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5)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6. 19. 20:26

2014. 5.26(월) -파묵칼레-

 

오늘은 파묵칼레 일일 투어를 숙소에 신청에 해 둔 터라 아침 일찍 식사를 끝냈다.

숙소에 신청했지만, 역시 셀축 시내 각 숙소의 신청자들이 여행사에 모여 팀을 이뤄

투어를 떠나는 형식이다.

호주에서 온 노부부, 중국의 젊은 커플, 두바이에서 혼자 온 총각, 그리고 우리, 이렇게 

7명이 투어 참가자다.

애초에 우리는 파묵칼레를 여정에서 제외했는데, 아무래도 나중에 못 본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하루 시간을 할애 하기로 했다.

가이드는 능숙하고, 친절한 사람 좋은 인상을 지녔다.

 

약 세 시간을 달려 파묵칼레에 도착해 점심식사후 거대한 흰 벽이 병풍처럼 둘러 쳐진

석회암 지대 파묵칼레와 마주했다.

여행전 TV나 잡지에서 흔히 보아왔던 파묵칼레의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들에서 본 것은 하얀 석회암 쟁반에 파란 물이 고여 떨어지는 것이었으나, 거대한 

석회암 지대 아래에서 올려다 본 것은 엄청난 크기의 흰 색 장막이 산 전체를 커튼 처럼

감싸고 있었는데 참 장관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쌓인 석회가 언덕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계단식 논 처럼 층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탄산염을 함유한 온천수가 경사면을 따라 흐르면서 침전, 응고된 것들이라 

한다. 1만 4천년 동안 쌓여진 결과물이라고 하니 그저 입이 벌어질 따름이다.

석회층이 끝나는 아래 부분에는 작은 호수가 온천물을 담고 있는데 파란 물빛과 하얀

석회암이 절묘한 색채의 조합이 되어 굉장히 아름답다.

우리는 석회층의 아래 풍경을 본 후 다시 자동차를 타고 석회암 위로 올라갔다.

아니! 이 거대한 석회암 지대 위에 엄청난 넓이의 유적지가 나타난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다!

거대한 석회층 위에 지어진 고대 도시.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의 왕인 에우메네스 2세가 

처음 건설했다 하고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 라는 뜻으로, 헤라클레스의 아들이자 

페르가몬의 시조인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여인네의 이름을 딴 것 치고 어마어마 하게 넓다. 석회암 아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도시가 마치 환영처럼 나타난 것이다.

로마 귀족과 관료들을 위한 온천 휴양지로 번영했고, 황금기였던 2-3세기에 대규모의 

극장과 체육관, 신전 등이 세워졌고, 비잔티움 시대에는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1354년에 대지진을 맞아 파괴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유적지를 둘러 보았는데, 유적지의 석회층 위에서 내려다 보는 

파묵칼레 마을과, 끝을 알 수 없는 평원의 파노라마가 완전히 우리를 압도했다.

아! 여기를 여정에서 빼려고 했다니!

평원의 파노라마는 시야를 가득 채우고 넘쳐 장쾌하고 웅대하다!

이런 기가 막힌 곳에 도시를 세운 당시의 멋스런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사실 터키 여행을 계획할때 파묵칼레나 히에라폴리스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으므로 

이 굉장한 광경은 '이거 정말 여기를 빠뜨렸다면 큰일 날 뻔 했잖아!'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했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은 로마 욕탕, 도미티아누스 문, 열주로와 아고라, 네크로폴리스, 히에라

폴리스에서 순교한 사도 빌립의 기념관, 로마 극장, 아폴론 신전과 플루토니움 등이 있었는데

그 중 네크로폴리스는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대규모 무덤 군이 있었다.

주로 석관이나 석조 가족묘가 있었는데 그 규모가 굉장하다. 수많은 무덤 양식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장 같다.

저 거대한 히에로폴리스를 보며 언뜻 든 생각, 저렇게 굉장한 도시를 만들어 천년을 누리며

살았고, 기원전 부터 건설해 왔을때 우리 조상들은 대체 뭘 했을까?...... 

 

석회암 온천지대는 우리가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아 왔던 것보다 그 규모가 훨씬 거대하다.

서양인들은 미리 수영복을 챙겨 온 모양으로 상당수가 수영복 차림이라 마치 해변 휴양지에

온 것 같다.

그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유적 풀장은 유적이 있는 곳에 온천 풀장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해 두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온천욕을 하고 있었다.

풀장의 바닥에는 물이 맑아 유적의 기둥과 석축 등이 투영되고 있어 이색적이다.

수영복을 챙겨오지 못한것을 후회했다. 

 

영어로 설명을 하는 가이드는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이 친구는 열정적이며 세밀하고, 

친절하게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있지만 그의 말을 70퍼센트도 알아 듣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이거 원, 알아 듣는체를 해야 하나, 아예 무시하고 우리가 흥미를 가질것들 만 봐야 하나

신경 쓰인다.

유적에 대한 지식과 기원, 또 전설 등등을 얘기 하는데, 하긴 저걸 다 알아 들으면 훨씬 공부가

되겠지만 우리가 저걸 공부해서 뭣 하랴.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유적에서 풍기는 분위기, 그 공간의 느낌, 이런 등등을 가이드의 설명없이 느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젊은 시절 영어 공부를 못한게 아쉽긴 하지만 뭐, 내 방식대로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도

좋은 것이다. 오히려 선입견 없이 보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좋을수도 있는 것이다.

 

파묵칼레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어제의 식당 '오쿠무 쉬라르'에 갔다.

이번엔 제대로 이 맛있는 음식을 즐기겠다고 맥주를 한 캔 사갖고 말이다.

떡하니 테이블 위에 맥주를 올려 놓고 주문하니 주인이 대뜸 맥주를 가리키며 '술을 마실거면

밖에 나가서 마셔!' 라는 게다.

우린 좀 뻘쭘해져서 가게 뒷쪽 출입문으로 나가 바깥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더니 그제야 주문을

받는다.

그러고 보니 가게 입구의 유리창살 아래 '노 알콜' 이라고 붙혀 놓은 것을 봤는데, 이게 술을 안

판다는 얘긴지, 술을 먹지 말라는 얘긴지를 몰랐는데 아뿔사! 이 가게에서는 술을 먹지 말라는

얘기다.

이 가게는 건물 양쪽으로 거리가 접해 있어 가게 상호가 있는 앞쪽과 뒷쪽에 모두 몇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술을 먹는 짓(!)을 하려면' 뒷문에서 먹어라는 것이다.

우리는 뒷 테이블로 쫒겨나(!) 이 부정한 음식을 찔끔거리며 마시면서 맛있는 이 집의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의자 밑에 와서 우릴 쳐다 보면서 나눠 먹기를 간청하는 고양이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면서......

요 녀석들, 얻어 먹는 주제에 그냥 빵을 주면 시큰둥 하다가 빵에 교프테의 기름을 살짝 발라주면 

냉큼 받아 먹는다. 하긴 요 녀석들도 입맛이라는게 있으니까......

 

터키는 이슬람 국가다. 물론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세속주의를 천명하고 있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

그렇지만 국민의 98%가 이슬람 교도다. 당연히 술은 불편한 음료다. 우리네 처럼 가게 어디서든

술을 팔지 않는다. 아마도 허가 받은 곳만 술을 파는 것 같다.

술에 취해 주정을 하거나 비틀거리는 짓을 천하게 여기고 금기시 하는 나라에서, 그것도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지 않는 로컬 식당에서 떡하니 술을 테이블에 놓고 마시겠다고 했으니 쫒겨날 밖에......