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1) 로마를 찾아서

운농 박중기 2016. 4. 5. 20:36

3월 11일 (피렌체)


피렌체 3일째. 몇몇 성당과 주요 건물들, 그리고 다리와 광장들, 미술관 정도를 둘러 본다면 하루 하고

반나절이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꼼꼼하게 피렌체를 살핀다면 3일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이 세련된 도시에서 이곳 사람처럼 생활해 보고 싶기도 하다.

오늘은 두오모 성당(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조토의 종탑,  산 조반니 세례당,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등을 둘러 보았다.

두오모 성당은 그 엄청난 크기와 달리 내부는 대체로 간결하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엄숙한 분위기로

설계한 듯 하다. 여느 성당과 내부와 외부가 바뀐 것 같이 보일 정도다.

그렇지만 예수상 위의 엄청 높은 천정의 천정화는 가히 압권이다. 천국과 지옥, 천사들의 유영, 천상의

사도들의 자세들이 둥근 천정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첨탑 근처의 그림들은 건물의 난간에 사도들이

걸터앉아 내려다 보는 자세들이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난간인 것 처럼 보이지만 전부

그림이었다.

꾸뽈라(성당의 제일 꼭대기 돔형 탑) 까지 오르는 계단의 끝은 숨이 턱에 찰 정도가 되어야 나타난다.

꾸뽈라를 오르는 중간 쯤에 천정화를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난간이 있어서 한참을 기대어 그림을 보면

스펙타클한 그림들은 바로 머리위에서 꿈틀거린다. 멋진 경험이다.

꾸뽈라에서 내려다 보는 피렌체는 맑고 선명하다.


조토의 종탑 역시 두오모의 꾸뽈라와 비슷한 높이인데 가까이에서 두오모의 꾸뽈라를 볼 수 있다.

두오모의 꾸뽈라에 올랐다면 굳이 조토의 종탑에 오르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두오모 박물관은 만든지 오래되지 않은것 같았고, 완전히 현대식 시설인데 깔끔함과 심플한 건물

디자인이 돋보인다.

석상들과 그림, 각종 성구(聖具)와 예식 옷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편안한 기분으로 볼 수 있어 아주 

좋았다.


메디치가(家)라는 걸출한 가문(이런 가문이 '가문'이라는 칭호를 써도 될 법하다)이 또 걸출한 이곳

출신 예술가들을 지원, 지휘해서 르네상스라는 조류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참 존귀한 일이다.

아무리 부르조아적 작업들이라곤 하지만 인간의 가능성 안에서 천재성을 이끌어내어 어마어마한

문화와 예술을 일어나게 하고, 그것이 이 나라와 유럽 전역으로 퍼지도록 했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문예부흥'이라고 르네상스를 얘기 했지만, 이런 '문예부흥'의 역사는 메디치가의

시절에 가장 빛났던 것 같다. 그 이후의 문예부흥은 가늘게 이어져 왔겠지만 이제는 '문예부흥'이라는

말 조차 사라진 세상이 된 것이다.

그 보다는 '르네상스'를 팔아먹고 사는 시대가 오래토록 지속되어 온 듯 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피렌체의 밤거리도 볼 겸해서 내일 시에나로 갈 버스 터미널을 사전답사 했다.

터미널은 피렌체 SMN역(피렌체 역의 정식 명칭, Santa Maria Novella/새로운 성모)과 큰 길 하나

사이의 거리를 두고 큰 건물안에 있다. 시에나 행 시간표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미인(南美人)

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서 팬플롯을 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간혹 지하철 구내나 번화가 모퉁이

에서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이곳에서의 팬플롯 소리는 가슴 울컥하게 한다.

혼자 떠나온 길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팬플롯 소리가 기가 막히게 구성지다.

역시 음악은 위대하다. 그것이 어떤 음악이든...... 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는 홀로 여행땐

한줄기 음악이 귓전을 때리면 금방 울컥하고 마는 법이다.

서너곡을 듣고나서 격하게 박수를 치고, 주머니속의 동전을 모두 털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쇼 라즈니쉬는 말했다.

'고독속으로 들어가라. 타인 속에서 살되, 그대 자신을 타인들에게 소모시키지는 말라'

이제 피렌체를 떠나 시에나로 가려한다. 시에나는 호텔을 예약했다.

시에나의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이메일로 주소와 전화번호 등이 있는 바우쳐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