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0)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7. 13:37

 

2011년 3월 4일 (통가리로 국립공원 - 왕가누이 - 레빈 - 웰링턴)

 

아침 식사후 백패커스를 나서니 짙은 안개 속에서 비바람이 몰아친다. 통가리로는 우리가 다가 간 날과 떠나는 날 똑

같은 안개와 비바람을 선물한다.

왕가누이를 향하는 도로에는 차도에 양떼의 이동이 많아 차는 자주 거북이 걸음을 해야 했는데, 결코 서둘지 않는

이 녀석들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웰링턴이 가까워오자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웰링턴은 항구 도시다. 부두시설과 띄엄띄엄 쌓여있는 컨테이너, 골리앗 크레인, 언덕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주택 등이 흡사

우리네 부산이나 마산 같다.

 

그러나 우리가 늘 기피하던 대도시에서 그만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들어 간 백패커스, 유스 호스텔, 모텔, 심지어는

호텔 마저 '빈 방 없음' 이다. 뉴질랜드의 숙박업소는 어느곳 할 것없이 빈 방의 여부를 표시하는 표시를 입구에 적어 두거나

작은 네온으로 표시해 두는데 이날 웰링턴의 우리가 찿은 모든 숙박업소는 'No Vacancy' 일색이다.

아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람? 아무리 시즌이라고 해도 절대로(!) 빈 방이 없는 법이 없는 뉴질랜드에서 이게 무슨 조화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서너 시간을 배를 쫄쫄 굶고 헤맸지만 ..... 결국 빈 방은 없었다.

호텔을 절대 찿지 않는 우리가 호텔 마저 기웃거렸으니 오죽 답답했으면.....

관광도시도 아니고,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뉴질랜드의 행정 수도인 이 도시에 왜? 우리는 맨 마지막으로 찿은 모텔에서

그 답을 찿았다.

"왜 이렇게 빈 방들이 없는거야?"

"닐 다이아몬드가 왔잖아!"

"닐 다이아몬드?"

"그가 오기 한달 전부터 예약이 들어와서 아마 웰링턴엔 빈 방이 없을걸?"

아니, 닐 다이아몬드 라면 한참 한물 간 가수 아닌가. 영화 '갈매기의 꿈'의 주제곡을 작곡한 작곡가 겸 가수, 70년대 부터

80년대에 활동한 가수가 왔다고 이 난리?

닐 다이아몬드는 우리도 참 좋아한 가수다. 그렇지만 이 70년대 한물 간 가수의 공연 방문이 우리를 서너시간 헤매게

만들 줄이야.....

뭍 인간들이 웰링턴으로 모이는 바람에 여관방들은 만원이고 차는 길거리에 넘쳐났던 것이다.

왠지 웰링턴에 들어섰을때 부터 이상하게도 뉴질랜드 답지 않은 도시의 분위기가 내키지 않았는데, 여기서 남섬으로

이동하는 페리호를 타야하니 다음 도시로 건너 뛸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헤매던 한 골목길에서 자동차 안에서 노숙을 할까 하고 의논도 했지만 도무지 마땅한 장소를 찿을 수 없었다.

자동차 속 노숙이라면 뉴질랜드 처럼 좋은 곳도 없지만 이 웰링턴에는 영 마땅찮다. 

우리는 웰링턴을 빠져나가 10킬로 이상 떨어진 '타와'의 모텔에 거금 150불을 내고 투숙할 수 밖에 없었다.

'타와'는 웰링턴에서 조금 떨어진 위성도시 같았는데 그곳 역시 닐 다이몬드 특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돈은 돈대로.....

그런 와중에도 아내는 열심히 길을 찿아 주었다. 지도를 펼치고 앉아 "여기 작은 위성도시 같아, 이리로 가 봐요. 조금

가다 오른쪽 도로로 진행 해요. 그렇지! 그대로 직진!"

대도시만 벗어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전혀 없는 뉴질랜드지만 이럴땐 꼼꼼한 지도 탐색의 아내가 든든한 조력자다.

 

'타와'의 150불 짜리 모텔은 이 나라 숙박업소의 칼(!) 같은 서비스 구분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다니면서 늘 느낀거지만 뉴질랜드의 모든 서비스업은 딱 '돈 낸 만큼!' 이다.

70불은 딱 70불 만큼, 100불은 딱 100불 만큼, 150불은 딱 150불 만큼이다. 여지없다.

우리네 처럼 여행을 가다 어느 모텔에 묵었는데 3만원 밖에 내지 않았는데, 어라? 숙박료 치곤 상당히 괜찮네? 하거나

아니 5만원이나 냈는데 이게 뭐야! 하는 따위는 없다.

뉴질랜드의 숙박업소에는 어딜가나 입구에 뉴질랜드 전역의 숙박업소를 망라한 안내 책자가 있는데 우리네 단행본 2권

정도의 두께인데 무료 배포다. 그 책자 안에는 가장 저렴한 곳부터 가장 비싼 업소 등 모두를 담고 있는데, 저렴, 중급, 고급

등의 표시가 색깔과 별표로 표시되어 있다. 그 표시를 믿으면 99% 정확하다.

성수기와 비수기 요금이 많이 차이가 나지만 요금도 책자에 있는것과 거의 일치한다. 다만 비수기의 요금은 성수기로 표시된

일반적인 요금 표시보다 약 20-30% 낮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고급 모텔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아직 남섬 여행이 시작되지 않았고 여행기간의 1/3 정도를 보냈지만 새삼 '우리에게 맞는 여행의 형태'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이곳 뉴질랜드는 깨끗하고, 사람들이 그럴 수 없이 친절하고, 풍광이 아름답고 숙소들은 기본적으로 청결하고, 음식 또한

수준급이고 탈 것들이 쾌적하다. 말하자면 여행자가 바라는 모든 하드웨어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분명 없는 것이 있다.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망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여행의 진득한 참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간이 맞지 않고 심심하다'는 것이다.

인도나 네팔 등의 여행은 위에 열거한 뉴질랜드의 장점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지만(사람들의 친절과 좋은 풍광외는)

그래도 우리의 '간에 맞는' 결정적인 것이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벌거벗은 모습과 일상, 그리고 그것에서 진하게 느끼는 '인간' 이라는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동유럽에서 느꼈던 그 '인간의 건조함'을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느끼고 있다.

이성적이고 신사적인 사람들,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이곳 사람들에게서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냐고

물으면 참 곤란하다.

인도나 네팔에서 느꼈던 그 진한 사람 냄새를 여기선 맡을 수 없다...... 그것이 불쾌한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내일은 차를 페리호에 싣고 남섬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지친 오늘의 여정이 다시 반복 되지 않기를 바라며 수퍼에서 구입한 종이팩 와인을 한 잔 가득 부어 연거푸

마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