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2011년 3월 9일 (퀸즈타운-킹스톤-럼스덴-모스번-테아나우-밀포드 사운드-테아나우 다운스)
하루만 머물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퀸즈타운을 뒤로 하고 아침 일찍 떠나 밀포드 사운드로 향했다.
오후 1시 30분 예약한 크루즈에 혹여라도 늦을까 속력을 내어 질주, 주변 풍광이 어떤지도 모를 지경이 됐다.
출발하면서 미처 채우지 못한 자동차 기름은 간당간당 하지만 주유소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뉴질랜드의 도로에는 우리네 처럼 주유소가 없다. 주유소는 마을에만 있기 때문에 기름량을 보고는 동네가 나타나면 채워
두는게 좋다. 우리네는 길가에 홀로 있는 주유소가 부지기 수라서 동네에서건 길가에서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곳은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주유소는 매점을 같이 운영하고 있고, 매점에는 기름값도 받고, 음료수와 간단한 스낵류, 자동차 관련 용품등을 판매한다.
대부분 셀프 주유소이기 때문에, 운전자는 주유기 앞에 차를 세우고는 직접 기름을 채운 뒤에 매점으로 들어가서는 '2번'
또는 '3번' 하는 식으로 주유기의 번호를 말하면 매점 판매원 앞에 놓인 단말기에 기름 주유량이 표시되어 기름값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뉴질랜드의 경우, 전부는 아니지만 100킬로 또는 200킬로를 가야 동네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출발할때
기름잔량을 확인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주유소(동네)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명관광지라 뭐 예외겠지' 이러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테아나우에 들러 이틀분 식량을 샀는데 소세지가 1개인데 2개 값이 계산되었다고 아내가 투덜거린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런 일이 벌써 두번째다. 화폐식별에 어설프고, 환율에 따른 화폐가치에도 좀처럼 익숙해 지지
않는 타국인에게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우리네 수퍼마켓에서 수많은 계산을 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것을 떠올리면, 불과 여기서 몇 일 동안 두번째라면 고의가 의심되기도 한다며 아내는 불만이다.
수퍼의 계산대 직원들은 원주민인 마오리 족이 반, 키위들이 반 정도 되었는데 계산에 어눌한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기분은 유쾌하지 않아 아내는 수퍼에서 영수증을 받을때 마다 확인을 하곤 했다.
테아나우는 밀포드 사운드의 거점도시인 것 같다.
남북섬을 거치면서 느낀것이지만, 조금 규모가 있는 도시는 예외없이(아니, 그레이 마우스는 예외다) 관광객들로 넘쳐 난다는 것이다.
이러니, 2002년도에 뉴질랜드를 두달여 동안 여행하고 돌아 온 친구가 제공한 물가 정보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숙박업소의 가격은 거의 2배가 되었고, 기름값도 2배, 자동차 렌트비는 1.5배 정도가 된것이다.
대충 각오를 하고 왔어도 '이건 너무 심해!' 다.
우리 여정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 있는 밀포드 사운드에 이르는 길은 참으로 장관이다. 94번 도로를 119Km 달리는 동안
30여Km는 거대한 산악과 협곡, 그리고 푸른 호수와 강물이 어우러져 대단한 풍광을 보여준다.
거대하다고 표현하기에도 한참 모자란 바위로 이뤄진 산 아래를 마치 바늘 구멍 내듯이 뚫어놓은 호머터널은 우리를 아연
긴장하게 만들었다.
터널의 입구는 한참 공사중인것 처럼 돌 무더기가 그대로 있고, 터널안은 바닥포장이 되어 있긴 하지만 벽이나 천정은
삐죽거리는 바위 투성이로 마무리를 해 놓지 않아 '아직도 공사중인가?' 하고 생각될 정도다. 터널안 도로의 길가에는 돌무더기들이 많이 눈에 띄고 물이 흐르는 고랑이 보이는데다 조명마저 너무 어두워 바닥 식별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앞차를 따라가야 하는 이 어이없는 터널은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처음 통과하는 터널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태 우리는 한번도 터널을 통과해 본 적이 없었다.(그후 나머지 일정에서도 우리는 단 한번의 터널도 만나지
않았다) 이들은 길을 우회해서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터널 뚫기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느낌이다.
우리네의 그 숱한 터널, 휘황한 조명하며, 잘 손질된 벽면과 천정, 환기시설......
왠지 이 나라에서 처음 조우한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의 깔끔한 터널이 그렇게 썩 유쾌한 기억으로 떠오르지 않는것은
토목공사 만능인 우리네 정부와 지자체에 신물이 난 까닭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터널을 벗어나 선착장 까지의 길은 장쾌한 풍광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구부구불한 좁은 길을 내려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면서 줄곧 '우리나라 같으면 이 관광객 많은 도로를 이렇게 두지 않겠지?'를 되풀이한다.
예매한 유람선 회사의 안내대에서 1인당 89불을 지불하고 티켓을 받아 들었다. 유람선은 1시간 40분 동안 주위의 산들이
빙하에 의해 거의 수직으로 깍인 피오르드 지형의 협곡을 서서히 유영했다.
웅장한 산들과 깍아지른 절벽, 빙하가 녹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장관이다.
도중에 해저 전망대가 있어 잠시 배에서 내려 해저를 볼 수 있다지만 우리는 예매에 포함 시키지 않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작 아쉬운 것은 유람선 보다도 그 유명한 밀포드 사운드 트랙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네팔의 히말라야, 미국의 존 무어 트레일,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그리고 이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트랙을 '걷기 좋아
하는 이들'의 로망이라고 하는데 그 트랙을 근처에 두고서 유람선이나 타고 있다니......
그렇지만 어쩌랴! 밀포드 사운드 트랙은 트래킹 인원의 제한을 두는데다 적어도 일년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니......
우리는 서서히 지치고 있었다.
쉬고 싶다. 이제 크라이스트 처치에 가선 여장을 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그게 잘 될런지 모르겠지만) 쉬고 싶다.
그런데 크라이스트 처치는 불과 보름전쯤 지진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키며 출발 전 우리를 혼란으로 몰아 넣었던 바로
그곳이 아닌가!
우리는 길가의 잔디밭에 차를 세우고 잠시 지진으로 엉망이 된 TV 속의 크라이스트 처치를 떠올렸다.
지친 기분에 한숨을 쉬며 먼 산을 보니 문득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의 글귀가 떠오른다.
"에뜨랑제(이방인)라는 말이 멋있게 들렸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일 때의 이방인은 다만 덧없는
외로움의 대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