이 없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내게 이렇다면 꽤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그 외의 서양식 음식이 괜찮냐면 그것도 아니다.

꽤 유명하다는 일본식 음식점엘 가서 구운 생선요리를 시켰더니 한쪽을 새까맣게 태워 오는 바람에 

반도 먹질 못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피자나 파스타 등 서양 음식들이나 겨우 먹을만 했다.

이래 저래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진 대형 코코마켓에서 한국산 신라면과 망고, 아보카도, 모닝빵 등을

사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이 대형마트도 40-50분은 걸어야해서 이 마져도 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 나라의 숙소는 가격대비 훌륭하지만 음식은 가격대비 별로다.


당초, 이 나라에 오려고 했던것은 우붓이라는 곳에 대한 동경이었는데, 우붓에 대한 몇가지 기행문과 

여행기(모두 7-8년전 쯤이지만)에서 받았던 아련한 소박함과 예술적 향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발리라는 섬 전체는 젊은 신혼부부나 연인들에게 특화된 섬으로 완벽히 존재하고 있었다.

워낙 발달하지 못한 음식문화와 원래 협소했던 도로들 탓에 넘치는 여행객들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우붓 도심의 인도(人道)는 대개가 한사람이 걸으면 딱 맞을 정도로 좁고, 그나마 온갖 장애물이

있어 차도를 수시로 들락거려야 했다.

좁은 일차선 도로, 그나마 주도로(主道路)만 이차선이고 나머지 간선도로는 모두 차선이 아예 없어

수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하루종일 북새통이다.

우붓 시내를 걷는 일은 위험하고 번잡해서, 느긋하게 가게를 들여다 보거나 길가 식당의 메뉴를 살펴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렇다보니 이곳은 나 같은 중늙은이나 어린아이들이 여행하기는 무리이고, 실제로 보이지도 않는다.


애초에 발리의 꾸따나 우붓에서 근사한 리조트나 스파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의 삶을 보고 싶었는데

이들은 모두 여행객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풍경이나 번잡함은 덜 하지만 길가의 모든 집(정말 모든 집이다)이, 논 가운데

지어 놓은 모든 집이 호텔, 레스토랑, 스파, 작은 가게 또는 찻집, 젤라또 집이다.

길가의 집 말고 그들이 기거하는 주택이 어디있나 살펴보니, 길가의 집 뒷쪽에도 주택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집은 모두 영업과 주거를 같이 한다는 얘기다.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 새삼 그리웠던 이유를 알겠다.

여유 넘치는 넓은 도로와 충분했던 인도. 적당했던 기온(물론 건기였지만), 맛있는 국수집들, 길거리의

군것질꺼리 등, 사람들의 미소, 예쁜 골목길과 여유 넘치던 사원들......

걷다 지치면 사원에들어가서 땀을 식히고,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곳.

그곳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곳 우붓의 숱한 사원들은 대부분 잠궈놔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고, 여행객들이 걷다 지치면 들어가 쉴

곳은 레스토랑 등 영업집 밖에 없었다)

하지만 루앙프라방도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여기와 같아질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곳은 이곳과는 좀 더 늦게 알려졌을 뿐인 것이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매력을 느끼려면 역시 리조트나 스파만이 유일할 것 같다.

잠자리가 무척 근사하고, 숲과 정원이 멋있어서 모처럼 저축한 경비를 모아 멋진 풍광속에서 귀족대접을

받으며 호사를 누리고 싶은 사람에겐 어울리는 곳이다.

유일하게 내게 위안이 되는 것은 네까, 아궁라이 같은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 마져 없었다면 여기 올 이유가 별로 없을것 같다. 나로서는 ......

따나롯 같은 훌륭한 해변이 있긴 했지만......


그래서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역시 발리는 바닷가가 좋았다. 여기까지 와서 실망만 하다가 돌아간다면 그것도 애석한 일.

동쪽 바닷가 빠당바이로 가기로 했다.

롬복 섬이나 길리 섬으로 가는 선착장이 있는 곳이지만, 화산 분출이 걱정된다는 아궁산도 지척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까.

내륙에 너무 오래 있었다.

내일 아침 9시. 전번에 나를 실어다 준 아디(Adi)와 숙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