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로마를 찾아서
3월 4일 (로마)
일과처럼 일어나 오늘은 뽀뽈로 광장부터 시작해 스페인 광장, 트래비 분수, 판테온, 나보나 광장, 보르게제
공원을 들러 보기로 한다.
아침의 뽀뽈로 광장은 한산하다. 그래서 평화롭기까지 하다.
잠시후 스페인 광장으로 들어섰더니 사람들이 꽤 있지만 중앙계단은 폐쇄해 놓은 바람에 모두들 분수 옆이나
상점들 앞에 앉아 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광장이지만 오드리 헵번의 영화 덕분에 유명세를 치루는것 같다.
흑백 영화인 '로마의 휴일'은 분명 재미있는 추억의 영화였지만 일종의 남성적 '신데렐라 증후군'에 속하는
영화였다고 기억되는데, 요즘의 사람들은 이 '유명'에 상당히 매료되는것 같다. 유명한 '장소', 유명한 '인물',
유명한 '먹거리', 유명한 ......, 나 역시 이 유명한 장소를 보러 왔지만 항상 한 구석에는 '유명'에 대한 묘한
반감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왜일까? 쓸데없는 반골 때문에?...... 알 수 없다.
그 '유명'이 정말 모든이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인상적인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별거 아닌 것에
'유명'이라는 덧칠을 씌운 곳이 훨씬 많은것 같아서인지도 모른다.
어쨋던 스페인 광장은 별로 볼 것이 없는것은 확실하지만 스페인 광장 위의 성당에서 내려다 보는 로마
시내의 전경은 꽤 멋지다. 광장 보다는 그 위의 두개의 뾰족탑이 있는 성당의 도로변이 멋지다는 얘기다.
근처의 지하철역 인근에 보르게제 공원이 있는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랐더니 공원
입구가 나온다.
공원은 인공적인것은 별로 없고 나무와 풀밭만 있는, 뭐 특별할 것 없는 공원이다.
로마시는 입장료를 받는 유적지 말고는 시민의 휴식공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듯 하다. 공원은 거의
관리가 되고 있지 않는듯 했고 어찌보면 '방치'되고 있는듯이 보였다.
뉴질랜드의 그 반듯하고 잘 정돈되며 깨끗했던 자연 친화적인 공원과 비교하면 여긴 그냥 풀밭이다.
뉴질랜드 남섬의 해글리 공원, 오클랜드 근교의 콘웰공원 등......'공원은 자고로 이래야 한다!'라고 웅변
하던 그 멋진 공원들이 생각난다.
로마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보르게제 공원을 보며, 오늘날 로마의 후예인 이탈리아인들의 별 볼일 없는
심미안을 들여다 본 것 같아 떨떠름하다. 조상이 물려준 아름답고 견고한 유적에 비해 이들이 현재 조성한
공원에서 '현재의 안목'을 보는 것 같다.
트래비 분수는 참 아름답다. 건물의 뒷 벽면을 이용해 조각을 세우고 맑은 물을 흘러 내리게했는데, 분수 주변
빙 둘러쳐진 건물들로 좁은 면적임에도 아주 아름답게 빛났다. 그렇지만 첫날밤에 본 밤의 트래비 분수가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트래비 분수에서 길을 물어 판테온으로 갔다. 눈 앞에 우뚝 서있는 판테온을 보고 처음에 좀 놀랐다.
그 우람한 덩치도 덩치거니와 몇일 로마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봐 왔던 건물들과는 다르다.
서기 126년에 세웠다고 하니 1900년이 되었다는 얘긴데 바깥은 세월의 흔적이 보였지만 내부는 벽면과 조각
들이 생생하다. 내부에서 판테온의 천정을 올려다 보면 그 위용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이 어마 어마한 면적의
건물에 기둥이 하나도 없다. 완벽한 돔형의 지붕을 둥그런 벽면이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이 건물을 보고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했다는데 건축학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공감할 정도다.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술에 경탄할 수밖에......
판테온을 나와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너른 광장에는 자동차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조용하고 평화롭다.
세개의 분수가 광장 곳곳에서 물을 뿜고 있다. 각각 다른 모양이지만 참 아름답다.
대리석 벤치에 앉아 트래비 분수 옆 수퍼에서 산 사과와 바나나, 요거트와 햄버거로 점심을 떼웠다.
이리 저리 기웃거리고 헤매다 지하철을 타고 일찍 민박집으로 귀가했다.
로마의 유명한 유적지는 대충 둘러 본것 같은데 내일은 온전히 하루가 있으니 다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보고, 그 끝머리에 있는 싼 탄젤로 성을 보려고 한다. 가는 길에 '로마인 이야기'에 수없이 언급되던 떼베레
강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