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3) 웃지않는 사람들, 러시아

운농 박중기 2015. 10. 2. 19:50

9월 12일. 토요일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공사중이었다. 굉장히 넓은 수도원의 60% 정도가 공사용 덮개로 덮혀 있는데도

입구에서 입장료와 카메라 촬영료를 징수한다.

러시아에서 특이한 점은 어디든 입장료를 징수한다는 점인데, 서유럽이나 동유럽의 경우 성당이나 수도원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입장객이 자발적으로 약간의 기부금을 낸다.

이곳 러시아 정교가 로마 가톨릭 교황청의 산하, 또는 통제를 받는 곳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아는바가 없다.

다만 성당이나 수도원의 경우 거의 '박물관'이라고 팻말을 붙혀 놓은것을 보면 아마 입장료를 징수하기 위한

편법인지도 모른다.

어쨋던 러시아를 여행하려면 입장료가 수월찮게 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몇군데 유명한 곳을 들러고 나면

하루 식사료보다 더 들어가는 경우가 많을때도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바뀐 러시아가 이미 돈맛을 너무 알아버린것이 아닌가 한다.

 

 수도원 내부의 작은 사당 같은 건물은 황금빛 지붕과 정교함,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이 작은 사당은 돌아가면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옆에 있는 호수는 참 아름다우나 공사중인 수도원이 물 위에 비춰져 많이 아쉽다.

또 호수 건너편에는 모스크바의 신도시인듯 고층 빌딩들이 스카이 라인을 이루고 있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맹숭하게 보내긴 뭣해서 지하철을 타고 붉은 광장의 야경을 보러 나섰다.

밤 공기는 싸늘했다.

크렘린 입구 '부활의 문'에 이르자 예전과 같지 않다.

입구에서는 경비원들이 일일이 검표를 하고 있었다.

9월 5일부터 13일까지, 그러니까 내일까지 붉은 광장에서 쭉 행사를 해 왔는데, 오늘이 '세계 군악대 페스티벌'

이라 표를 사서 입장하란다. 표는 1,500루블 부터 3,000루블까지. 우리 돈으로 하면 3만원부터 6만원 짜리다.

페스티벌이라면 어느 나라건 모든 이들이 즐기며 참여하는 행사라, 입장료를 받거나 하진 않는데, 이 러시아

사람들은 돈맛을 너무나 많이 알아버린것 같다.

불쾌하기도 하고 너무 비싸기도해서 그냥 마네쥐 광장의 화려한 야경만 보다가 돌아와 버렸다.

 

 지하철에는 이미 뚜렷한 계급화가 이루어져 있다.

승객은 주로 아주 젊은 남녀, 그리고 노인, 후줄그래한 노동자풍의 사람만 탄다. 뻬쩨르부르그에서도

그랬고, 이곳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다.

잘 차려입고, 꽤 멋을 부린, 돈 냄새나는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 뚜렷해서 열흘 넘게 지하철을 매일 타면서 확연히 느낄수 있다. 아직 우리네는 이 정도는 아니다.

거리의 수많은 자동차들, 특히 독일의 프리미엄급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다닌다.

러시아는 오히려 우리네 보다 더 뚜렷한 계급사회에 진입한듯 보였다.

기름 값은 대개 리터당 600-700원 사이로 산유국 혜택을 보고 있는듯 하고, 넘쳐나는 고급 승용차들은 기름값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 차지이고, 지하철과 버스는 '그외 사람들'이 타는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중국인 여행객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걸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거의 다 단체 여행객들로 전세

버스를 타고 다니는 탓일게다.

 

 러시아에 올때 어떤것을 기대했을까? 늘 이 물음이 있었다.

다른나라에 갈땐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붉은 광장에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크렘린 성벽위엔 붉은 별이 빛나고 있는것을 기대

했을까?

아니면,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행색을 하고서 평등한 삶에 만족하고 있는 그런 상상을 했을까?

그러나 그런것은 없었다.

크렘린 성벽의 첨탑에 조명을 켜 둔 커다란 붉은 별이 빛나고 있긴 했지만 ...... 여기도 어느곳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기대 했는지도 모른다.

그 '다른 세상'이 내가 사는 곳과 무엇이 다르기를 바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다른 세상이기를' 바란것 같다.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가 러시아의 전부는 아니지만, 또 내가 본 이 두 도시의 전부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까닭모르게 실망스럽다.

내가 바라보기에 좋은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실망감만이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밤을 약간은 우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