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4)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6. 30. 15:02

2014. 6. 4(수) -사프란볼루-

 

새벽 5시쯤 자미에서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는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 아잔 소리는 여행자에게 무엇일까?

'알라는 유일신이다. 너희는 알라를 믿으라!' 하는 소리 라는데, 옛날엔 목청 좋은 사람이 자미

옆에 높다랗게 세워 둔 미나렛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예배시간 임을 알렸

다는데, 요즘은 녹음한 육성을 하루에 다섯번 메카를 향해 경배를 드리는 시간에 스피커를 통해

알린다고 한다.

인도의 우다이푸르 이슬람 지역에서 울리던 아잔 소리는 쨍쨍한 음성에 엄청 큰 소리였던 반면,

사프란볼루의 아잔 소리는 작고 저음이라 그나마 견딜만 하다.

우리는 인도 여행때에 우다이푸르의 아잔소리에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뻔 했었다.

어쨋던 이 아잔 소리는 여행자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꽤 스트레스가 된다.

낮에는 여러 소음에 묻혀 별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저녁 10시쯤 피곤한 여행자가 막 잠이 들때

움찔 하기도 하고, 새벽 5시쯤에는 곤한 잠을 깨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정교일체(政敎一體)의 나라가 아니고, 정교분리를 선언한 터키는 이슬람이 국교(國敎)도
아니고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국민의 95%가 이슬람 교도인 점을 감안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종교가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알라는 유일 신이다. 너희는 알라를 믿으라!'...... 유일 신이라면 신은 하나뿐이니 그 점을 강조

하지 않아도 될테고, 믿으라고 매일 다섯번씩이나 떠들어대지 않아도 될텐데......

서로 사촌격인 기독교나 이슬람은 왜 끊임없이 '믿음'을 강조 할까? 

'믿음'을 강조할게 아니라 예수 처럼, 알라가 가르치는 대로 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와 이슬람은 아직도 그들 세력이  정교일체의 권력으로 대단한 재미를 보고 있었던

황금기를 그리워하고 있는게 아닐까?

'너희는 믿어야 해! 그래야 복종할테고, 우리에게 예속 될테고 우리를 계속해서 숭배할테니!'하고

끝없이 앙탈을 부리는 것 같다.

최근에 교황 프란치스코는 "과거에는 유리잔이 가득 차면 흘러넘쳐 가난한 자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 간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 차면 마술처럼 유리잔이 더 커져 버린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고 말하며 가진자들의 욕심과, 자본주의의

맹점을 질타하는 강론을 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믿음' 만이 제1의 덕목으로 강조되고, '예수처럼 살라'는 얘기는

슬그머니 뒷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라오스에서 아침을 맞을때 들리던 새벽녁의 잔잔하고 진중한 북소리는 참 좋았었다.

새벽의 청아한 공기와 그 낮은 톤으로 인해 아득한 행복감을 주던 사원의 낮은 북소리.

나그네에게 근사한 위로와 하루 일과전에 활기를 불어넣던 그 북소리가 요란한 아잔 소리와

극명히 대비된다.

 

여행의 피곤이 누적된 걸까. 찌부드 하고 머리가 띵하니 아프다.

마침 이곳엔 400년 된 하맘이 있다.

아침을 먹고 하맘으로 향했다.

오스만 시대에 지은 하맘은 외양은 석조(石造)다. 지붕에는 채광을 위한 유리병 같은 것이

꽂혀있다.

우리가 하맘에 들어 갈때는 이른 시간이라 첫 손님이었다.

바깥의 안내판에는 목욕, 때밀이, 사우나, 샤워 등을 할 수 있다고 하고, 각각 금액이 다르다.

이왕 '터키탕'의 원조격인 나라에 왔으니 몸도 풀겸 전부 다 경험하기로 했다.

1인당 40TL, 우리돈으로  2만원이 채 안된다.

들어서니 관리인이 큰 타올을 건네며 개인 탈의실에 가서 옷을 벗고 타올로 몸을 감싸고

나오라고 이른다.

입구에는 개인 탈의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한평 반 정도 크기다.

안에는 침상과 탁자 한개가 있다.

우리네 처럼 공동 탈의실에서 다 같이 옷을 벗거나 갈아 입는것이 아니라 철저히 중요부위를

가리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욕실안은 벽과 바닥이 전부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욕실의 중앙에는 8각형의 돌출된 대리석이

크다랗게 설치되어 있다. 네개의 귀퉁이 방에는 사우나실, 찜질방, 때밀이 방 등이 있고, 벽에는

온,냉수가 흐르는 큰 대리석 그릇들이 있다. 그 그릇들에서 물을 퍼서 몸에 끼얹도록 되어있다.

중앙에 돌출된 8각 대리석 바닥에 올라가 뜨거운 바닥에 몸을 누이면 땀이 비오듯 했다.

이윽고 배가 불룩하고 구렛나루가 억센 사내(터키의 보통남자 70% 정도는 거의 그렇다)가

나를 불러낸다.

그가 이끄는대로 누우면 우리네 이태리 타올 같은것으로 때를 민 다음 큰 자루 같은 천에 비누

거품을 잔뜩 만들어 몸에 문지르고 맛사지를 한다.

맛사지라야 기껏해 5분 정도다.

라오스의 1시간 전신 맛사지 하고는 비교도 안된다. 맛사지가 끝나면 물을 끼얹고, 그의 역활은

끝나고 뜨거운 8각 대리석 위에서 뒹굴다 나오면 끝이다.

이른 아침 시간이었지만 8각 대리석은 뜨거웠고, 몸은 엄청난 땀을 배출했다.

목욕은 우리와 같으나, 다른 점이라면 우리네 처럼 물이 있는 욕조가 없고, 목욕중에도 타올로

중요부위를 가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맘에 갈때는 반바지를 가지고 가서 입고 욕장에 들어가면 좋을듯 싶었다.

욕실에서 나오면 관리인이 큰 타올로 몸을, 작은 타올로 머리를 감싸준다.

잠궈 두었던 개인 탈의실로 가서 침상에 잠시 쉬었다가 옷을 갈아 입고 나오면 된다.

 

사프란볼루는 분위기가 차분하고 옛스럽다.

골목들은 아기자기 하고, 전통가옥들로 가득한 마을은 알 수 없는 정감이 있다.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몸과 마음을 쉬기엔 적당한 장소다.

하지만 골목에서 느껴지는 터키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남성위주의 기운은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굉장한 보수주의자' 같은 인상의 터키 남자들은 친절하고 호의적이지만 깊은 공감을 느끼기엔

곤란한 구석이 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들의 빵빵한 살찐 얼굴과 한결 같이 불룩한 뱃살, 수염자국이 선명한 얼굴

들이 그런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

괴레메에서 일일 투어 가이드인 스물여섯살 처녀애가 하던 얘기가 생각난다.

투어중인 처녀애 하나가 "언니도 터키 남자에게 시집 갈 수 있겠네요?" 하니 "그런 소리 마세요.

특히 남자는 어쩔 수 없는 '터키 것들'이예요. 잘 씻지 않아 냄새나고, 굉장한 보수주의에다

남성 우월주의자들이예요. 대학을 나왔건, 고소득자든, 교수든 다 똑 같아요!"

말하자면 이들에게서 풍기는 외양적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얘기다. 물론 터키의 남성이 모두

그렇다는 얘긴 아니겠지만......

장거리 버스를 타고 오면서 운전자 뒷좌석에 앉았을때 땀냄새가 끊임없이 올라와 곤란했던

몇시간이 떠오른다.

"오, 코리아! 지성 팍! 코리언, 터키 브라더!" 라며 오버하던 터키인을 열 명쯤은 만났었다.

'축구선수 박지성, 한국과 터키는 형제'라는 이들은 우리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동양과 서양을 교묘히 섞어놓은 듯한 터키인들. 그들에게서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건 왜 일까?

 

우리는 하루를 셀빌리 코쉬크에서 빈둥거리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