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2011년 3월 5일 (웰링턴 - 도선(인터 아일랜드) - 픽턴 - 넬슨)
아침 6시, 우리는 부산하게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고 짐들을 차 안에 던져 넣고 새벽의 국도를 달려 웰링턴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남섬으로 들어가는 도선을 타는 날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빌리면서 렌트카 회사인 아펙스에서 미리 오늘로 지정된
여객및 자동차 화물선인 인터 아일랜드의 승선 티켓을 구입해 두었던 것이다.
당초에 아펙스 라는 회사를 선택한 것도 승선 티켓의 구입과 예약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가 유일하게 있어서였다.
웰링턴의 부둣가(아오테아 키)에 있는 선착장에는 이미 배가 크다란 덩치를 자랑하며 정박해 있었다.
큰 아가리를 벌려 자동차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다.
진입로를 돌아 차 안에서 아펙스에서 발급한 승선증을 입구에 주니 확인하고는 5번 열에 서란다.
비가 내려 마치 윤활유를 바닥에 뿌려놓은 형국이라 어디가 5번열인지 알 수가 없다. 어디에도 열을 표시한 팻말도 없고
안내자도 없다. 대충 줄지어 늘어선 차들의 뒷꽁무니에 정차하고 자세히 살피니 제일 앞쪽 길바닥에 페인트로 쓴 '5'자가
보인다. 제길! 이 녀석들은 이정표나 표식에 정말 불친절하다. 사람들은 우리네와는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친절한데 도로의
이정표나 표시판, 방향표시, 중간 중간의 이정표 등이 정말 끔찍하게도 없어서 당황하기 일쑤다.
어쩌면 자기네는 되도록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고 그런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네 처럼 여행객들의 입장은
애를 먹기 일쑤인 것이다.
한 예로, 통가리로 산에서 트래킹을 위한 트랙을 표시하면서 그 출발점에만 00 트랙이라고 적어 두고는 2시간 정도를 가도
전혀 중간 표시가 없는 관계로(예를 들어 "00 지점까지 몇 킬로 남았다" 는 표시 등) 우리가 정말 맞는 길을 가고 있나?를
염려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하긴, 그런 현상은 우리네의 과잉 친절한(?) 표시판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되지도 않는 루트에 워낙
친절한 우리네 표식은 국립공원을 가던, 군립공원을 가던, 심지어 동네 뒷동산을 오르던, 너무나 많고 자세해서 이러한
표식 과잉친절의 나라에서 온 우리가 당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어쨋던 5번 열에 주차하고 승선을 기다려야 하는것을 어기고(고의는 아니지만) 4번 열에 주차를 하고 있다보니 옆 차의 젊은
청년이 내려 비오는 창문을 두드린다.
"왜?"
"어쩌고 저쩌고, 카 배터리 케이블 어쩌고......"
비바람 탓인지 이 젊은 청년은 우리의 빈약하고 엉터리인 영어 실력을 전혀 알 바 아니라는듯 빠르게 말하는 통에 우리는 거의
알아 들을 수 없다.
아하! 이 친구의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구만, 그래서 날더러 배터리를 연결 할 케이블을 빌려 달라는 거군.
"이 차는 렌트카라 그런것 없어" 했더니 이 친구는 우리를 다소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곤 금방 우리 옆의 5번 열로 가더니
젊은 아가씨가 탄 차의 문을 두드려 지네들 끼리 어쩌고 하더니 아가씨가 차를 그 청년의 차에 갖다 붙힌다.
청년은 쨉싸게 두 차의 배터리를 케이블로 연결하더니 시동을 걸고는 케이블을 철거하고는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이런, 우리에게 케이블이 있냐고 물은게 아니고 시동이 안 걸리니 우리에게 차를 자기 차 앞에 가까이 해 달라는 것을 우리는
'그런것 없다'고 했으니 이 친구가 황당했을 밖에.....
아, 이 한심한 영어 실력이여! 그렇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가 우리 말을 못하듯 우리가 지네들 말을 못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어쨋던 이들은 어릴때 부터 자동차를 다루고 살았으니 그런 대처에 상당히 능한 눈치다.
차와 사람의 승선이 시작된다. 커다란 배의 아가리로 안내자의 손짓에 의해 승선하니 거의 실내 체육관 처럼 넓은 배 속의
주차공간이 예상보다 훨씬 넓다. 차에서 내리고 윗층으로 오르니 여객실이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답다.
선실내를 이리저리 구경하고 비가 그친 갑판위에도 오르니 동양인이라고는 우리와 일본인 7-8명 뿐이다.
3시간의 항해 끝에 픽턴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항구도시로 아담한 아름다움이 있는 도시다.
배를 빠져나와 우리는 넬슨으로 향했다.
조그마한 공원과 아름다운 상점가, 잘 정돈되고 손질된, 아마 여지껏 스쳐온 도시 중에서 제일 '예쁜' 도시인 것 같다.
이런 도시에선 한 일년쯤 살아도 좋을 것 같다.
YHA(유스 호스텔)에 80불을 지불하고 트윈룸에 들었다. 콧구멍만 하다. 우리네 같으면 80불이면 시설 괜찮은 작은 호텔에
들었겠다. 침대 두개와 의자 1개, 30센티미터 짜리 선반 2개, 거울 1개, 옷걸이 4개, 휴지통 1개가 전부다.
그러나 역시 공동부엌과 공동 거실, 샤워실은 괜찮다.
우리 돈이 이 나라에선 맥을 추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넬슨의 수퍼마켓 역시 대단하다. 이 작은 도시의 풍족함이라니......
자본주의도 이쯤되면 미덕으로 여겨질만 하다. 여자들의 허리와 엉덩이는 탱크만 하고......
한편에선 헛배 부른채 굶주리고...... 수퍼마켓에만 오면 은근히 불편하고 슬그머니 부화가 치민다.
멧돼지를 사냥해선 작은 트럭에 싣고가는 것을 길거리에서 봤는데 역시 여기도 예외없이 사냥꾼은 거칠고 혐오스럽게들 생겼다.
피를 흥건히 흘리고 누운 멧돼지들과 이 아름다운 도시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조금씩 이 나라에 적응하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유스 호스텔의 공동 거실에 앉아 여행가 오소희의 책 속 한 구절이 생각난다.
"당신이 잘 차려 입고 떠난 여행자라면 흙투성이의 꼬마는 안아주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된다.당신이 냉방된 차를 타고 가는
여행자라면 밖은 그저 덥고 먼지가 많은 불쾌한 곳이 된다. 들어가 있지 않으면 물에뜬 기름처럼 유리되는 것이다"
우리는 '들어가 있는'가? 그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짧고 엉터리인 언어의 장벽이 '물에 뜬 기름처럼' 우리를 유리 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