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0) 웃지않는 사람들, 러시아

운농 박중기 2015. 9. 29. 14:25

9월 9일. 수요일 (뻬쩨르부르그 - 모스크바)

 

 뻬제르부르그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는 날이다.

숙소에서 아침식사후 뻬쩨르부르그 마지막 날의 네바 강변을 걸었다. 어제와 달리 날씨는 청명하고 완연한 가을

이다. 거리의 가로수가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도스또옙스키는 이 강변을 거닐며 '죄와 벌'을 구상했을 것이다.

거리는 마차들이 오가고, 강에는 돛배가 떠다니고 있었겠지.

그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왜 라스꼴리니코프를 창조 했을까?

그가 말하고 싶었던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종교'에 대하여, '철학'과 '미학'에 대해 말하고 싶었겠지.

그는 '죄와 벌'에서 이 모든것에 대해 다 말했다.

인간의 심연 깊숙히 숨어있는 자아와 본성, 그리고 상념을 끌어 올려 종교의 역활에 대해 말하고,

라스꼴리니코프를 통해 '범인'과 '비범인'에 대해 말하고, 죄와 벌에 대해 얘기했다.

 

 11시쯤 숙소에 돌아와 체크아웃하고 버스로 모스크바 역으로 갔다.(여긴 도착지명이 역 이름이다)

먼저 플랫홈을 확인한 후 점심식사를 하고 기차에 올랐다.

'삽산'호. 이 고속기차는 독일 시멘스사에서 만들었다고 각인되어 있는데 승차감이나 시설이 독일산 답게 아주

훌륭하다.

역을 빠져 나와 기차가 달리자 이내 뻬쩨르부르그에 인근한 시골 마을들이 나타나는데, 한참을 바라보다 까닭

모를 실망감과 함께 괜히 스물스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시골의 집과 도로, 건물들이 지나가는데, 언듯 봐도 아주 형편없이 열악하다.

'아니,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개혁을 기치에 내걸고 혁명을 일으키고, 사회주의를 몇십년이나 한 나라의 농촌이 

저 지경이라면 혁명은 뭣하러 했을까?'

그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내세워 기실은 권력을 향유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마르크스는 '교육'하고, 레닌은 '실행'해서 말이다.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된 사회가 수십년 흘렀다면 저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터.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하는 것들이 권력의 맛을 잘 아는 '힘센 자'들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을

뿐이 아닌가.

괜히 머슥하고 떨떠름한 기분이 자꾸 머릿속을 휘졌고 있다.

'주의(主義)' 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함을 느낀다. 주의라는 것 보다는 '인간'이 문제인 것이다.

정보기관 출신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을 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너무 '순수'를 기대한 것일까?

하긴, 독재자의 딸이 여전히 국민의 일정한 지지를 받으며 화사한 옷을 입고 세계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나라에 살면서 무슨 그런 '순수'를 꿈꾸고 있는지......  순진하게시리...... 

 

 뻬쩨르부르그에서 모스크바 까지는 약 680Km라 한다.

철로변에는 숲이 우거지고 농경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가끔은 농경지와 띄엄띄엄 농가들이 나타나는 단조로운 풍경이었는데, 680Km 전체 구간중에 산(山)은 한번도

나타나지 않은 것은 물론, 작은 구릉도 나타나지 않은 완벽한 평지였다.

이 나라의 엄청난 넓이는 익히 알고 있지만 반도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나그네는 충격 그 자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450Km 정도, 그 안에는 수많은 주택과 공장, 농경지 등등 어지럽게 펼쳐지는 광경을  봐

온 지라 이런 장대한 풍광은 참 낯설다.

특히 자작나무가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이 나무는 이런 풍경과 잘 어울렸다.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 역에 내리자 긴장되기 시작한다.

이 천만이 넘는, 생전 처음 온 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또 환승해서 예약한 숙소(차파예브스키 12번지)를 찾아

간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닐터.

택시를 타면 간단하겠지만, 내 여행 철칙이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를 타지 않는다는 것.

우선 레닌그라드 역에서 나와 좌측으로 100미터쯤 가니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지하도로 내려서니 

뻬쩨르부르그와 완전히 다른 구조다. 5호선 깜사몰스카야 역을 찾아 가는데 계단을 올랐다가, 다시 지하도로,

또 다시 한참을 걸어 다시 계단을 올랐다가 다시 곤두박질 치듯 굉도같은 지하로...... 거의 20분을 걸어서야 5호

선 깜사몰스카야 역이 나온다.이 과정에서 10명쯤에게 방향을 물어야 했다. 나이 든 이는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자세히 가르쳐 준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적극적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처음부터 나의 실수였다.

뻬쩨르부르그와 같이 깜소몰스카야 역은 지상에 따로 있는데, 그 인근의 다른 역을 무턱대고 들어갔으니

지하에서 한참을 헤매야 했던 것이다.

5호선을 타고 벨라루스카야 역에서 내려 다시 2호선을 환승하고 세 정거장째에서 내린 '소콜'역.

예약한 숙소인 호텔 이름과 같다. 호텔 이름과 같으니 이 근처겠지. 차파예브스키 12번지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젊은 청년이 자기가 호텔까지 안내 하겠다며 오던 길을 되돌아 앞장선다. 약 15분을 걸어 호텔에 당도.

청년은 대학에 다니는데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호텔 인근의 부모님 아파트에 다니러 왔다고 한다.

멋진 청년이다.

어쨋던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 역에서 내려 1시간 20분 만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것이다. 괜찮은 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